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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손 잡은 남북정상, 이산가족에 '희망의 빛'

김정권(78)씨는 50년전 전쟁을 피해 고향 온진을 떠나 남쪽으로 넘어온 실향민이다. 김씨는 곧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부모와 두 남동생, 여동생을 남겨둔 채 돈 몇푼과 옷가지만 들고 집을 떠났지만 아직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김씨의 기대는 크다. 비록 통일로 가는 길은 아직 멀겠지만 남북 정상회담은 이산가족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회담이 성공할 경우 식량지원과 함께 남한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된다. 남측으로서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통해 군사위협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핵위협으로 밤잠을 설치는 미국과 일본 중국도 한반도의 안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가족 만날 마지막 기회"

무엇보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760만 이산가족의 기대는 남다르다. 김씨처럼 대부분의 이산가족은 북한에 두고온 가족의 생사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이번이 내가 죽기전에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김씨는 피난을 온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직을 잡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진 상태에서 하루하루 먹고 산다는 것부터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은 추석 등 명절을 맞는 일이었다.

가족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명절에 김씨 집에는 부인의 여동생 외에는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1980년대 초 한 방송사가 이산가족찾기 행사를 방영했을 때 김씨는 한시도 TV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으며 가끔씩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몇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씨는 한 백화점에서 북한의 흙을 무료로 배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식사도 거르고 집을 나서 고향인 황해도의 흙을 병 두 개에 담아 돌아왔다.

김씨의 며느리 이명숙씨는 “손으로 흙을 만지는 아버님의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고 당시의 기억을 설명했다. 흙을 담은 병 하나는 지금도 김씨 집 거실 선반에 귀하게 모셔져 있다. 사진 한 장도 챙기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김씨로서는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 셈이다. 또다른 한 병에 담긴 흙은 장모의 묘에 뿌렸다.

이산가족의 눈길이 정상회담에 쏠려 있지만 정상회담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판문점 주변은 명칭만 비무장지대일 뿐 110만명의 북한군과 65만5,000명의 한국군, 3만7,000명의 미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무장이 심한 곳중 하나다.


햇볕정책으로끈질긴 북한 설득

1994년 북한 핵위기 직후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주선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하고 남측이 조문을 거부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됐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상회담 교섭은 다시 시작됐다.

김 대통령은 북한 잠수함침투와 서해교전 등 몇몇 군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통해 평양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일부에서는 햇볕정책이 아무 이득도 없이 북한을 돕는 꼴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북한에게 김 대통령이 믿을만한 협상파트너라는 확신을 주는데 성공했다.

북한의 태도 또한 진지하다. 북한의 관영 언론은 남북 정상회담을 크게 다루고 있고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정식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이 집권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떠나 북경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을 만난 것도 북한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김정일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우방인 중국에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중국식 경제개혁을 도입할 생각으로 보인다(김정일은 중국방문중 ‘중국식 사회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북한 경제의 파탄도 남측과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요인이다. 북한에서 공장은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고 심지어 평양시민도 전기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정일이 절박한 심정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6년간 집권하면서 김정일은 국내통제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남한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북한은 엄격한 통제 속에 금강산 관광을 허용했다. 현재 수천명의 한국 근로자들이 경수로 건설을 하고 있다. 전임자의 변덕과 확실히 대조되는 김 대통령의 일관적 정책 또한 김정일에게 자신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손해볼 것 없는 남북대화

김 대통령은 3월 베를린 연설을 통해 북한의 인프라 구축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남북간 교역 규모는 지난해 이미 3억3,000만 달러를 넘었다.

경제교류의 확대는 정치적 긴장을 완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으로서는 보수적 여론을 달래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북한으로부터 무엇인가 확실한 양보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중 이산가족 상봉은 핵심이다.

지난 2년간 남한은 수차례 이산가족 문제를 제기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김정일은 김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상봉은 아직까지 인도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다. 북한은 외부접촉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며 TV는 정부홍보 프로그램만 방영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체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최근 몇년간 수백명의 한국 이산가족이 재중동포를 통해 북한에 있는 친척에게 편지를 보냈다. 재중동포들은 북한내 친척을 수소문해주고 북한 관리들을 매수해 상봉을 주선해주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가 않고 종종 돈만 챙기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가족을 찾은 사람은 2,000명정도이며 이중 500명만이 제3국에서 가족상봉에 성공했다.


이산가족 최대의 희망은 고향방문

199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이 고향 방문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통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먼 발치에서 고향을 바라보는데 만족해야 한다. 김씨 부부도 금강산 관광을 했고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있는 백두산을 방문했다.

김씨 가족만큼이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씨의 자녀들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부모보다는 회의적이지만 둘째 아들 시흥씨는 북한에서 온 숙모를 방문했을 때 한번도 보지 못한 두 삼촌을 생각하면서 무엇인가 뭉클했던 느낌을 받았다.

시흥씨는 “내 뿌리를 느낀 것같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의 악수가 아버지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시흥씨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6/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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