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상]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는 사회

`공동경비구역 JSA' 가 최단기간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어 한국영화 사상 최다관객 동원을 위해 맹렬하게 달려가던 9월25일,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만났다.

`JSA 전우회'라는 존재였다. 이날 언론사로 날아든 한 장의 팩스. 제목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한 JSA전우회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서였다. 회장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영화가 소설(DMZ)을 원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영화에 나오는 배경 및 소품은 JSA요원은 물론 전군의 명예실추 및 사기저하와 국민의 마음을 흐트려 놓는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므로 이 영화가 거짓임을 밝혀 우리 군의 명예회복 및 사기진작과 국민의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기 위해 남북분단의 최일선에서 분단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느꼈던 우리 JSA 전우회에서 나설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신문과 방송에, JSA요원 및 예비역 전우의 명예회복과 근무중 전사한 전우 유가족에 대한 공식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상영중인 영화에도 `영화가 실제 현실과 다르다'는 내용을 삽입하고 JSA요원의 명예실추와 사기저하에 따른 사과문을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시한을 못박았다. 30일까지로. 지키지 않으면 영화상영을 실력으로 제지하고 고발조치를 하겠다고. 그리고 하루 뒤인 26일에는 JSA전우회 회원 20명이 영화 제작사인 명필름을 찾아 거칠게 항의하고 유리창을 부수는 시위를 했다.

27일 한국영화제작협회는 곧바로 이를 개탄하고 이런 창작의 자유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을 선포했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그들(JSA전우회)이 명예훼손 운운하며 폭력적 방법으로 자기주장을 펴고 창작자를 위협한 것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더구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 한국영화를 지키고 있고,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사태는 반영화적, 반문화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곧바로 시민단체와 다른 영화단체와 함께 `명필름 난입사건 관련 창작의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 를 구성하고 “창작, 표현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침해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영화계, 문화예술계 전체가 엄중히 대처해 나가겠다” 는 결의를 다졌다.

명필름과 영화제작진은 29일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냈다. “여기 묘사된 내용은 실제 JSA요원의 근무현실과 다름을 밝히며 이 영화로 인하여 JSA 요원 및 전역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내용은 상영중인 필름에도 자막으로 집어넣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영화를 보는 견해와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그 의사를 폭력과 강압으로 관철하려 했다면 어떻게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가능하겠습니까.

평화로운 방법과 적법한 절차에 의한 항의나 요구에는 최대한의 성의를 가지고 응할 것이나 더 이상 폭력과 강압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JSA 전우회에서 반발했다. 마크와 복장을 도용했고, JSA의 명예로운 모든 것을 훔쳐 사용했다며 영화 상영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내겠다고 밝혔다.

한때 어느 PD는 “우리나라에서는 코미디 프로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직종이나 집단을 조금만 희화하면 항의와 압력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날 거지 아니면 도둑이 주인공이었다. `동작 그만' 이라는 프로그램은 그래서 획기적이었고 화제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 고 말을 해도 소용없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이 영화는 실화'라고 소개한다. 이 말은 곧 영화는 픽션을 바탕으로 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영화를 영화로 보고, 영화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사회는 아니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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