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명품 신드롬] 비싸도 이름값 한다는데…

불경기 모르는 명품매장, 백화점 마케팅전략도 한 몫

결혼 3년째인 주부 김모씨(29)는 백화점에 갈 일이 있으면 1층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백화점 한 가운데에 자리한 중저가 매장을 포위라도 하듯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고 있는 고급 외제 브랜드의 각 매장들을 일일이 구경하기 때문이다.

회사원 남편을 둔 그에게 그런 매장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가격표에서 0이 하나 지워져야 살 수 있을만큼 비싸다. 조금 예쁜 핸드백이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고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려고 해도 50만원 이하로는 찾을 수 없다. 정장이나 보석류는 아예 가격을 묻기도 겁이 난다.

그래도 김씨는 가끔 그곳에서 물건을 산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때 선물로 받은 돈을 모으거나 몇달 동안 생활비를 아끼고 백화점 카드로 6개월 무이자 할부를 받으면 가능하다. 그렇게 김씨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샤넬 핸드백을 샀고 남편 생일에는 70만원이 넘는 구찌 가방을 선물했다.

돌아오는 자신의 생일 때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100만원대의 에르메스 시계를 살 예정이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돈이 아깝지는 않다. “싼 거 10개 사느니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거 1개 사는게 훨씬 나아요. 유행도 덜 타고 질도 좋고. 역시 명품은 이름 값을 하거든요.”


외국 유명브랜드 매출 꾸준한 증가

명품(名品). 원래는 ‘오랜 전통을 가진 뛰어난 물건’이란 뜻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값 비싼 외제 상품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명품이라는 말뜻이 변한 것만큼이나 명품에 대한 개념도 변하고 있다.

10년전 국내 최초의 명품 전문 백화점을 표방한 갤러리아 명품관이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극소수의 부유한 중장년층만이 찾던 명품이 이제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갖고 싶어하고,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되는 물건이 되었다.

갤러리아 백화점 신명균 대리는 “지난 10년 동안 명품관 매출액은 IMF위기 때조차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20-30대 젊은 여성은 물론 중고등학생이 명품 구매 고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명품관에서 쓰는 돈은 상품구입 1회당 평균 25만8,700원. 일반백화점의 객단가가 4만9,000원~7만3,000원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명품관만이 아니다.

롯데 본점의 경우 올 상반기 명품매출이 5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본점 역시 작년보다 36%가 증가한 215억원 어치의 명품을 팔았다.

명품의 대부분은 의류와 구두, 핸드백, 보석 및 시계 등 패션용품이지만 개당 200만원 이상 하는 혼마 골프 세트, 100만원이 넘는 몽블랑 만년필 등의 문방구류와 캘빈 클라인, 에뜨로 등 유명 브랜드의 침구 세트 등 생활용품에서도 점차 명품 취급을 받는 브랜드가 늘어나는 추세다.


철저한 명품만들기 마케팅

도대체 명품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수입업체와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에 있다. 대부분 고급 수입품인 명품은 평균 30~40%의 마진률에 단가도 세다.

또 백화점의 이미지를 높여주고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수입업체와 백화점은 각각 고수익을 보장하는 명품 수입과 입점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이를 위해 수입업체는 물론이고 각 백화점도 저마다 자체 해외상품팀을 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시장에 바이어를 보내 한국 소비자에게 호감을 살만한 브랜드를 들여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면 현재 들어와있는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자발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국내 수입업자나 백화점이 들여온 것이다. 일단 해외 브랜드를 들여온 다음에는 ‘100년 전통의 프랑스 수제품’이니, ‘유럽 최고의 보석 명가’니 하는 선전문구와 함께 명품 만들기에 나선다.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패션쇼를 열거나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간접광고를 하기도 하고 ‘노블레스’나 ‘뮤제 드 마르크’ 같은 명품 전문 잡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그런 후 명품관이나 명품존에 입점해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면 그 브랜드는 그대로 명품이 되는 것이다.

일단 명품이 되면 브랜드 이미지와 트렌드 메이킹을 적절히 구사해 새로운 명품 수요를 창출해낸다. 결국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명품은 한번 사면 오래 쓴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신상품을 사게 된다. 최근 들어 잇달아 문을 여는 샤넬 등 외국 브랜드의 한국 지사 마케팅 전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능력에 맞는 합리적 소비 돼야

하지만 최근의 명품 신드롬은 수입업자와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 하나만으로 는 설명할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팔려는 사람의 의도가 사려는 사람의 기대심리와 맞물려 나타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명품을 사는 사람은 “명품은 이름값을 한다”는 김모씨처럼 하나같이 “물건이 좋고 마음에 들어서 비싸지만 산다”고 말한다. 마음에 드는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것을 무조건 탓하거나 비싸다고, 또 과소비로 몰아부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브랜드로 대표되는 명품은 제품의 기능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바에 의해 사고 팔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명품이 상징하는 바는 획일성과 물신주의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유행이니까 너도나도 구매하고, 남들이 갖지 못하는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남보다 우위에 선다는 만족을 얻는 것이다.

결혼준비는 이같은 명품소비의 상징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기회다. 지난해 첫 딸을 결혼시킨 박모씨(60)의 경우. 그는 혼수로 딸의 시어머니에게 명품 핸드백을 보냈다. “예단을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500만원이 넘는 명품 악어백이나 보석 브로치, 골프채 세트 등은 당연히 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할 것 같아 조금 싼 것으로 했다”고 한다.

또 박씨의 사돈은 신부에게 샤넬 핸드백과 라 프레리 화장품 세트, 티파니 시계 등을 선물했다. 박씨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 딸이 남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싫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명품을 가지면 친구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20-30대나, 모조품이라도 사서 왕따를 면하려는 중고등학생에게도 명품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명품 신드롬은 각자의 경제능력과 개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소비가 되지 못하고 무분별한 과소비로 이어지기 쉽다.

신 수석연구원은 “명품을 쓸 사람은 명품을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사회다. 현재와 같은 명품 신드롬으로 인한 명품의 대중화는 결국 보통 사람이 절대 살 수 없는 초고가의 또다른 명품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2,700만원짜리 불가리 반지와 3,400만원짜리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7,200만원대의 벤츠 스포츠카와 1억원짜리 다인 스피커 등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속속 등장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koshaq@hk.co.kr

입력시간 2000/09/20 18:41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