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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계] '태풍의 눈' 탄핵소추안

국회 국정감사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국감 초반에 ASEM에 묻혀 시들했던 열기가 주요 상임위에서 4ㆍ13 총선 사범 편파 기소 시비, 공적 자금 논란, 금융ㆍ기업 구조조정 등 뜨거운 이슈들이 논의되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해에 비해서 국정감사가 전반적으로 맥이 빠졌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남북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북-미 관계개선 등 초대형 사건과 이벤트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 국감을 왜소하게 만드는 우선적 요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재탕삼탕ㆍ중복 질문과 구태의연한 문제제기방식, 비효율적인 감사 진행, 피감기관의 무성의 등 국감이 안고 있는 본질적 한계도 맥빠진 국감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식의 국감이라면…” 고개드는 폐지론

의원들 사이에서도 국감 폐지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의원은 “국감 제도는 우리나라만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군사독재 시절에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행됐고 행정의 투명성도 높아진 만큼 구태의연한 국감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국감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평소 상임위 활동을 통해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감을 계기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감 존폐론을 둘러싼 논의가 무성해질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국감과 겹쳐 증폭되고 있는 이슈는 한나라당이 4ㆍ13 총선사범 편파수사 시비와 관련해 발의한 박순용 검찰총장 및 신승남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다.

한나라당은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보고토록 해 가결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회창 총재의 의지도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이미 당 지도부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도록 하라”고 주문해놓고 있다.

그동안 야당이 제기한 탄핵소추안은 여당의 방어벽에 막혀 일과성 정치공세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한나라당이 탄핵소추안 가결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 137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의석은 133석으로 4석이 부족하지만 자민련이란 변수가 있다. 자민련은 국회법 개정을 통한 교섭단체 구성이 힘들어지자 `자기 목소리 내기'로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사안별로 공조하면서 캐스팅 보트를 최대로 활용,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4ㆍ13총선 후 `비한나라 범여권 연대'로 국회를 운영해왔던 민주당이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최근 국회 통외통위에서 자민련 1석의 캐스팅 보트 행사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 황장엽씨에 대한 증인 채택이 가결된 것이 그 한 예다. 물론 자민련은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에 대해서는 일단 민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통외통 위원으로 통외통위 증인 채택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던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은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는 온당치 못한 정치 공세”라고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그러나 자민련 분위기가 녹록지 않다. 당내 강경파들은 “탄핵소추안 처리에서 한나라당과 빅딜을 함으로써 교섭단체 구성을 따내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는 것조차 막겠다고 하지만 자민련이 한나라당 편을 들거나 최소한 자민련 일부 의원이 이탈해 한나라당 편에 서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또한 자민련의 낙선자들이 강력히 검찰을 규탄하면서 한나라당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도 변수가 되고 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여권 검찰 긴장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여권과 검찰도 긴장하고 있다. 소장 검사들이 한나라당의 탄핵소추안 의에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심상치 않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대검찰청도 한나라당의 편파기소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서는 등 검찰과 한나라당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지검 등에 대한 국감에서도 한나라당과 검찰 간에 선거사범 편파 기소를 둘러싸고 불꽃 튀는 공방이 벌어졌다.

11월7일 국감 종료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그동안 여야 간에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매듭이 지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소된 의원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고 재판결과에 따라 상당수 의원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탓에 쉽게 접점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탄핵소추안 처리 결과에 따라 여야 관계의 파국은 물론 정치권과 검찰의 극한 대립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wkslee@hk.co.kr

입력시간 2000/10/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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