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짧다고 공부 잘하나요?"

중고생들 두발제한 등에 반기

“민주주의 나라 안의 공산주의 학교” “머리 짧다고 공부 잘하면 ‘빡빡이’는 수석하겠네.” “교도소에서도 머리 기른다는데….”

지난 6월26일 오후 서울 명동 조흥은행 앞, 얼굴에 붉은 페인트칠을 한 20여명의 중고생이 ‘두발제한 철폐’ ‘고교서열화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주위를 지나던 많은 청소년은 누구랄 것도 없이 게시판에 자기생각을 가득 메웠다.


10대들의 반란

전국 중고등학교의 98%가 두발규정을 운용하는 가운데 10대들이 ‘앞머리 3㎝, 귀밑 3㎝’로 상징되는 두발 규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지난 4월 말부터 활동을 시작한 ‘전국 중고등학생연합’(이하 학생연합)은 “두발규제가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 6월부터 매주 한차례씩 명동과 대학로 등 시민의 발길이 잦은 곳에서 두발제한 철폐를 주장하는 거리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두발제한 철폐운동은 온라인에서도 진행중이다. ‘청소년 연대 위드(with)’가 운영중인 ‘노컷 사이트’(www.idoo.net/nocut)에서는 이미 5만여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여기에는 학부모와 교사들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우릴 인격체로 대해 주세요”

학생들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구시대의 유물인 두발제한 규정을 철폐하자는 것. 두발제한 제도는 청소년의 자율성과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교육의 최종 목적인 학업이나 인성 발달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위질당할 걸 알면서도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선생님들은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모(16·서울 삼성고 1년)군은 “학생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박모(17·부산진여고 2년)양은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을 존중한다면서 획일화한 규정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두발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 S고 상벌담당 김모(43) 교사는 “학생들이 방만해지고 무절제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단언했고, 경기고 민흥기(閔興基) 교장은 “서구의 명문학교도 머리를 물들이거나 귀고리를 할 경우 심지어 퇴학시킬 정도로 규정이 엄격하다”고 전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두발제한과 같은 통제의 기제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교육지도과 최보일(崔普鎰) 장학관은 “지금의 사회 성숙도에 비추어 일정한 제한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철폐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학교와 학생간 불신 해소가 관건

일선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와 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학교측도 학생의 두발제한 주장을 불순한 의도로 간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학생연합과 위드 모두 ‘교육부 장관의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 D고 학생회장 차모(18)군은 “학생의 요구사항을 학교에 건의해도 ‘생각해보자’는 얘기뿐”이라며 “한 사이트에서 5만명이 서명에 참가한 것을 불평불만으로 치부한다면 현실을 한참 잘못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육부 학교정책과 정하배(鄭夏倍) 장학관은 “교육자치, 교육자율화라는 전반적인 교육정책의 방향에 비추어 그런 ‘사소한 문제’에까지 일괄적인 방침을 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10대도 엄연한 사회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학생연합은 조만간 ‘학교인권지표’를 개발, 인권실태를 조사한 후 유엔에 보고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위드 역시 두발규제 실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인터넷 방송을 통해 내보낼 예정이고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의 조한혜정 교수는 “학생들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기를 자유’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10대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임을 인정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리캠페인의 자유발언대에 오른 한 여학생의 호소는 10대의 바람을 대변하고 있다. “두발제한은 교복 등과 달리 청소년이 반발하는 학칙 가운데 하나로서 학교와 학생 간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제일 큰 요인이다.

아침에 기분좋게 등교하다가 학교 정문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머리를 싹둑 잘리는 광경을 누가 기쁘게 생각하겠나. 학생이 가고싶은 학교, 학교가 사랑하는 학생, 이것은 두발제한의 폐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정대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0 13:07


양정대 사회부 torc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