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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갈대의 호수 화진포

[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갈대의 호수 화진포

20여 년 전, 대담한 여름 여행을 떠났었다. `동해 바다의 최북단 해수욕장에 가보자'. 강릉까지는 야간 완행열차를 탔다.

강릉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포장이 덜 된 7번 국도를 따라 한 없이 북쪽으로 올라갔다. 청량리를 떠난 지 거의 24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화진포(강원 고성군) 해수욕장은 인적이 드물었다. 경포대나 낙산 해수욕장이 젊은이들의 기타 소리와 모닥불로 한창 익어갈 때였지만 화진포는 적막할 정도였다.

그리고 깨끗했다. 백사장에는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순백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고왔다.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누워서 약간만 몸을 뒤척이면 모래밭은 내 몸에 꼭 맞는 침대가 됐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화진포 호수였다.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화진포는 명징했다.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여행이었다.

이제 화진포는 승용차로 서울에서 5시간이면 닿는 곳이 됐다. 한여름이면 예전의 경포대 못지않게 붐빈다. 그러나 이맘 때면 고즈넉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늦가을에 찾는 화진포. 파도 넘실대는 바다는 물론 갈대 숲이 끝없이 이어진 호수가 반긴다.

화진포(花津浦)는 꽃이 많았던 호수이다. 해당화다. 도시 사람들이 많이 뜯어가기는 했지만 아직 명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고성군의 군화(郡花)가 바로 해당화다. 그리고 소나무가 많다. 주변 약 12 ha의 언덕에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맑은 물에 달이 빠진 듯하다"고 평했다. 맑고 아름답다는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조선 팔도에 떨쳤다. 죽은 김일성 북한 주석은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이 이 곳에 별장을 지었다.

남북의 정치가들은 이념은 달랐지만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견해는 일치했다. 별장들은 지난해 7월부터 모두 개방되고 있다. 그들이 살았을 때의 사진이나 치적과 관련한 기념물을 모아 놓았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 10호인 화진포는 둘레가 16㎞이고 넓이가 72만 평이다. 동해안의 석호 중 가장 크다. 한 바퀴를 도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호수 전체는 아니지만 동쪽 사면을 따라 도로가 나 있다. 차로 천천히 돌아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화진포에 갈대가 익어갈 즈음이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철새이다. 특히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도 이 곳을 찾는다. 화진포의 물은 염분이 섞여 있어 잘 얼지 않는데다 갈대 숲에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 잔잔한 호수에서 고니 떼가 노닌다. `백조의 호수'가 따로 없다. 그래서 갈대 숲 근처를 지날 때에는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갈대 사이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떼를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인기척이 나면 한꺼번에 숲에서 나와 하늘로 오른다.

화진포의 바다는 백사장의 길이가 1.7㎞이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손을 잡고 거닐기에 적당하다. 이 곳의 모래는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훑고 지나갈 때 `사르르르'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중환은 이를 `우는 모래(鳴砂)'라고 했다.

수평선도 심심하지 않다. 아름다운 바위섬 금구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거북이가 떠있는 모습의 금구도는 훌륭한 자연 세트이다. 모두 금구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koh@hk.co.kr

입력시간 2000/10/3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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