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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순례(31)] 영국 BAE 시스템스

[다국적 기업순례(31)] 영국 BAE 시스템스

항공·군수업계의 최대 메이저

영국은 국제정치학계에서 흔히 미국의 `트로이 목마'로 통한다. 영국이 지정학적으로는 분명히 유럽대륙의 일원이지만 그 전략적 이해관계는 유럽보다 오히려 미국에 더 가깝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유럽국가들의 여론을 조성할 때 영국은 충실한 미국의 동반자 역할을 한다. 반면에 영국은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이용해 NATO 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한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관계는 군수분야 협력에서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핵전력은 상당부분 미국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영국의 주요 핵전력을 구성하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병기창에서 낮잠을 자야 한다. 핵탄두와 미사일은 영국이 자체 제조하지만 이를 탑재할 전략 핵잠수함은 미국제를 구입해 운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이 일방적으로 군사기술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해군전력의 핵을 이루는 항공모함 운용기술의 상당부분은 20세기 초 영국해군의 노하우를 빌어왔다. 좁은 항모갑판에서 전투기를 이륙시킬 때 사용하는 `스키점프대'와 이착륙 통제 신호기는 본래 영국해군이 고안해 낸 것이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해양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들 기술은 미국의 고유기술처럼 돼 버렸다.


세계 최대 방사업체

새천년에도 미국의 헤게모니는 당분간 깨질 것 같지 않다. NATO 소속 유럽국가의 국방비는 모두 합해야 미국의 60%에 불과하다. 그러면 세계최대 방위산업체는 어느 나라 회사일까. 당연히 미국회사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올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현재 세계최대 방산업체는 영국의 `BAE 시스템스'다.

BAE의 옛 이름은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지난해 미국 전자관련 방위산업체인 GEC마르코니를 인수하면서 세계3위로 부상했고, 이름도 현재의 BAE 시스템스로 바꿨다.

올들어서는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자회사인 컨트롤 시스템사(4월)와 에어로스페이스 일렉트로닉스 시스템스사(AES·7월)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세계최대 방산업체로 재탄생했다. BAE가 컨트롤 시스템과 AES를 인수한 가격은 각각 5억1,000만달러와 16억7,000만달러.

지난해 이후 3차례의 인수합병으로 BAE는 올해 매출을 업계 1위인 173억1,700만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전세계 5대 방산업체 중 나머지 4개 기업은 모두 미국회사다. 2위는 록히드 마틴으로 예상매출149억1,600만달러. 이어 3위 레이시온 144억8,900만달러, 4위 보잉 122억달러(우주산업 등 제외), 5위 노드롭 그루만 79억200만달러의 순이다.

BAE가 미국 군수업체들을 인수한 것은 기술적 취약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지구상 최대의 무기수요국인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BAE는 컨트롤 시스템사츛m? AES를 인수함으로써 미래전의 핵심인 전자시스템 기술을 한단계 끌어 올릴 수 있게 됐다.

더구나 AES는 미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F22 랩터와 개량형 F18 슈퍼 호네트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AES 인수 덕분에 BAE는 약 3,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차세대 전투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미국 업체 인수, 미국 무기시장 공략

BAE의 미국 방산업체 사냥은 1990년대 들어 활발히 전개돼 온 `유럽독자 안보체제'창설 움직임과는 분명히 배치된다. 유럽독자 안보체제는 참여국의 무기체제 통합을 요구하고, 나아가 이를 조달할 유럽 방위산업체간 통합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정치적 필요에 역행해 BAE가 유럽내 협력이 아닌 미국과의 협력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통합군 창설이 가시적인 미래에 이뤄질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 유럽독자 방위체제의 필요성이 커진 것은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서 겪은 서유럽의 군사적 한계성이다. 뒷마당에서 발생한 국지전에서조차 해결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 독자방위체제 구축 논의를 자극했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각국의 계산은 달라진다. 우선 대부분의 국가가 군사비 증액을 기피하고 있다. 둘째, 프랑스의 경우처럼 정부가 국영 방산업체의 대폭적인 민영화를 회피하고 있어 유럽 방위산업 통합은 백년하청이다.

BAE가 미국 업체를 인수한 것은 결국 불확실한 유럽시장에 기대기 보다는 가시적인 미국시장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군수시장 규모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군수시장을 합한 것보다 크다.

미국의 거대 다국적 군수업체들이 평균매출의 약 80%를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미국시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코소보 전쟁에 동원된 다국적군의 항공기는 75%가 미군기였고, 폭탄과 미사일은 전체의 80%를 미국이 공급했다.


에어버스·유로파이터가 주력상품

BAE의 간판 상품은 중대형 민항기인 에어버스와 다목적 전투기 유로파이터. 따라서 BAE는 항공기 제작회사로 두드러진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77년 영국의 항공기 제작회사 3개가 합작해 국영기업으로 출발했지만 1981년 대처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민영화했다. BAE가 재도약을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 강력한 구조조정과 터보 프로펠러 엔진사업 포기 등 전문화 과정을 거쳤다.

이에 따라 92년 3,300만달러 적자의 부실기업에서 98년에는 순익 10억달러를 낸 효자기업으로 변신했다. 97년에는 95억달러를 수출해 영국최대의 수출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BAE는 최근 5년간 전세계 항공·군수업체 중 가장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BAE의 주요 생산품은 에어버스, 유로파이터와 함께 고등훈련기 겸 전투기 호크 100, 해리어 수직 이착륙 전투기, 대함 유도탄 시-스쿠아, 방공레이더를 제압하는 알람 미사일 등이다. 전투체계 통합 시스템인 SSCS는 한국 해군의 1번기함 광개토대왕함에 탑재돼 있다.

BAE가 기여한 항공사의 기념비적인 업적도 적지 않다. 세계최초 대서양 논스톱 횡단비행기 빅커스 비미, 세계최초 상용화 터보 프로펠러기 비스카운트, 세계최초의 초음속 항공기 콩코드, 세계최초의 수직 이착륙 전투기 해리어, 세계최초의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시울프 등이 그것이다.

잉글랜드 북서부 체스터에 본사를 두고 있는 BAE의 전세계 직원은 10만8,000명. 올 수주액은 620억달러에 달한다.

올해 예상 매출액(173억달러) 중 가장 큰 비율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에어버스로 40%. 나머지는 군용기 31%, 시스템 서비스 11%, 유도무기 7% 등이다. BAE는 제품의 약 89%를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현재 BAE는 3조원이 투입되는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자사의 유로파이터를 수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 BAE는 지난해 한국 항공산업에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 현대, 대우 3사의 항공분야 빅딜로 탄생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1억6,000만달러를 현금투자하겠다는 것. 미제 전투기가 아닌 영국제 전투기가 한국의 창공을 누빌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0/10/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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