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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면 죽는다" 무법천지 사채시장

"빌리면 죽는다" 무법천지 사채시장

폭력배들 사채업 장악, '채무자의 저승사자'

[사례 1] 충남 보령시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한모(38)씨는 지난 6월 운영자금이 급해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렸다. 대출금1,000만원에 50%의 이자를 더해 되는데로 갚기로 했지만 한씨가 변제기일을 어기자 이들은 곧 본색을 드러냈다.

8월17일 한씨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10여명의 폭력배에게 납치돼 인근 야산으로 끌려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 버리겠어.” 이날 40㎝짜리 회칼로 왼쪽 손목과 무릎을 찔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은 한씨는 같은 달 21일에는 인근 바닷가에서 바닷물에 머리를 쳐박히며 물고문을 당하는 등 4차례나 납치·폭행당했다.

한씨는 결국 20억원 상당의 슈퍼마켓 경영권과 냉동차 3대(시가 5,000만원)등 전재산을 고스란히 뜯겼고 “입을 열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서울의 여관을 전전하다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

[사례 2]
지난해 9월 딸의 학자금 300만원을 빌린 40대 주부 최모씨는 같은해 말 “폭력과 협박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금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남편은 사채업자의 추적에 행방불명이 됐고 딸은 학교에서까지 이들에게 감시당하는 등 300만원에 한 집안이 몰락해 버렸다.


살인적 고리로 집안 풍비박산

빌리면 죽는다. 유흥가에서 기생하던 `어깨'들이 사채시장을 장악하면서 사채시장이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폭력배,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일부 사채업자들은 한번 먹이감이 걸리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무자의 재산을 털고 집안까지 풍비박산으로 만들고 있다.

경찰은 폭력배들이 1997년 말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유흥업소가 된 서리를 맞으면서 사채시장에 하나둘씩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998년 규제개혁의 하나로 이자제한법이 철폐되면서 고리대가 가능해진 것이 결정적 계기”라면서 “폭력배들은 `진상처리조'라는 채권회수팀을 만들어 계약조건을 멋대로 강요하는가 하면 심지어 담보물을 빼앗기 위해 전기고문 물고문까지 서슴지 않는 등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이 8월8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50일간 실시한 일제단속에서 58개 업소, 사채업자 55명(45명 구속), 폭력배 73명(41명 구속) 등 모두 163명이 검거(109명 구속)됐다.


먹이감으로 찍히면 꼼짝없이 당해

이들은 `○○기획', `○○실업', `○○금융' 등 그럴듯한 상호로 사무실을 차려놓고 생활정보지 등에 급전대출 등 광고를 내거나 명함, 광고전단을 배포하고 먹이감이 걸리기를 기다린다.

돈이 급한 사람의 대부분이 아무리 불리한 조건이라도 쉽8?사리 받아들인다는 것을 잘 아는 이들은 살인적인 고리대로 올가미를 씌우기 마련. 이들은 대출금의 20~30%를 선이자 및 수수료로 떼고 10일마다 원금의 10~15%에 달하는(월 30~45%) 초(超)고금리를 강요한다.

또 무담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승용차, 부동산, 전·월세계약서 등을 담보로 요구한다.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300만원을 빌려주면서(물론 실제 대출한 돈은 200여만원에 불과하다) 1,000만원짜리 현금차용증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이자로만 1,200만원을 뜯어낸 폭력사채업자도 있었다.

이 단계에서 채무자들은 담보를 빼앗을 대상과 변제기일을 미뤄 고리를 계속 뜯어먹을 대상 등으로 나뉘게 된다. 한번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라가면 그야말로 돈을 갚으려 해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고의로 도망다니거나 터무니 없는(혹은 계약조건에도 없는) 이자를 요구, 변제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변제기일이 지나면 진상처리조가 등장, 협박과 폭력으로 담보물을 강제로 빼앗거나 빌린 돈의 몇 배나 되는 이자를 뽑아낸다.

몇푼 급전을 융통한 서민과 영세사업자들은 그야말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거미줄에 걸린 듯 몸이 옥좨이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된다.

폭력배로 구성된 진상처리조는 그야말로 저승사자보다 더 두려운 존재(`진상'이라는 표현은 탐나는 담보물을 건 채무자나 돈이 없는 채무자로 구성된 일종의 블랙리스트로서 폭력을 써서라도 해결을 해야 할 대상을 가리킨다).

서울 도봉구에서 S사채업소를 운영하던 사채업자 박모(30·구속)씨와 이모(29·구속)씨 등 3명의 폭력배는 `돈은 쥐어짜야 나온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8?게 하지말라'는 등 15개 항의 행동지침까지 마련, 채무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김모(34·구속)씨 등 폭력배도 서울과 수도권에 9개 사채업소를 차려놓고 `관할구역에 있는 사채시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킨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자'는 등 행동강령을 만들며 구역다툼까지 벌였다. 이들은 업소마다 폭력배 3~8명을 배치하는가 하면 `변제억제방법'을 각 업소별로 연구하도록 했다.

채무액수와 이자, 변제일까지 마음대로 변경했다. 600만원을 빌린 후 20일만에 돈을 갚으려 했던 김모(45·여)씨는 “계약을 어겼으니 1,800만원을 내놓으라”는 협박에 1억5,000만원짜리 슈퍼마켓을 빼앗겼고, 강모(21·여)씨도 월 45%의 이자를 물어가며 원금 100만원까지 다 갚았지만 사채업자 조모(45 구속)씨가 계약서를 조작한 후 “창녀촌에 보내겠다”고 가족 앞에서 협박, 200만원을 더 뜯기고 말았다.


채무액·이자·변제일 마음대로 변경

잔인하고 흉포한 폭력도 일삼았다.

홍모(38)씨는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채 9시간 동안 전자봉 등으로 전기고문을 당한 끝에 놀이동산 지분 25%(시가 3억원)을 뜯겼고, 심모(60)씨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차로 밀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으며 3시간동안 50여 차례 차량충돌을 당했다.

서울 강남 유흥가 폭력배 출신 사채업자에게 1억6,900만원짜리 아프트 분양권과 자동차 등 모두 1억8,400만원을 뜯긴 강모(34)씨는 9차례나 계속된 폭행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1,000만원을 빌렸다가 강간당한 후 단란주점에서 나체쇼와 윤락을 강요받은 피해자도 있8?었다. 이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피해자들이 되려 흉기를 휘두르거나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경찰관계자는 “예전에도 사채시장에는 빚을 받아내기 위한 폭력배들이 기생했었지만 최근에는 폭력의 정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버렸다”면서 “폭력배의 온상이자 자금줄이 된 사채시장에 대해 지속적 단속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준현 사회부 기자 dejavu@hk.co.kr

입력시간 2000/10/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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