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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서울 은평구 홍제동(弘濟洞)

홍제동(弘濟洞)은 본디 1914년 4월1일 일제가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옛 북부 연은방(延恩坊)의 홍제원계(弘濟院契)에서 비롯된 땅이름. 홍제원(弘濟院)은 오늘날의 홍제동 131번지로서 옛날 나라에서 경영하는 여각이다.

서울 근교에는 4원(홍제원 보제원 이태원 전관원)이 있었는데 홍제원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이 성안에 들어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며 예복을 갈아 입었던 곳이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조선을 침입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仁祖)는 왕족과 비빈이 피난했던 강화도가 먼저 청군에게 함락되자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치욕스런 복의 예를 올렸다.

그 당시 청군에게 수모를 당할 것을 염려하던 벼슬아치의 부녀자들이 모여 “만약 청병을 만나 수모를 받게 되면 차라리 자살을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이때 김유의 부인 유씨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고 말하자 이 참판의 부인이 유씨 부인에게 “사대부집 부인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공박하였다.

그러나 그때 유씨를 나무랐던 이 참판의 부인은 순순히 절개를 굽혔으나 오히려 유씨 부인은 끝까지 정절을 지키다가 청병에게 무참히 화를 당했다. 뒷날 세인들은 이 참판 부인을 가리켜 “말만 앞세운 정절(貞節)”이라고 했다.

호란(胡亂)이 끝나자 많은 여인이 청나라 병정에게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그 가운데 심양(審陽)으로 끌려갔던 사대부집 여자들을 돈을 쓰거나 줄을 대서 서울로 되돌아오게 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 이 `환향녀'라는 말이 시간이 흐르면서 `화양년'이라는 비속어가 된다.

때로는 도중에 청나라 병정의 눈을 피해 몰래 도망쳐오면서 갓을 쓰고 남장을 하고 돌아오니 이를 두고 또 `갓쓴이 아이'라 불렀는데 뒷날 `가스나이→가시내'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이미 오랑캐에게 더럽혀질대로 더렵혀진 부인을 다시 맞아들여야 하는 조정의 고민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에 인조가 영을 내려 “홍제원의 냇물(오늘날의 연신내)에서 목욕을 하고 서울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노라”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그녀들의 정조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자가 있으면 엄벌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때로는 오랑캐에게 굴복하여 온갖 추파와 수모를 던지는 여인도 있었고, 혹은 목숨을 걸고 끝내 정조를 지키다 화를 당한 여인도 많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힘이 약해지면 정복자에게 당하는 수모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그 수모는 여자가 더 컸다. 여자는 승자의 전리품이 되는 경우가 동서(東西)가 같다.

완고한 조선조의 유교사회에서도 이 일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런 뜻에서 홍제원은 여인을 냇물에 몸을 씻게 하여 정조를 다시 복원시켜 준 곳이니 홍제원이란 글 뜻대로 `널리 구제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10/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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