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읽기] 불가사리와 비천무, 그리고 북한

영화 ‘불가사리’. 국내상영 북한영화 1호다. 신상옥 감독이 거의 다 만들어놓고는 북한을 탈출해 크레딧에 이름조차 남길수 없었던 영화.

해외시장을 겨냥해 1985년에 만들었지만 그 때문에 2년 전에 겨우 일본에서 처음 공개된 SF 괴수영화. 도쿄의 한 극장에서 할리우드 제품인 고질라와 함께 개봉해 8주동안 1만8,000명이 들어 화제가 됐던 영화.

고려말 폭정에 시달리는 농민이 쇠를 먹어치우는 불가사리의 도움으로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사회주의 영화의 냄새가 나면서도 북한 영화로는 오락성을 추구한 보기드문 작품.

그것이 국내에 상영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가사리’는 화제였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 것이면 모두 좋게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도 ‘불가사리’ 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심지어 북한 영화를 우리 영화로 취급해 등급심의나 스크린쿼터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으니.

물론 그것이 아직은 말로만 끝나 결국 서울에 3개 극장 밖에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입사(고려미디어)는 은근히 기대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실향민, 어린이만 적당히 보러와도 충분히 객석은 가득 채워질 거라고.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개봉 첫 주말 3개 극장에 217명. 3회 상영까지 관객이 한명도 들지 않았던 극장도 있었다. 3일째 되자 도저히 못견딘 한 극장은 아예 간판을 내렸다. 나머지도 일주일을 못 버텼다.

비디오 출시를 위해 형식적으로 광고하는 셈 치고 개봉하는 C급 영화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다. 호기심과 기대를 잔뜩 갖고 개봉 첫날 극장에 몰려든 일본 취재진은 당황했다. 한국인에게 같은 동포의 영화가, 그것도 첫 개봉작이 이렇게 외면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40억원짜리 한국 영화 ‘비천무’. 몸집과 무게 탓에 흥행에 목을 맨 영화. 문화관광부 장관이 보고 칭찬했다고 자랑하고, 미국에서도 개봉돼 흥행에 성공했다고 떠든 영화.

화려한 액션이 좋다는 반응과 그것 조차 홍콩 감독에게 빌붙어 찍었으며 원작(만화)를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아 기대만큼 흥행을 올리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영화.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절박한 영화.

그래서 생각한 것일까. ‘비천무’ 역시 남북 정상회담의 바람을 타고 북한, 특히 영화광이라는 김정일을 마케팅꺼리로 삼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비천무’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비천무’가 북한에 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통해 필름을 입수해 벌써 봤다. 김희선의 연기를 높이 평가하고 북한에 초청하기로 했다”는 등등. 연일 터져 나오는 ‘비천무’와 김정일의 커넥션.

중국의 이름도 잘 모르는 ‘삼진도시보’라는 지방신문이 신문이 밑도 끝도 없이 한줄 쓴 “김정일 위원장이 ‘비천무’를 보고 싶다”는 기사가 발단이 됐다. 국내에 소개될 때 ‘싶다’가 아니라 ‘봤다’가 됐고, 홍보사는“웬 떡이냐”라며 마구 떠벌렸고 북한이라면 무조건 뉴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매체에 의해 그것은 자꾸 새끼를 쳤다.

당황한 쪽은 주무부. 필름을 북측에 전달하려면 통일부의 대북 접촉승인이 필요하고 문화관광부 역시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런 신청이나 문의가 없다는 것이 담당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초법적으로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에서 그것을 추진한다는 것인가.

문화관광부 영상진흥과장이 “도대체 필름과 비디오를 전달하는 정부 관계자가 누구냐”고 그 사실을 밝힌 제작사 관계자를 추궁하자 제작사 대표는 “내가 그렇게 한 적 없다”고만 말하더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말‘비천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면 떳떳하게 절차를 밟아 보내면 된다. 김정일이 영화를 워낙 좋아하고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으니 선물삼아 보내려고 한다면 꼭 ‘비천무’일 필요는 없다. 이왕이면 훨씬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작품을 보내 북한 영화보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확인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0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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