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더위먹은 정치, 무기력한 국회

이번 주에는 ‘정치방학’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비(非)한나라 연대’의 수(140석)를 믿고 단독 국회를 강행하려 했으나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의 참여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여당 의원 3명이 당명을 어기고 출국, 의결 정족수(137석)를 채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짐으로써 찾아온 정치방학이다.

추경예산안과 금융지주회사법·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시급한 현안을 뒤로 하고 의원들은 방학을 맞아 앞다퉈 외유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항명출국’후유증 최소화 안간힘

민주당측은 “소속의원 3명이 출국을 결행하기 전에 이미 단독 국회를 더이상 끌어가기 어렵다고 보고 한나라당과 국회 활동의 일시 중단문제를 협의하던 중이었다”며 세 의원의 ‘항명 출국’으로 초래된 타격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세 의원의 항명사태가 레임덕 현상으로 비치면 또다른 정치적 타격과 후유증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당지도부 일각에서는 세 의원에 대해 징계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오히려 세 의원에 대한 박수 소리가 높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징계 문제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으나 없던 일로 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지도부가 속을 썩이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현안 처리가 늦어질 경우 여론의 눈도 있고 해서 이번 주 초부터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재개했으나 서로 선행 조건에 대한 견해가 달라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 주기’를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운영위에서 날치기처리한 만큼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법안의 무효화를 선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날치기 금지를 국회법에 명시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사과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법안 무효화나 날치기 금지 규정 신설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고 있다. 날치기 사태가 한나라당이 민주적 의사진행을 힘으로 막은 데서 비롯됐다며 물리적인 의사진행 저지 금지 규정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136명이 서명해서 제출한 법안을 해당 상임위에 상정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법안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민주 절차에 맞지 않는 반의회적 행위라고 쇳소리를 내고 있다. 법안 무효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법안을 운영위에 상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날치기 통과된 법안을 퇴출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당초 민주당이 정치방학 시한으로 설정했던 8월20일 이전에 국회정상화 협상을 타결, 조기에 ‘개학’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나라당, 정국반전 묘수찾기에 골몰

이번 주간에는 여야간에 개각이 잘됐네 못됐네, 공방을 주고받는 ‘개각 뒷풀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몇몇 신임 각료에 대해 과거 전력과 참신성 부족 등을 문제삼고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개각의 잘잘못을 이슈화하는 것은 8월15일 전후 이산가족 상봉에 따른 ‘눈물의 정국’에 대비한 포석이다. 한나라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정국주도권이 여권 수중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은 전국적으로 ‘눈물주의보’를 예고하고 있어 당분간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잊혀진 존재가 될 개연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여러 수단을 강구중이나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이회창 총재가 계획중인 민생현장 방문 등 민생투어도 1회성 이벤트여서 약발이 얼마나 먹힐 지 의문이다.

개각과 관련해 DJ와 JP의 공조 재정립 여부도 세간의 관심사다. 한때 JP가 이회창 총재에 접근하는 모양새를 취해 양자의 공조에 빨간 불이 켜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가 밀약설 파동을 거치면서 JP와의 관계개선 시도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여 DJP관계에 또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DJP 공조에 긴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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