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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검찰, 어디로 가고있나…

검찰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일부 신문과 방송은 최근 일제히 검찰 위기론을 제기하며 '사면초가(四面楚歌)', '흔들리는 검찰', '검찰, 정말 이래선 안된다'는 등 심상치 않는 제목을 달았다.

그 보도의 이면에는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한계에 달했으며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검찰이 현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었다.

물론 검찰은 "밤샘을 밥먹듯이 하며 사건처리에만 매달리는데 칭찬은 커녕 매만 드느냐"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검찰이 손을 대는 의혹사건마다 국정조사 내지는 특검제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여당 실세의 개입설은 '약방의 감초'가 됐으며 야당은 이를 빌미로 검찰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과연 검찰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검찰 위기론이 불거져 나온 배경과 현장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검찰조직 전반에 대한 깊은 불신

검찰 위기론이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로 검찰 조직엔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초 대전법조비리 사건 처리과정에서 일선 검사들의 집단 반발과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이 있었고 몇 달 뒤에는 옷로비 의혹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연말에는 사정 총수였던 김태정 전 검찰총장과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이 옷로비 사건의 유탄을 맞고 구치소로 향했다. 이와는 별도로 정기 인사 때마다 불거진 특정지역 출신 검사의 요직 나눠먹기가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기존의 위기론이 검찰 수뇌부의 친 권력적 성향에서 촉발된 단발성 사건이라면 이번 위기론은 검찰조직 전반에 대한 불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 8월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9월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 의혹 사건, 10월 동방ㆍ대신금고 불법대출 사건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이 월례 행사화했으나 '의혹수사'는 계속 '수사의혹'만 남겼다.

옷로비 사건 1심 재판에선 법원이 서울지검의 초동수사와 대검 중수부의 최종 결론을 부정하고 오히려 특검의 수사 성과를 인정, 최순영 신동아그룹 전회장의 부인 이형자씨 자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수사 의혹, 법원의 무죄 판결과 함께 한나라당의 검찰 수뇌부에 대한 탄핵안 발의 등 '삼재(三災)'가 겹친 것이 이번 위기론의 특성이다.

특히 지금까지 불문율로 인식되던 검찰의 수사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이 수사하면 최소한 사건의 전말은 밝혀진다는 믿음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빛은행 사건. 서울지검 조사부는 지난 9월 '은행 지점장과 거래업체 사장이 결탁한 신종 대출사기 사건'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은행 고위 간부의 개입설에 대해선 '확인된 바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곧바로 수사결과가 석연치 않다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심지어 수사검사 중 한명이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더니 자신말고는 가족, 친지 누구도 수사결과를 믿지 않더라는 웃지 못할 얘기마저 나왔다.

급기야 추석 연후 다음날인 9월 14일 서울지검 간부회의에서 수사 미진을 탓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찰 수뇌부는 보강 수사 지시를 내렸고 조사부는 현재까지도 금융계좌 추적작업을 벌이며 대출금의 행방을 쫓고 있다.

동방ㆍ대신금고 사건은 검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불신이 본격화한 계기가 됐다. 서울지검 특수2부는 사건의 주범인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과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의 기소 시한인 20일동안 사건의 핵심인 금융감독원의 허술한 금고 관리 체계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수사과정에서 자살한 장래찬 전 국장을 제외한 금감원 직원의 개입여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한 국민적 의혹 대상인 정ㆍ관계 실세의 불법대출 개입의혹에 대해선 관련자들의 해외도피 등으로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의 수사 능력에 대한 불신은 검찰 인사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능력보다는 지역중심의 인사가 특수부의 수사 능력 약화를 가져왔다"며 "현재 특수부 구성상 특수수사가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업보론' '음모론' 엇갈린 시각

이같은 위기론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동안 출세 지향적이었던 검찰 수뇌부의 과오가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는 '업보론'과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 의한 의도적인 검찰 죽이기라는 '음모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업보론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검찰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 것이 오늘의 사태를 빚었다"고 입을 모은다.

헌법과 검찰청법이 규정한 검사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법전 속에만 있다는 냉소가 이를 반증한다.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 중립을 훼손하는 독소조항들의 철폐없이 검찰의 제자리 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독소조항 중 첫 손에 꼽히는 것은 검찰 수뇌부의 일사분란한 지휘를 가능케 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다.

일선 검사와 검찰 수뇌부의 의견이 다르면 수뇌부의 뜻을 관철시키는 이러한 상명하복의 관행은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져왔다. 문민정부시절 슬롯머신 사건의 홍준표 검사나 지난해 임창열 경기지사 수뢰사건 수사진이 서울고검 등으로 좌천된 것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등을 구속 수사할 때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검찰 내규 역시 검찰의 눈치보기를 강요하는 조항으로 지적된다. 지난 8월 동부지청의 은진수 검사는 구체적 사례와 함께 이의 철폐를 주장, 논란이 빚어졌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강신옥 변호사는 "일련의 검찰 위기론을 검찰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검찰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반면 대부분의 현직 검사들은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정치공세에 검찰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일부 언론도 의혹사건에 대한 여과없는 보도로 검찰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불만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집중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야당이 증권가 '찌라시' 정도에 불과한 루머를 면책특권을 이용, 국회에서 확대ㆍ재생산 함으로써 검찰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노했다.

다른 간부검사도 "정치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설만을 부각시킨 뒤 검찰이 이를 밝혀내지 못하면 수사 미진이니 의지가 없다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검찰청사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빛, 신보, 동방사건 수사팀은 모두 "언론이 사실관계에 대한 엄격한 사전 검증없이 알권리를 내세워 의혹만 던져놓고 뒷처리는 검찰에 맡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지검의 한 고위간부는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 대 언론 브리핑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정확한 기사가 나오더라"고 역설적인 비판을 하기도 했다.


쉽지 않을 불신해소 방안

위기론의 원인에 대한 검찰 안팎의 시각이 엇갈리다 보니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쉽지않은 형편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즉각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여론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분석,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만큼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마당에 여론조사 결과가 합리적일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전체 사건의 1%정도에 불과한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검찰전체가 오해를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의 위기를 현재 정치권내 역관계(力關係)라는 틀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검사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국회에 의해 견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현 국회가 여소야대 형국이라 검찰의 지위도 그만큼 불안정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최근 잇단 비리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수사의혹'만 남긴 검찰이 구설수에 오르며 위기론에 휩싸이고 있다.

손석민 사회부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2000/11/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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