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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생일파티] 멍드는 동심, 골병 드는 가계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정모(36)씨는 지난달 말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친구의 생일 잔치에 다녀온 뒤로 걱정이 많다. 정씨가 아들 친구의 생일 파티에 까지 가게 된 것은 아들을 통해 전달 받은 생일 파티 초청 카드 때문.

결혼식 초청장 같이 깔끔하게 인쇄된 이 카드에는 생일 주인공의 얼굴 사진과 파티 장소, 준비물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카드 하단에는 ‘선물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문귀까지 적혀 있었다.


100여명 모인 야외공연 생일파티

그러나 생일 당일 아들을 그냥 보내려 하니까 아무래도 맘이 놓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백화점에 가 간이 컴퓨터 오락게임 디스켓을 산 뒤 아들을 파티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파티 장소는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야외 공원. 오전 11시경 시작된 이 생일 파티에는 주인공의 반 친구와 동네 친구, 그리고 학부형과 친척을 포함해 거의 100명에 가까운 손님들이 모였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갖가지 색깔의 풍선 타워와 화려한 그림카드 장식들을 걸어 놓아 마치 큰 행사장 같은 분위기가 났다. 중앙에는 3단 케익과 식사를 놓을 단상까지 마련돼 있었다. 주인공의 사촌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사회를 본 뒤 곧바로 생일 파티 기획사에서 나온 인솔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기획사 직원은 생일 주인공과 부모를 소개한 뒤 오락 게임을 하며 능숙한 솜씨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이날 제공된 음식은 어린이 1인당 약 1만2,000원, 어른들의 경우는 대략 2만원 수준의 생일 파티 전문회사 것이었다. 여기에 각종 소품과 장식, 그리고 진행을 맡은 기획사에 별도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또 끝나고 나서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일제 펜슬까지 선사했다.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 상대적 박탈감

정씨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이 생일 파티가 끝난 뒤 학교에서 이 파티에 초대 받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편이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초대 받지 못한 아이의 부모 중 일부는 학교에 가서 항의까지 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지금 정씨는 다가오는 아들의 생일 파티를 어떻게 치러야 할까 라는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어린이 호화 생일 파티에 동심이 멍들고 가정은 골병이 들고 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지금은 자식을 가진 일반 가정 치고 아이들의 생일 파티 때문에 한번쯤 골머리를 앓지 않은 부모는 없을 만큼 어린이 생일 파티가 과열돼 있다.

우리 부모들은 전통적으로 자식 문제에 관해서 그리 이성적이지 못하다. ‘내 자식만은 남에게 기죽지 않게,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호화 생일 파티는 마치 전염병처럼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가정에서 손수 차린 음식을 가지고 간단히 생일 파티를 치르는 가정은 극히 드물다. ‘자식 기를 죽이지 않겠다’는 생각에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어가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출장 부페 등을 이용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초대 받고도 선물 때문에 고민

서울 성북구에 사는 최모(33)씨는 얼마전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느날 딸 아이가 와서 ‘반 남자친구가 하얏트 호텔에서 생일 잔치를 한다고 초청했는데 무슨 선물을 사야할 지 고민’이라며 상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수소문해보니 이 생일 파티에는 모 인기 연예인이 온다고 해서 반친구들 마다 서로 초청을 받을려고 한차례 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일부 초대 받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학부형까지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

결국 학교에서 이 파티가 문제가 되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 당사자 부모를 설득, 결국에는 몇몇 친한 친구만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지만 그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같은 호화 생일 파티는 본인을 물론 초대 받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안겨 준다. 예전같이 집안에서 과자나 과일 케익 정도로 간소하게 치를 때는 손님들도 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호텔이나 부페, 가든 파티 같은 곳에서 고가의 음식을 대접하고 연예인까지 초빙해서 연회를 베풀 경우에는 아무래도 선물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1남1녀를 둔 학부형인 정모(38)씨는 “요즘에는 아이 생일에도 정식 초대장까지 보내 호텔 같은 곳으로 초대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때면 아이의 의상에서 선물 종류까지 신경이 많이 쓰인다”며 “더 큰 문제는 한 아이가 이렇게 호화 파티를 하고 나면 같은 반 아이들도 같은 수준으로 해달라고 졸라 부모들이 곤욕을 치른다. 요즘에는 간소한 파티는 아이들이 창피하다고 아예 거부한다”고 말했다.


파티 못 열어주면 아이·부모 모두 상처

호화 생일 파티의 문제점은 주변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점이다. 부유한 가정에선 관계가 없지만 이런 호화 생일 파티를 치러주지 못하는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 쉽다. 더구나 최근에는 생일날을 전후해 가족이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상당수 있어 위화감 마저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강지원 위원장은 “10세 전후는 일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데 일부 부모들의 과잉 보호와 소비 욕구가 어린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며 “이런 차별화된 호화 생일 파티는 주인공을 자만과 자기 도취에 빠지게 하고 친구들에게는 위화감만 조성하는 피해를 낳을 뿐이다”고 말했다.

생일 잔치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의 만남을 통해 각자의 건강과 행복을 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아이들의 생일 잔치는 이런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어른들의 자기 과시 욕구 분출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이런 물질적 배려가 아니라는 점을 부모들은 깨달아야 한다.


간소한 생일상 차리는 요령

집안이나 야외에서 간소하게 자녀들의 생일상을 차려 주는 가정도 아직은 적지않다. 가정에서 직접 생일 파티를 주재하려면 우선 초청 규모와 대상을 정한 뒤 적당한 장소를 구해야 한다. 10명 내외인 경우에는 집안에서 가능하지만 그 이상인 경우에는 한강 고수부지나 인근 야외 공원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음식보다는 놀이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식은 돈까스, 햄버거, 스파게티 같은 주 음식외에 과일, 과자, 음료수 등 기본적인 것만 준비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생일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장식과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생일 분위기를 내려면 천장이나 벽에 걸 플래카드나 풍선 같은 배너 장식이 필요하다. 생일 팡파레를 할 때 쓸 폭죽, 스프레이, 꽃가루, 향초 등도 있어야 한다. 파티 전문기획점에 맡기면 상당한 비용이 드는 만큼 부모가 아이와 함께 각종 장식을 만들면 어린이 교육에도 좋다.

생일파티를 흥겹게 보내기 위해 색종이 도화지 색연필 등을 구입해 현장에서 즉석 모자 만들기나, 종이 접기 등의 게임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바이얼린 등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장기 자랑을 해도 좋다. 이런 생일 용품들은 어린이 행사 용품점에서 2~3만원 내외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06/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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