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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순례(16)]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필사즉생’(必死卽生)

글자 그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반드시 살아 남는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객관적 전력상 열세였던 조선 수군의 사기를 높이려고 사용한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심오한 뜻을 지닌 말은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애용되는 모양이다.

IMF위기를 맞은 1998년 한화그룹은 ‘필사즉생’을 사시(社是)로 내걸고 위기를 극복해냈다. 당시 한화그룹은 한화정유, 한화종금 등 주력 계열사의 적자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었다.

김승연 회장은 ‘필사즉생’이라고 적힌 액자를 전 계열사 사무실에 걸도록 지시한 뒤 정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알짜배기 회사를 팔아치웠다. 그 때문인지 한화그룹은 이제 구조조정의 모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공적 구조조정으로 경쟁우위 확보

한국에서 한화그룹이 ‘필사즉생’의 각오로 살아 남은 기업이라면 미국 기업중에는 단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손꼽힌다. 1930년 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유전탐사회사로 시작한 TI의 70년 역사는 영광과 부침을 거듭한 미국 경제의 축소판이다.

2차대전후 1970년대까지 미국 경제가 세계 최고였던 것처럼 1980년대 초반까지 TI는 반도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기업이었다. TI는 1958년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를 개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반도체 역사를 이끌어온 기업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미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역전당해 눌려지냈던 것처럼 TI 역시 방만한 경영으로 인텔과 일본 기업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시장점유율에서 5~6위까지 밀려나야 했다.

위기에 빠진 TI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96년 취임한 토마스 엔지버스(Thomas Engibous) 회장이었다. 엔지버스 회장은 14개 사업영역을 4개 사업부문으로 축소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TI는 사업영역을 반도체, 제어부품 산업부, 교육생산성 솔루션, 디지털이머징 사업 등 4개 영역으로 재편했다. 노트북이나 스프트웨어 등의 사업부문은 과감히 매각, 1992년까지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 미만이었던 반도체의 비중을 1999년에는 83%로 끌어올렸다.

한마디로 TI를 명실상부한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는 성공적 구조조정으로 재탄생한 TI를 ‘뉴 티아이’(New TI)로 구분해 부를 정도였다.

TI의 구조조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TI는 1998년 경기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D램 반도체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대신 TI는 디지털 혁명으로 시장이 급격히 팽창할 것으로 예상한 디지털 신호처리기(DSP)와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 특화하기로 결정했다. TI는 이를 위해 1996년 이래 14개의 사업부문을 매각하고 11개 회사를 인수하는 등 DSP와 아날로그 분야에서의 경쟁우위를 강화하고 있다.


자체기술인력 확보에 많은 투자

그렇다면 한국과 TI는 어떤 인연을 맺고 있을까. TI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77년으로 각종 반도체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TI코리아를 설립한 이후부터다.

1988년 당시 TI코리아의 주력제품은 D램 반도체였으나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D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TI코리아는 비메모리 사업에 전력 투구키로 전략을 수정하는 등 발빠른 변신을 추구했다.

요컨대 TI코리아는 본사보다도 훨씬 일찍 비메모리 사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셈이다.

한국 진출이후 TI코리아는 국내 업체와의 경쟁보다는 보완협력을 통해 시장을 넓혀왔다. 삼성, LG 등과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기지국 장비를 공동개발하기도 하였고, 전자통신연구원의 의뢰를 받아 국산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삼성, 현대, LG그룹은 지금도 TI코리아의 주고객이다. 또 아남반도체와도 기술제휴 협력을 통해 DSP 제조기술을 지원하는 등 동반자적 관계를 정립해나가고 있다.

TI코리아가 이처럼 국내 업체와 공존공생 관계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외국기업과는 달리 자체 기술인력 확보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TI코리아는 ‘반도체 응용기술 연구소’라는 연구조직을 1980년대 초반부터 운영해 왔다.

이 연구소는 고객이 TI의 DSP를 이용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 기술지원을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TI코리아는 1980년대까지는 자체적으로 반도체 제품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DSP의 사용영역이 넓어지면서 이를 응용한 기술을 국내 고객과 공동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TI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중소기업이 아직도 DSP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DSP 디자인 하우스를 설립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내 DSP 기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지화 전략 때문인지 TI코리아는 IMF한파 때도 꾸준한 신장을 이룩해 1998년 3,8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1999년에는 각각 4,729억원과 254억원의 매출과 순이익을 올렸다.


1996년 이후 TI의 구조조정일지



 주요 매각 

 

 1997년 1월 방위사업, 레이시온에 매각 

 노트북사업, 대만 에이서그룹에 매각 

 1997년 4월 소프트웨어사업, 스털링사에 매각 

 화학사업, 에어리퀴드 아메리카에 매각 

 1997년 5월 멀티포인트 시스템사업, 로버트 보쉬에 매각 

 통신시스템사업, DSC Communications에 매각 

 1997년 6월 Inspection Equipment사업, 플렉스테크 홀딩스에 매각 

 1998년 6월 메모리 반도체, 마이크론에 매각 

 

 주요 인수 

 

 1996년 9월 SSi (대용량저장매체 분야의 선두업체) 

 1997년 3월 인터섹 테크놀로지 

 11월 아마티커뮤니케이션(디지털모뎀분야의 선두업체) 

 1997년 12월 GO DSP(DSP 소프트웨어 개발분야의 선두업체) 

 1998년 스펙트론 마이크로시스템사 인수 

 1999년 Butterfly VLSI사 인수(근거리무선통신기술 관련) 

 1999년 7월 Telogy사(인터넷 전화분야 선두업체) 

 1999년 7월 Libt사 (케이블 모뎀 장비 선두업체) 

 1999년 8월 ATL사(RF 기술 선두업체) 

 1999년 10월 Unitrode 

 1999년 10월 Power trends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0/06/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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