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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전방위 로비, 그 속사정은?

경찰 전방위 로비, 그 속사정은?

'몸부림에 가까운' 근무여건·처우개선 요구

경찰이 처우개선을 위한 전방위 로비에 돌입했다.

학계와 언론계, 정·관계의 연고를 총동원해 로비를 벌이고 일선 경찰관과 가족까지 나서 신문의 독자투고란과 인터넷 게시판에 경찰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띄우고 있다.

신문·방송사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투고가 날아들고 만나는 경찰관마다 ‘봉급 인상’이란 말을 입에 달고다닌다. 가히 결사적 육탄전이라 할 만하다.

의사의 집단폐업과 노조파업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 지금, 경찰은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왜 예산투쟁에 들어간 것일까.

최근 한 경찰관의 아내가 경찰청 홈페이지에 띄운 ‘눈물 섞인 글’은 경찰 처우개선 투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찰관의 아내로서 안해본 일이 없어요. 격무에 지친 남편을 보기 안쓰러워 남몰래 새벽에 우유배달도 했습니다. 양말 가득 땀에 절어 피고름 나는 발, 시위현장에서 돌에 맞아 피멍이 든 얼굴, 강도를 잡다 칼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본 적이 있나요?”


“이 봉급에 어떻게 청렴하길 바랍니까”

서울 종암경찰서 경찰관의 미아리 윤락업주 수뢰사건에서 나타났듯 경찰은 최근까지도 각종 부패·비리사건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일선 경찰관은 “휴일없는 근무에 최저생활도 면키 힘든 봉급을 주면서 청렴하고 친절한 공무원이길 바랄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한 경찰 고위간부도 “경찰의 신뢰도 추락과 사기 저하로 조직이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다”며 봉급인상과 처우개선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일선 경찰의 목소리는 안쓰럽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잦은 야근과 밤샘으로 아이들을 보는 날이 거의 없다. 보너스가 없는 달에는 봉급 100만원으로 네 식구 살림도 빠듯하다.”(서울성북경찰서 최모 경장) “월급 45만원을 받고 연일 야근에 시달리는 딸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한 여자 경찰관의 부모) “온종일 매연 속에 시달리지만 하루 수당은 겨우 3,000원.”(서울의 교통경찰관)

사실 경찰예산은 올해 총 3조6,700억원으로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로 1993년(6.2%)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기본급은 군인에 비해 10%, 공안직에 비해서는 5% 낮다. 초임 순경의 월급(46만원)은 같은 급인 중사(51만원)보다 적으며 민간기업의 60~70%에 불과한 수준이다. 일본(149만원)과 미국 경찰(시카고 경찰 363만원)에 비하면 3분의1~7분의1에 그치는 박봉이다.

각종 수당은 더 큰 불만요인이다. 특별방범수당과 교통요원수당은 10년 가까이 동결됐고 외근형사 활동비는 20만원 전후로 실비의 40%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야근과 휴일근무 등으로 시간외 근무가 월 160시간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시간외 근무수당은 하루 3시간, 월 75시간까지만 인정된다”며 “올해 4월 미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민단체 시위에 동원된 미국 경찰관은 나흘동안 3,000~5,000달러의 시간외 수당을 받았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또 지난 5년간 하루평균 2.1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순직자가 334명에 달한다. 1998년 경찰관의 60%가 건강진단에서 비정상 판정을 받았고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도 30%에 달해 전체 공무원중 최악을 기록했다.


내부 분위기 일신, 개혁 드라이브 강화 의도

경찰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1조5,200억여원(41%) 증액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본급 10% 인상과 시간외 근무수당 및 특별방범수당, 외근형사 활동비의 현실화, 공무원수당과 주택수당의 신설 등도 요청할 방침이다.

경찰청 고위간부는 “철도나 항만처럼 치안도 범죄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을 감소시키는 행정분야의 사회간접자본(SOC)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번 처우개선 운동을 경찰 수뇌부의 개혁드라이브 및 1998년 수사권독립 투쟁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사권독립을 통한 경찰 위상강화는 실패했지만 처우개선을 통한 내부 분위기 일신을 통해 개혁드라이브를 강화하겠다는 이무영 경찰청장의 의지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와 일선 경찰의 실리추구가 맞아 떨어져 경찰 조직 전체가 이례적인 일사분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경찰 예산투쟁의 앞날은 그리 순탄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의 단체행동이 자칫 ‘집단이기주의’나 ‘밥그릇 요구’로 비칠 가능성이 크고 공무원 조직 내부의 견제도 만만찮기 때문.

기획예산처는 공무원 보수는 전체적으로 조정해야 할 사안으로 경찰관의 봉급만 인상할 경우 자칫 소방·공안직 등 다른 공무원의 반발을 살 수 있어 형평상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내년 예산에는 북한 SOC투자 등 대북관련 예산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어서 경찰 예산증액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경찰도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지만 전방위 로비를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하다. 내부요구와 결속이 워낙 확고한데다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내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경찰의 로비가 얼마나 성공할지, 정부와 밀고 당기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배성규 사회부 기자 vega@hk.co.kr

입력시간 2000/07/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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