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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따로 노는 통상정책

손발 따로 노는 통상정책

정부의 통상정책에 ‘적전분열’(敵前分裂), ‘소탐대실’(小貪大失), ‘전략노출’, ‘부처이기주의’, ‘불협화음’, ‘근시안적’, ‘국익은 뒷전’ 등의 수사가 자주 붙는다. 그만큼 통상정책이 부처간 혼선과 조정기능 미흡으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통상교섭의 창구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와 해당 경제부처간 정보교환 및 의견조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등 손발이 맞지 않아 대외협상력과 국가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일쑤다.

경제부처도 부처이기주의에 빠져 통상문제에 관한 국제기준을 무시한 채 국민감정에만 호소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무역보복을 자초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농림부와 보건복지부에 의해 사실상 정부정책으로 결정된 구운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에 대해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통상관례를 무시한 처사”라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사전조정 기능을 상실한, 통상정책 혼선에 대한 정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관련부처간 교류·협의 엉망

현재 통상정책 결정과정의 문제점은 우선 관련 부처간 정보교류 등 사전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주무 부처가 대외협상을 맡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에 내용 자체를 알려주지 않아 뒤늦게 이를 안 통상본부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국가 전체 이익차원에서 검토하지 않고 부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가 상대국으로부터 대량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제규범과 상대국과의 이해득실 등 경제적 측면을 떠나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통상교섭본부는 “통상정책의 종합기능을 높이기 위해 교섭본부를 설치해놓고 입지 약화를 우려한 경제부처들이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반면 경제부처는 “통상교섭본부가 지나치게 외국과의 마찰만 우려해 조용히 넘어가는데만 급급, 국내산업의 보호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상마찰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 중국, 동남아, 중남미 국가들로까지 확산되면서 100여건이 외국으로부터 반덤핑 및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대외교섭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마찰은 더 있어서는 안되며 통상외교 전반에 대한 일대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되로주고 말로 받은 한중 무역분쟁

양국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14일 밤 협상 문안에 가서명, 분쟁이 한달여만에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우리가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 됐다.

중국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가 엄청난 무역보복을 당한 것이다. 정부는 다급하게 중국에 협상단을 파견해 분쟁해결을 꾀하려 했지만 처음부터 중국이 칼자루를, 한국은 칼날을 쥔 협상을 벌여 주도권을 중국에 완전히 뺏긴 채 끌려다녀야만 했다.

양국간 마늘분쟁은 중국산 마늘 수입이 급증하자 농협이 작년 9월말 무역위원회에 국내 마늘농가의 피해조사 신청을 내면서 시작됐다.

재정경제부는 같은 해 11월18일 중국산 냉동 및 초산 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올리는 잠정관세 부과조치를 내렸다.

한국과 중국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의 실무협상을 가졌으나 피해 보상안을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이 결렬됐고 재경부는 곧바로 6월1일 중국산 냉동 및 초산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결정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중국과의 엄청난 통상마찰을 몰고 올 사안인데도 당시 통상교섭본부는 협의대상에서 빠졌고 중국산 마늘에 취해진 잠정관세를 긴급수입제한조치로 바꾸기로 사실상 결정한 4월3일 당정협의 결과도 뒤늦게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4·13 총선을 열흘 앞두고 민주당과 농림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잠정 긴급관세를 정식 긴급관세로 전환키로 하고 이를 공표했으나 이 과정에서 협상을 맡은 통상교섭본부는 제외됐을 뿐 아니라 당정 결정사실도 즉각 통보되지 않았던 것.

이 관계자는 또 “5월 하순에 열린 관계부처 1급(차관보급) 회의에서도 통상교섭본부는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내리는 것은 통상마찰만 몰고올 뿐이라며 타협을 주장했으나 또다시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국은 연간 5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한국산 폴리에틸렌과 휴대폰에 대해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고 우리는 전체 국익 측면에서는 마늘로 인한 농가의 피해(연간 1,000만 달러)보다 50배가 넘는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쇠고기 관련제도 잇단 패소·제소

이 제도는 일반음식점에서 쇠고기를 판매할 때 메뉴표에 수입산 및 국산 여부를 명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농림부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업자들이 값싼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 지난 3월11일 입법예고했다.

이는 5월말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결정됐으며 규칙 개정안은 내년 시행목표로 현재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입법예고되자 쇠고기 구분판매 제도가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쇠고기 수출국에 의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해 심판대에 올랐다.

그러나 입법예고에 앞서 거쳐야 할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역시 통상교섭본부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교섭본부는 입법예고 이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3월 말 복지부와 농림부에 반대의견을 냈으며 4월10일에 열린 관계부처 차관간담회에서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5월 말 WTO는 한국의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가 수입품에 대한 내국인 대우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한국에 패소결정을 내리는 잠정보고서를 채택했다.

이와 관련,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WTO에서 쇠고기 구분판매 제도가 패소한 마당에 이보다 정도가 심한 구운 쇠고기 구분판매 제도는 패소할 게 뻔하다”며 “그동안 각 부처 사정 등을 감안, 웬만하면 덮어두고 넘어갔으나 앞으로 통상마찰 소지가 명백할 경우 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림부 등은 “통상교섭본부가 통상마찰을 너무 의식, 국내산업 피해를 막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조치까지 소홀히 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농민단체들도 “미리 항복하는 행위”라고 격분했다.


대형차 보유자 세무조사 철회소동

국세청은 지난 5월 세원확보 방안의 일환으로 배기량 2,400cc 이상 대형차 구입자에 대한 국세청 보고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교섭본부는 통상마찰 소지가 있는 대표적 케이스로 꼽아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세금은 국세청이 세원을 찾아내 받아야지 통상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대형차를 구입한 것을 보고 세원관리를 하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1일 한덕수 본부장을 초청한 가운데 열린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간담회에서도 유럽 기업들은 이 정책과 에너지 절약운동이 수입억제책이라며 반발했다. 국세청은 조세주권 논리를 내세우며 한동안 밀고나가다 외국 정부와 업계의 압력이 가중되자 뒤늦게 이를 철회했다.

강의영 연합뉴스 기자 keykey@yna.co.kr

입력시간 2000/07/1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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