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41)] 삼경정보통신 김혜정 사장(下)

삼경정보통신이 자신있게 내놓은 무인우편창구는 실패를 딛고 만들어낸 기술집약 제품이다. 1994년엔 한국과학기술원, 1996년엔 데이콤과 협력해 시제품을 개발했으나 기술적으로 몇가지 문제점이 노출돼 실용화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연구팀이 새 각오로 개발에 나섰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전기ㆍ전자ㆍ광학기술에다 하드웨어 설계, 자동제어, 우편업무에 대한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한 기술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야 했다.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연구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개발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양한 크기의 우편물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술. 연구팀은 수백, 수천번의 시행착오 끝에 특수 카메라로 우편물의 영상을 찍어 일반 컴퓨터에 사용되는 저가의 멀티미디어 카드로 읽은 다음, 컴퓨터 영상인식을 통해 우편물의 윤곽선 정보를 파악함으로써 우편물의 크기를 계산하는 기술을 완성해냈다.

삼경정보통신의 김혜정 사장은 "한 고비, 고비 넘어갈 때마다 짜릿한 보람을 느꼈어요.

가슴도 많이 졸이고 좌절도 했었죠.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낸 연구팀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때 회사에서 유행한 말이 "밤새 안녕하냐"였다고 한다. 젊은 연구원들이 밤을 새가면서 무인우편창구시스템의 성능을 점검하는데 "밤새 무슨 문제가 없었느냐"는 애타는 심정을 드러낸 말이었다.


포스터 엑스포서 호평 받자 정부도 기술력 인정

다음 문제는 마케팅이었다. 정통부 담당부서에서 "5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김 사장으로서는 정부와 업계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막히면 돌아가라고 하던가? 김 사장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돌아가기로 했다.

"개발 후에 1998년 포스터 엑스포(우편 박람회)에 참가했습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이었는데 무인우편창구로 호평을 받았어요. 기술적으로도 완벽했고. 엑스포에서 '삼경코리아'(삼경정보통신)에 대한 평가가 높게 나오자 우리 정통부가 깜짝 놀랐어요. 그 일로 정통부 우정국장에게까지 무인우편창구에 대한 브리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운도 따랐다. 첨단기술벤처를 육성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맞물려 무인우편창구의 마케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게다가 흔치 않는 여성 벤처사장이라니까 모두들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여성 벤처인은 마케팅에서 남자보다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조금만 잘해도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지요. 구색 갖추기겠지만 중요한 자리엔 반드시 여성 벤처인을 한사람쯤 끼워주는데 개인적으로 그만한 마케팅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남자였으면 그런 기회 자체가 아예 봉쇄됐겠죠."


'접대'대신 '떡 선물'로 인상 남기기도

김 사장은 지난 3년을 "굳세어라, 금순아"였다고 했다. 먼저 간 남편을 대신해서 사업을 챙기기에도 벅찬데 IMF위기까지 닥쳤으니 굳세지 않으면 일찌감치 회사 문을 닫았어야 했다.

특히 스스로의 허물을 숨기기 보다는 솔직히 털어놓는 '열린 태도'는 마케팅에서나 각종 모임에서 그녀만의 장점으로 작용했고 여기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까지 덧씌워져 '여성 마케팅의 노하우'로 자리잡아갔다.

"남자들처럼 접대할 수는 없으니까 어떤 기업체를 방문할 때 마음을 담은 떡 같은 것을 들고 가 첫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도 합니다"라고 그녀는 여성 마케팅의 일부를 귀띔하기도 했다.

국내 발판을 닦은 삼경정보통신은 이제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다. 첫 대상이 기술대국 독일이다.

지난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포스트 엑스포에서 무인우편창구에 관심을 보인 독일 우체국이 500대 구입의사를 밝혀와 구체적으로 협의중이다. 독일 시장 진출에 성공한다면 다른 유럽국가로 시장을 넓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경정보통신은 해외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신용카드로 체신요금을 결재하는 뱅킹 기능을 무인우편창구에 첨가해 무인우편창구 시스템의 기술 선진화를 주도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또 미국의 우편장비업체인 벨&하우웰, 오펙스 등과 기술제휴를 맺고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왔던 고가 장비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성 특유의 직감이 경영의 비결

김 사장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또하나 있다. 최근 시제품 생산에 들어간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다.

실험자동분석장치와 무인우편창구시스템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새 아이템이다. 전직원 대상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선정된 것으로 내년 2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면 회사 규모는 중견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기업경영에서 김 사장이 중시하는 것은 여성 특유의 직감이다. 직감에 대해 그녀는 할 이야기가 많다. 그중의 하나가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이다. 지난 8월의 일이었다고 한다.

"천안에 있는 어떤 공장의 빈터를 사용하기 위해 칸막이까지 쳤는데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 이야기를 들었어요. 분명히 '분양이 끝났다'고 했는데 어떤 '필링'이 오더라구요.

다음날 바로 조사를 시켰더니 분양 사무실에서 입주안한 업체가 몇 개 있다는 대답을 들었지요. 문제는 공간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겁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했더니 1주일만에 600평이 구해지더군요." 필링에 따라 일을 밀어붙였더니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왔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감만이 그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스스로의 삶에 굴곡이 깊어서인지 그녀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고, 살 만하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사업까지 맡아 이제는 아파트형 공장까지 갖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경기가 또 나빠지고 있어 한 기업의 책임자로서 어려웠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가족같은 조직문화가 있어 크게 우려하지 않습니다. 삼경 가족에게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주면 되죠."

김 사장의 자신에 찬 말투에서 최근 벤처업계에 닥쳐온 어려움을 헤쳐나갈 아주 간단한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2/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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