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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30년] 근대화의 길 연 경부고속도로

근대화 상징…7월7일 개통 30주년 맞아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총길이 428㎞의 왕복 4차선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서울~부산 ‘한양 천리길’을 4시간 거리로 단축했다. 한국경제의 ‘검은 비단길’로 불렸던 경부고속도로가 7월7일로 개통 30주년을 맞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당시의 집권세력, 특히 박정희 전대통령의 발전전략이 농축돼 있었다. 박 전대통령의 발전전략이 그후 한국자본주의 진로에 방향키 역할을 하면서 경부고속도로는 압축경제성장의 상징물이 됐다.


단군 이래 초대 역사

경부고속도로는 당시로는 ‘단군 이래 한민족 최대 역사’였다. 공사비 379억원과 보상비, 조사설계비, 외국인 용역비를 포함한 총건설비는 430억원으로 1967년도 국가전체예산의 23.6%에 달했다.

1969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60달러에 불과했다. 부족한 재원은 일본원조차관(ECOF) 600여만달러로 보충했다. 1968년 2월1일부터 70년 7월7일까지 약 2년 반 동안의 건설기간중 연인원 900만명과 장비 165만대가 동원됐다. 현대를 비롯한 16개 건설사가 참여했고 육군 건설공병단 3개대대도 동원됐다.

국력을 총집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당시로선 무모하다는 반발도 컸다. “소달구지를 고속도로에 올릴 것이냐”는 비난부터 “장기집권을 위한 박정권의 정치자금 조달용”이란 의혹까지 일었다.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당시 야권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고, 일부에서는 “불도저 앞에 드러눕겠다”는 극단론을 들고 나왔다. 1980년대에는 “세계자본주의 착취구조에 한국을 편입시켰다”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통 30년을 맞은 지금 이같은 반대는 거의 침묵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이제민 교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체의 타당성을 놓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없다고 봐도 좋다”고 말했다.

한양대 토목환경학과 이태식 교수는 “완공 직후 다수 경제학자들은 오히려 경부고속도로를 더넓게 만들었어야 했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말했다.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통해 산업화를 앞당겼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이의를 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서울~대전 구간이 왕복 8차선으로 확장된 현재 경부고속도로 부지면적은 1,100만평으로 여의도(89만평)의 12배가 넘는다. 200평 기준으로 논 5만5,000마지기 면적에 해당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 효과

경부고속도로의 유·무형 효과는 어떨까. 한국도로공사 추산에 따르면 30년간 8조2,000억원의 차량운행비 및 시간단축 절감비용, 1,300억에 이르는 산업성장효과를 낳았다. 전국토 1일생활권 시대 개막, 지역개발과 경제발전 촉진, 인적·물적자원의 지역간 이동, 국민의식 향상과 평준화 등 현금환산이 불가능한 효과도 가져왔다.

경부고속도로는 무엇보다 한국 고속도로 시대의 막을 연데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현재 국내 고속도로는 21개에 총연장 2,050㎞로서 세계 12위의 고속도로 연장 보유국. 이들 고속도로의 총부지는 5,400만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60배가 넘는다.

한국도로공사는 2004년까지 고속도로 총연장을 3,400㎞로 늘려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그러나 도로건설과 환경보호는 모순관계에 있다. 대규모 건설에 따르는 환경파괴 문제는 앞으로 지속적인 과제로 남을 것이다.

타분야에 대한 외부효과도 컸다. 이제민 교수의 이야기. “경부고속도로는 자동차 산업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첨단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건설산업 발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특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경험과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이태식 교수는 경부고속도로의 의의를 세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지역간, 도·농간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했다. 둘째, 수출주도 경제구조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셋째, 교통역사를 철도에서 보다 선진적인 도로우선의 자동차 위주로 변화시켰다.”


대도시 집중화, 졸속시공 부작용

부정적인 효과도 물론 있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대도시 집중 가속화. 고속도로 건설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1985년을 1970년과 비교했을 때 인구의 고속도로 인접도시 집중현상은 확연했다. 1980년대 말에는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해 수도권 이상비대로까지 진전됐다.

이런 점에서 고속도로는 한국의 근대화를 도시화와 등치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이제민 교수는 이에 대해 “대도시 집중현상은 고속도로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인 정책탓”이라고 분석했다. 고속도로는 잘못된 정책의 매개역할을 한데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건설문화 형성에 끼친 악영향이다. 군대식 밀어붙이기로 2년반만에 공사를 끝내는 과정에서 안전불감증을 배태했고 졸속·부실시공을 낳았다.

건설도중 안전사고로 사망한 인원이 77명에 달했다. 건설 후 끊임없이 계속된 보수공사는 고질체증과 함께 경제·사회적 추가비용을 초래했다.


개·보수, 건설비의 100배이상 소요

이태식 교수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문화 측면에서 악선례를 남겼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경부고속도로 총건설비는 430억원으로 ㎞당 건설비가 1억원 수준이었다. 일본에서 비슷한 규모의 고속도로 건설에 3,500억원이 든 것을 감안하면 초저가 시공이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는 보수·개수공사 과정에서 건설비의 100배 이상을 들여 결과적으로는 비싸게 먹힌 꼴이 됐다. 일반적으로 건설물의 생애주기(life cycle)에서 차지하는 설계·시공비와 유지관리비의 비율은 25%대 75%다.

경부고속도로는 결국 25%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바람에 더 큰 부가비용을 치르게 됐다.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설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다시 한번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07/0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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