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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황혼…갈곳이 없다] '왕년'에 기대사는 노인들의 해방구

[르포] 탑골공원

촉촉한 늦여름비가 내리던 8월의 마지막 날 오전, 서울 종로2가의 탑골공원.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붓는데도 아랑곳 않고 이곳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로 붐볐다.

팔각정과 임시 정자 아래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기와 바둑을 두거나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처마가 있는 정문 입구와 화장실에까지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몇몇 노인들은 큰 나무 아래 의자에 걸터앉아 마냥 내리는 비를 맞기도 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모여들면서 노인들은 공통 화제라도 생긴 듯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말을 붙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비가 내리면 노인들이 모두 귀가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오히려 이들에게 비는 답답한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생활의 변화를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 맺힌 설움·하소연 나누며 소일

탑골공원(구 파고다공원)은 본래 조선 세조 12년 원각사가 세워졌던 절터. 그러다 광무 1년(1897년) 총세무사였던 영국인 고문 브라운에 의해 서울 최초의 공원으로 조성됐다. 일제 암흑기였던 1919년에는 3·1운동의 민족 봉기가 시작된 역사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역사적 자취를 찾긴 매우 힘들다. 오히려 갈 곳 없는 노인이 가장 많이 찾는 ‘그들만의 공간’라고 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이곳은 평일이나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노인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할머니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할아버지들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쌈짓돈이나마 아낄 수 있는 무료급식이 주어진다는 점 때문에 모여든다.

“1960년대 말 이 공원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였지. 자정이 넘어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담을 넘어들어와 청소 도구를 보관하던 가건물에 몸을 의지한 채 밤을 지샜어. 겨울이면 신문지나 판자에 불을 붙여 몸을 녹였고 날이 너무 추운 날에는 종로시장 가게집 연탄불을 훔쳐 그것만으로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곤 했지. 지금은 이곳에 오는 노인들의 생활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아졌지만 그때 같은 정은 사라졌어….”

탑골공원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40년을 지내왔다는 정모(65)씨. 1960년 25세의 청년시절 홀홀단신으로 상경해 기거할 곳이 없어 이곳을 집 삼아, 직장 삼아 한평생을 살아왔다는 정씨는 이곳을 “대학 교수님들도 못당할 만큼 인생의 온갖 경륜을 쌓은 사람들의 집합 장소”라고 말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의 가장 큰 소일꺼리는 젊었던 ‘왕년의 시절’에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예전에 박사 교수 변호사 대기업간부 통신사사장 육군준장 치안국장 출신 등 내로라 하는 직위에 있었던 사람들도 온다. 하지만 상당수 이야기가 과장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얘기·젊은세대 성토가 단골메뉴

대화의 단골소재는 국내 정치계 소식과 ‘요즘 젊은이’에 대한 성토다. 3년전 아내와 사별한 이후 나오기 시작했다는 남모(75·서울 옥수동)씨는 “큰아들과 사는데 할 일도 없는데다 특히 며느리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해 아침을 먹고 무작정 전철을 타고 이곳에 온다”며 “며느리가 나가고 들어갈 때 아는 척도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주한테 ‘할아버지 방에는 냄새가 나니 들어가지 말라’고 해 소위 말하는 ‘왕따’를 시켜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경기 부천시 중동에 산다는 문모(80)씨도 “아내가 골다공증 고혈압 관절염 같은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어 나 하나만이라도 짐이 안되려고 이곳에 나온다”며 “자식들이 돈이 없다고 무시할 때가 제일 서운하다. 젊었을 때 돈을 모아두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며느리를 따라가는 못난 아들놈이 원망스럽다”는 한탄에서 “시대가 변해서 어쩔수 없다”는 자조적 하소연까지 자식을 둘러싼 불만과 서운함은 이곳을 찾은 노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정부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철원 백마고지 전투에 잠시 참가했었다는 정모(75·서울 행당동)씨는 “다행히 운전병이어서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와 오른손에 파편을 맞아 오늘 같이 흐린 날만 되면 온몸에 쑤신다”며 “우리 세대는 배고픔보다 더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결국 돌아온 것이라곤 가정에서 버림받고 국가로부터도 괄세받는 처지가 된 것 뿐이다. 너무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여기에 온 노인들이 비가 와도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설움과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바로 여기 밖에는 달리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서로 관련이 없는 노인들이 부정기적으로 모이는 곳이지만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규율과 질서, 빈부의 격차, 집단간의 알력 같은 것이 존재했다.

1990년대 들어 이곳에는 할아버지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소위 ‘박카스 아줌마’들이 나타났다. 보통 40~50대 독신여성인 이들은 이곳을 찾는 노인에게 접근, 박카스나 요쿠르트를 나눠마신 뒤 병당 2,000~3,000원을 요구하거나 노골적으로 1만원 정도의 화대를 받고 인근 여관에서 몸을 팔곤 했다.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자 올해 3월부터 공원 관리소측과 시민이 중심이 된 ‘탑골공원 성역화 시민모임’이 결성돼 박카스 아줌마와 술주정꾼을 추방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현재 이곳에서 박카스 아줌마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한 노인은 이곳에 있던 박카스 아줌마들이 단속이 없는 종묘 공원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공원 안에 있는 매점 주인은 “올해 초부터 박카스 아줌마를 쫓아내면서 이들이 팔아주던 음료수 판매가 현격히 줄어들어 매출액이 많이 감소했다”며 “이곳 노인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담배이고 이밖에 건빵 음료수 과자류 같이 값싼 제품이 주로 팔린다”고 말했다.


이곳에도 빈부격차·집단알력 상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에도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매일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단체는 불교계인 원각사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채 등 두 곳. 두 단체에서는 효과적 관리를 위해 급식자 명단을 작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명단 때문에 노인 사이에 집단으로 패가 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원각사쪽에 명단이 올라가 있는 노인이 어느날 사랑채쪽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자율감시하는 노인들이 나서 “당신은 우리쪽이 아닌데 왜 오느냐”며 면박을 줘 쫓아버린다는 것.

10년째 이곳을 찾는다는 김모(72)씨는 “우리도 사람인 이상 어느 때는 설렁탕 보다 비빔국수를 먹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공짜로 얻어먹는 처지라 해도 편을 갈라 나이든 노인을 구박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점심을 사먹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주변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낙원상가 부근의 식당. 1,500원짜리 해장국에서 2,000원 하는 설렁탕집까지 값싼 식당이 많이 있다. 북문쪽에 있는 커피 자판기는 단돈 100원이면 된다.

관리소의 한 관계자는 “이곳에는 끼니를 때우기 힘들어 무료급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극빈자가 있는가 하면 모시적삼에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신사도 있을 정도로 극과 극에 있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며 “주로 없고 소외된 사람이 많은 만큼 기쁜 일 보다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제 도심의 노인정으로 변해버린 탑골공원. 하지만 그곳에는 한민족사에 가장 힘겨웠던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넘치고 있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09/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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