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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長考…무슨 '수' 내놓나?

JP(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흔들리고 있다. 내각제 무산, 총선패배 등 종전과 같은 외풍이 아니다.

이번은 당내에서 시작된 '내풍'이다. 이른바 '6인의 항명'. 한나라당이 발의한 검찰 수뇌부 탄핵안은 민주당이 이만섭 국회의장을 공관에 억류하는 정치 코미디 끝에 가까스로 무산됐지만 애초 영향권 밖이었던 자민련에는 걷잡기 힘든 후유증을 남겼다.

특히 JP의 상처난 자존심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JP는 여전히 별일 없었다는 듯 골프로 소일하며 빈 낚싯대에 의지한 강태공마냥 세월을 낚고 있다. 측근들도 안팎의 바람에 대해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작자들에 신경도 안쓴다. 조금만 기다려라.

세월은 JP편이다"라며 자신만만하다. JP나 측근들이나 안팎의 어려움에 다소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이긴 하지만 '때'(대선국면)를 기다리는 기색은 틀림없다.

그러나 JP가 말하는 '기다리는 때'가 바로 '원하는 때'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때'를 만들기 위해 그가 꺼낼 수 있는 카드도 많은 것도 아니다.


6인의 항명.JP는 종이호랑이?

알려진 대로 JP는 일찌감치 탄핵안 표결에서 불참으로 마음을 정한 뒤 김종호 총재대행을 앞세워 당소속 의원들에게 줄서기를 요구했다.

16대 들어서 17석으로 줄긴 했지만 15대 때까지만 해도 의원 54명을 일렬종대로 세우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기에 "공동정부를 뿌리째 흔들 수는 없다"는 자신의 설득이 쉽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결과는 JP 스스로도 인정하기 힘들만큼 뜻밖이었다. 11월17일 밤 의원총회 도중 강창희 부총재를 비롯한 이재선 이완구 김학원 정우택 이재선 정진석 의원 등 6명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투표 해야겠다"며 본회의장으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이들에 이어 지역여론을 의식한 오장섭 사무총장, 이양희 원내총무까지 뒤늦게 합류했다. 물론 이들은 "우리는 JP에 항명한 것이 아니다. JP도 살리고 당도 살리기 위해 결심한 것 일 뿐이다"라고 발을 뺐다.

하지만 이들은 JP의 '잘못된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주저없이 이를 뿌리치는 선택을 했다.

JP가 공천권을 휘두르는 총선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6인의 항명에 포함된 한 재선의원은 훨씬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JP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김학원 의원까지 본회의장에 들어온 것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JP가 종이호랑이가 됐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물론 김 의원은 "국회의원의 본분인 투표를 하기위해 본회의장에 간 것을 JP에 대한 항명으로 왜곡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발끈했다.

하지만 JP가 공천의 칼을 쥔 총선 직전이었다면 이런 일은 당직자의 말대로 쉽지않았을 것이다. JP는 흐트러진 권위에 몹시 마음이 상했는지 며칠 뒤 일본의 정국을 빗대 항명에 앞장섰던 강 부총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일본 자민당이 모리 총리를 쫓아내려고 난리인데 가토란 자가 앞장서고 있다. 우리에게도 가토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있다." 딱 꼬집지는 않았지만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기를 들어온 강 부총재를 겨냥했다.

강 부총재의 도전은 JP에게는 여전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당돌함에 불과할지 모르나 파장은 컸다.

강 부총재의 도전은 지난해 8월 당시 내각제 파동을 겪으며 JP에게 총리직 사퇴를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이한동 총재의 총리 취임에 반발한 사무총장 사퇴, 이 총리의 사퇴요구 등 모두 4번. 앞서 3번은 강 부총재가 독불장군식으로 저지른 일이었다면 이번은 전혀 달랐다.

항명파 의원의 참여동기야 어쨌든 6명, 나중에는 9명이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사무처 직원들 사이에 "식물인간이 다 돼가는 정당을 그나마 살린 것이 강 부총재"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차라리 전당대회를 앞당겨 젊고 추진력 있는 강 부총재를 앞장 세우자"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강 부총재는 JP의 가토발언 이후 후속대응을 하지 않아 꼬리를 내린 양 비쳐지고 있지만 본인은 말 그대로 '아니올시다'다. 오히려 이번처럼 명분을 잡으면 JP를 거침없이 몰아붙일 태세다.


JP의 선택.무슨그림 그리나?

당이 심상찮게 움직이긴 하지만 JP가 당장 행동으로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항명파동 뒤 당소속 의원을 모아 식사라도 한번 마련할 법 하건만 현재까지는 그런 징후도 없다. 탄핵안 표결전에 소속의원을 일일이 불러 은근히 표결불참을 종용하던 것과도 판이하다.

대신 JP는 탄핵안으로 여야가 격돌했던 18, 19일은 광주에서, 26일에는 충남 천안에서 평소처럼 골프에 매달렸다. 안팎의 어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에 집착하는 것은 워낙 골프광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행보를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탓이 크다.

당장 민주당과 청와대는 24일 JP와 서영훈 민주당 대표의 오찬회동을 신호로 DJP회동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JP쪽은 여전히 싸늘하다.

당내에서 JP의 의중을 가장 잘 읽는다는 김종호 대행도 "연말까지는 DJP회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김 대행은 "청와대는 정국타개의 한 방편으로 자민련과 관계개선을 위해 DJP회동을 원할지 모르나 JP는 소극적"이라며 "당내 여론은 아예 '해서는 안 된다'며 못박는 쪽"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JP가 강 부총재 등 당내 강경파가 주장하는 이 총리의 사퇴를 위시한 공동정부 철수론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싫든 좋든 자민련과 나는 공동정부를 탄생시킨 한 주체다. 현정부가 중도에 좌초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도록 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JP가 현재까지는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JP는 말을 아끼지만 측근들은 JP의 정치적 행보를 빨라도 내년 이후로 보고 있다. 그가 기다리는 '때'를 감안하면 더 늦을지는 몰라도 빨라지긴 힘들다. 당분간은 골프와 바둑, 독서로 소일하는 칩거가 이어지리라는 말이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정치무대에 복귀하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까. 당내에서는 JP의 선택을 크게 3가지로 추측한다. 민주당과의 합당, 한나라당과의 전격 연대, 양당을 사이에 둔 줄타기.

우선 민주당과의 합당은 JP 주변보다는 사무처 인사들이 현실성과 무관하게 많이 거론한다. 민주당이 119석으로는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상 합당을 위해 내각제 개헌 추진과 당권을 JP에게 제시하면 가능하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 JP에게 합당의사가 있다고 해서 자민련 의원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현재까지는 JP의 의중도 회의적으로 보인다. 측근들은 "달린 입에 무슨 말을 못하느냐"며 대놓고 무시한다.

한나라당과의 연대는 의원들이 주로 얘기하는 쪽이다. 가능성도 JP의 의중보다는 한나라당 쪽에 달려있어 높다고 본다. 연대의 형식은 한나라당 대선주자가 유력시되는 이회창 총재를 대선후보로 JP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가시화하는 순간 DJ의 급격한 레임덕 등 공동정부의 와해로 이어질게 분명해 시기적으로는 대선에 임박해 매우 늦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의 합당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과의 연대 또한 차기 대선에 누가 유력한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마지막은 현상황의 유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어느 쪽과도 쉽사리 손잡기 힘든 만큼 '시시비비를 가려 사안별로 협조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줄타기를 계속할 것이란 예상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위한 사전정비로 엉망이 된 당을 정비하기 위한 카드가 나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카드란 무엇일까. JP를 잘 아는 한 인사의 말은 그럴 듯 했다.

"연말이나 연초 이한동 총리를 총재로 당무에 복귀시킵니다. 대신 김종호 총재대행을 총리로 보내고 김 대행의 국회부의장과 전국구 의원직은 각각 강창희 부총재와 변웅전 대변인에게 배려하는 그림이죠. 공동정부의 틀은 유지하면서 강 부총재를 추스리고 전국구 승계를 통해 특별당비도 마련해 당 살림도 다소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동국 정치부 기자 east@hk.co.kr

입력시간 2000/11/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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