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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23)] 부시(武士)③

많은 사람이 일본의 ‘사무라이(侍) 정신’, 또는 ‘부시도’(武士道)를 얘기한다. 일본의 지배층을 이뤄온 무사의 도덕·윤리 의식, 인생관과 가치관 등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흔히 무사도라고 하면 선연한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전함에 자폭 공격을 감행한 ‘가미가제(神風) 특공대’는 물론 최근까지도 윗사람의 허물을 덮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하수인의 모습이 그렇다.

1970년 11월 추종자들을 이끌고 도쿄(東京) 이치가야(市ケ谷)의 육상자위대 동부방면대 총감부를 점거, 천황제 회복을 위한 자위대의 총궐기를 외치며 자결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최후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의 믿음과 명예,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던지는 순교자의 모습이기도 하고 집단주의에 감염된 정서적 파탄의 상징이기도 하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강조한 무사도는 전체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색채가 짙었다.

당시 역사가와 사상가, 신도의 지도자들은 신화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무사도의 뿌리를 찾으면서 이야말로 ‘야마토다마시’(大和魂), 즉 일본의 민족정신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런 주장은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교육정책에 그대로 반영돼 일본인의 뇌리에 박혔다.

그러나 무사도에 대한 이런 찬양에는 수많은 오해가 뒤섞여 있다. 5,000엔짜리 지폐에 초상화가 실린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가 영어로 집필, 구미에 본격적으로 무사도를 알린 ‘무사도, 일본의 정신’(Bushdo, The Soul of Japan)조차도 이렇게 밝혔다.

“무사도는 도덕적 원리의 규칙으로 무사가 지켜야만 하도록 요구되고 가르쳐졌다. 이는 성문법이 아니다. 구전으로, 또는 몇몇 유명한 무사나 학자의 글에 의해 전해진, 몇 안되는 격언일 뿐이다.(중략) … 그 기원을 두고 명확한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봉건시대에 자각된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적 기원은 봉건시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무사도의 모체인 ‘무사의 길’이라는 말은 무사가 사회적 계급으로 성장하는 가마쿠라(鎌倉)시대에 나타났다. ‘무사의 길’은 문무를 겸비하고 인정이 있는 무장의 모습, 은혜를 베푼 주군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무사의 모습 등을 주로 이상형으로 삼았다.

그러나 센코쿠(戰國)시대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신명을 바쳐 싸우는 무사와 함께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무예만으로 당당하게 선 무예가의 모습도 ‘무사의 길’로서 거론됐다. 센코쿠시대 말에서 에도(江戶)시대 초기를 살았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는 무사가 본분인 무예 수련에만 열중하면 모든 것에 통하고 이길 수 있다는 표본으로 여겨졌다.

에도시대 들어 무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일변했다. 더이상 싸움이 필요없는 시대를 맞아 바쿠후(幕府)나 한(藩)의 행정관료로 일하게 된 사무라이에게는 문무의 겸비는 물론 엄격한 절제 등 유교적 도덕률이 무사도란 이름으로 요청됐다.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마찬가지로 상류층에 요구되는 특별한 도덕률이었던 셈이다. 한편으로 쥐꼬리만한 봉급에 의존하면서 신분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상인의 자본에 예속돼 간 하급 무사들은 ‘좋았던 옛날’인 센코쿠시대의 향수에 젖었다. 이들에게 옛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의리와 동표간의 신의의 표상이 됐다.

또한 그런 ‘돈 안되는 의리’에 대한 경도는 이들의 신분적 자존심을 버티는 기둥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후기 몰락한 양반의 꼿꼿한 선비정신을 연상시킨다. 이런 가운데 17세기 들어 ‘무사도’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사무라이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논한 무사도의 고전 ‘하가쿠레’(葉隱)와 더불어 무사도는 관념적·미학적 색깔을 띠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부도소신슈’(武道初心集)에 이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보다 유연한 무사의 지침서가 나온다. 나중에는 월급쟁이로 전락한 무사의 처세술을 일러주는 ‘반슈교카’(番衆狂歌) 같은 책까지 나오게 된다.

중앙에 파견된 한시(藩士), 즉 지방 영주의 가신들은 한탄을 섞어 후배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오늘날의 무사에게는 일을 잘하고 못하고 보다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경조사나 계절 인사, 선물을 잊어서는 안된다.”

조선의 양반과 마찬가지로 금욕적인 군자의 삶을 이상으로 삼았던 일본의 무사가 부박한 인심에 휩쓸리는 모습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체제 피로의 증상이다. 메이지 유신과 패전 등 역사에 굵은 매듭이 지어질 때마다 일본에는 ‘혁신 관료’가 현대판 사무라이로서 등장했다. 일본 관료의 절제와 자긍심은 유명했지만 전후 55년이 지난 지금은 이들의 부패와 무능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0/08/3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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