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의 실크로드] 시베리아 횡단 ‘철의 실크로드’ 열린다

남북한 철도 연결, 유럽직행길 가시화

국내 무역업계의 대유럽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8월부터 유럽·지중해 항로의 수출 컨테이너 운임이 최고 30%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유럽 운임동맹과 지중해항로 운임동맹이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한개)당 1,100~1,200달러 수준이던 수송운임을 350달러 인상한 것이 그 원인.

무역협회 관계자는 “이번 운임상승은 최근 원화 평가절상과 맞물려 한국 제품의 유럽 수출 경쟁력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력 수출품목인 타이어는 수출마진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 컴퓨터 모니터도 경쟁력을 잃게 됐다는 것. 유럽 운임동맹은 이달 중순부터 유가인상을 이유로 운임을 추가 인상하겠다고 밝혀 국내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동향은 수출입 화물 운송루트의 다변화 필요성을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 기존의 해상로(Sea-Lane) 의존 일변도에서 탈피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로 화물을 분산시키는 것이 국가적 위험분산의 과제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다.


경의선 복원, 실현 가능성 높아

북한과 TSR를 통해 유럽으로 직행하는 철도망,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구상은 최근 남북화해 무드에 힙입어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정적 계기는 남북한이 합의한 경의선 연결이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의선과 경원선 양대축이 단절돼 있어 지금까지 ‘철의 실크로드’구상은 답보상태를 면치못했다.

‘철의 실크로드’구상은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1992년 48차 회의에서 승인한 ‘아시아 횡단철도 계획’(TAR)을 일컫는 말.

ESCAP이 검토하고 있는 아시아 횡단철도의 북부노선은 대체로 5개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 극동의 보스토치니에서 출발해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 독일로 이어지는 현행 TSR 노선 ▲중국 리엔윈(連雲)항에서 출발하는 중국횡단철도(TCR)를 TSR와 연결하는 노선 ▲중국 톈진(天津)항에서 출발하는 몽골횡단철도(TMR)를 TSR와 연결하는 노선 ▲북한의 나진에서 출발해 TSR와 연결하는 노선 ▲부산에서 출발해 남북한을 종단한 후 중국을 거치거나, 혹은 바로 TSR와 연결하는 노선이다.

이중 마지막의 남북한을 종단하는 노선은 남북한 뿐 아니라 관련국에도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노선으로 판단되고 있다.

부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남한과 일본의 물동량까지 흡수하기 때문이다. 물동량이 많다는 것은 곧 수송비용을 줄일 수 있는 화주(貨主)가 그많큼 많고, 철도 통과국의 통과운임 수입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ESCAP이 1996년 52차 회의에서 아시아 횡단철도 구축을 위해 남북한 연결철도 복원에 최우선적으로 노력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이때문이다.

과거 남북한을 연결했던 철도는 경의선(서울~신의주), 경원선(서울~원산), 금강산선(철원~기성), 동해북부선(양양~안변) 등 4개 노선이다. 이중 ‘철의 실크로드’와 관련해 가장 효용성이 높은 노선은 경의선과 경원선 2개다.


물류비 절감, 통과국은 '통행세' 수입

부산을 기점으로 신의주까지의 경의선은 총연장 945㎞, 부산에서 출발해 원산을 지나 두만강역으로 이어지는 경원선은 1,313㎞다.

경의선과 경원선 단절구간이 복원될 경우 한국 화물은 중국을 경유하는 TCR이나 러시아의 TSR을 통해 유럽으로 직송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와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자국 철도를 이용한 통과운임을 더욱 인하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한반도 철도가 복원될 경우 TSR을 이용하는 주고객인 한국과 일본 화주는 직접적 이익을 얻게 된다. 부산에서 러시아 보스토치니(TSR 선적항)까지 해상운임은 TEU당 800~1,000달러 수준.

화물이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부곡 화물터미널에서 부산 컨테이너 부두까지의 육상운임 300달러가 덧붙여져 모두 1,100~1,300달러가 든다. 하지만 부산에서 경원선을 통해 화물을 TSR에 직접 올리게 되면 수송비는 많이 잡아야 TEU당 800~900달러면 족하다. 거리가 가까운 수도권에서는 500~600달러 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장애요소도 있다. 남북한과 중국의 철로폭이 ‘표준궤’인데 반해 TSR이 ‘광궤’로 돼 있는게 그중 하나.

이 때문에 한반도나 중국에서 출발한 짐은 TSR과 연결되는 결절점에서 환적해야 한다. 아울러 중앙아시아 각국의 국경을 통과하면서 통과운임을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환적이나 통과운임을 감안하더라도 해상운송에 비해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북한 통과 철도의 경쟁력은 유럽행 물동량이 아닌 동북아 역내수송에서도 매우 높다. 중국과 러시아 내륙으로 향하는 물동량도 항구를 경유하지 않고 기존의 만주 횡단철도나 몽골 횡단철도를 이용함으로써 수송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롄(大連)항과 톈진항을 통한 동북 3성 지역의 철도 수출입 화물운송이 이미 용량한계에 도달해 대체루트 개척에 고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단철도 당사국들 적극적 입당

남북한 연결철도가 복원될 경우 한반도를 경유해 TSR과 직접 연결되는 화물은 2005년 23만9,000 TEU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남북한 연결철도의 운영여건이 개선되면 물동량이 연평균 18%씩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의선과 경원선 복원은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경제에도 견인차 역할을 할 전망이다. 경의선은 북한 서해안공단의 활성화와 함께 중국의 상품의 대한국, 대일본 수송에 기여하게 된다.

아울러 중국에서 화물체증이 가장 심한 하얼빈(哈爾濱)~다롄 구간의 수송난을 완화하고, 중국 북부 지역의 산업발전을 앞당기는데도 한몫을 하게 된다. 경원선은 나진·선봉지역과 두만강 지역 개발, 러시아 연해주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에 대해 북한은 1990년대 초까지 “아시아 횡단철도의 종착점은 북한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반대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북한은 철도연결이 성사될 경우의 통과운임 수입을 고려해 1996년 52차 ESCAP 회의를 기점으로 암묵적 지지로 입장을 바꿨다. 북한이 이같은 암묵적 지지에서 한발 나아가 적극적 지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바로 6월 남북 정상회담이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에 대해 적극적 지지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TSR을 북한 철도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러시아 고위 관리들도 최근 경의선을 TSR과 연결시키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도 1997년 러·일 정상회담에서 TSR 활성화를 위한 협력에 합의해 극동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천명한 바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부상

중국의 노력은 보다 구체적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한국과 ‘한·중 철도협정’을 체결했다. 철도망이 연결돼 있지 않은 국가간에 이례적으로 체결된 이 협정은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북 3성의 지하자원 수출 루트 개발에 노력하고 있는 중국에게 한반도 철도연결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TSR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총연장 9,297㎞에 걸친 유라시아 대륙의 최단거리 육상교통로.

모스크바에서 TSR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핀란드로 연결되는 노선과 벨로루시를 경유해 서유럽으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분기된다.

TSR의 아우뻘인 TCR 또한 리엔윈항에서 출발해 장쑤(江蘇)성, 시저우(西州), 시안(西安), 신장(新藏) 우루무치, 아라산구로 이어져 중국 중북부를 관통하고 있다. TCR은 아라산구에서 TSR과 연결돼 유럽으로 뻗어간다.

유라시아 대륙을 꿰뚫는 TSR과 TCR이 한반도의 남쪽 부산을 종착점으로 달려오고 있다.

남북한 철도연결은 한반도가 동북아의 물류중심지로 거듭하는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분단 반세기 동안 남한은 반도국가가 아니라 대륙과 육상교통이 막힌 ‘섬나라’였다.

경의선과 경원선 연결은 한반도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지경학적 위치를 살리는 초석으로 기대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7 17:02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