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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은 명절이 두렵다

전업주부 손진미(32ㆍ성남시 분당구)씨는 명절이 싫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명절 전날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시집에서 왔다갔다 한다.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가 없는데도 음식 만들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눈코 뜰 사이가 없다."

일하는 주부인 회사원 이은정(34ㆍ서초구 방배동)씨는 명절이 더욱 싫다. 이씨는 명절 때면 신도시에 있는 시집에 가서 제사와 손님맞이를 위해 몇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전 부치고 집안 치우고 낯선 시집 친척을 대접하느라 몸이 세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연휴내내 가사노동에 시달리다 출근하면 몸이 말이 아니다. 며칠 동안은 명절 후유증에 시달린다. "휴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명절 연휴에 한번 만이라도 제대로 쉬어봤으면 좋겠다"는게 이씨의 바람이다.

시집이 가까워도 이러니 열시간 넘게 차를 타고 지방에 있는 시집을 찾아가야 하는 일하는 주부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야속한 남편, 연휴 끝나면 후유증

하지만 명절 때 여자들이 더 힘들어 하는 건 몸보다 마음이다. 남자들은 전부 방이나 마루에서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데 여자들은 모두 좁은 부엌에 모여 일을 해야 한다.

남편에게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자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귀한 아들'을 부엌에 근처에도 못오게 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는 암묵적인 동의라도 있었던 듯 남편은 무심하기만 하다.

손씨는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남편은 홈그라운드 라고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앉아서 갖다주는 음식만 먹고 뭐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물론 시어머니는 아들이 부엌일 거드는 건 상상도 못한다. 왜 나만 이래야 하나 약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자들로 북적대는 부엌에는 웃음소리 대신 어색한 긴장감 만이 감돌 뿐이다. 오랜만에 며느리들을 데리고 일하는 시어머니는 덕담보다는 부엌일 지시나 잔소리 뿐이고 모처럼 보는 동서들과도 부모에게 드릴 용돈이나 선물, 가사노동의 양이나 강도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 친정 어머니 생각이 난다. 하지만 명절 때는 친정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씨의 경우 친정에는 차레가 다 지나고 오후 늦게야 잠깐 들른다. "아직 며느리가 없는 엄마가 혼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친정에 가서 일하면 좋겠다.

그나마 나는 명절에 친정이라도 갈 수 있으니 나은 편이다. 친구 중에는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하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제사상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고 친정에는 아예 갈 생각도 못하는 집도 있다.

며느리가 뭐 일하러 온 하녀인가." 손씨도 "시어머니가 시집간 딸에게는 빨리 친정으로 오라고 하면서 내가 친정 간다면 안가면 안되냐, 벌써 가느냐며 내키지 않아 한다.

똑같이 딸 키우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이씨는 지난 추석연휴 직후 한동안 원인을 알 수 없이 왼쪽 어깨와 팔이 저려 한참 고생했다.

"결혼 초에는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기를 썼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싫다는 생각 뿐이다.

이제는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이씨처럼 명절 직후 원인모를 두통과 구토, 두근거림, 불면증 등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을 호소하는 주부들은 의외로 많다.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말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여자에게 '명절은 고생 절'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명절은 여자들에게 기쁨보다는 괴로움을, 동참보다는 불평등과 침묵을 강요해왔다. 여자들이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가 공론화한 것도 불과 3, 4년 전의 일이다.


명절 스트레스는 남편 하기 나름

과연 명절은 이렇게 괴롭게 지내야만 할까. 아직 그리 많지는 않지만 명절이 즐거운 여자도 있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한영실 교수의 시집과 이경숙 여성민우회 대표의 친정 집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음식을 만들어 명절날에 모인다. 누구는 전을 부치고 누구는 떡과 약식을 준비하고 누구는 과일을 사온다.

서양식 모임 방식인 포트럭을 우리 명절에 도입한 것이다. 좁고 익숙하지 않은 시집 부엌에서 여러 며느리들이 쭈그리고 앉아 불편한 마음으로 음식 준비를 하는 것보다는 익숙한 자기 집에서 자기 편한 시간에 음식을 만들면 명절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줄어들게 된다.

또 남자 여자 구분없이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라이코스 주부 동호회에 올라온 글을 보자. "우리 시집은 모두 술을 좋아한다. 시아버지, 시고모 세분, 삼형제가 모두 주당이다. 그래서 며느리들도 분위기 맞출 정도로 같이 술을 마신다. 친정에서는 엄마가 고스톱을 좋아해 명절 때마다 아들 며느리가 같이 고스톱을 친다.

명절이라고 이집 저집 모여 식구들이 모두 모여 어울리다 보면 분위기가 좋다."(jun99414)

주부들이 명절 스트레스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기본적으로 남편 하기 나름이다.

여자들이 시집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남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고 부인에게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도 남편이기 때문이다.

또 부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피곤해지는 것도 남편이다. 2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윤정숙 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주부의 명절 스트레스는 가부장적 질서와 문화가 극대화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한꺼번에 확 바꾸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남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남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 적극적으로 끼어 들어라 = 집안 일을 주재하는 것은 어머니.

며느리는 불만이 있어도 이를 표출하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이 의견이 다를 때에는 남자가 나서서 선을 그어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번거롭기만 하니 하지 말자거나 이건 우리집 풍속이니 따라주라는 등. 포트럭이나 친정 가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양쪽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적당한 요령이 필수적이다.

△일을 분담하라 = 명절 때 여자들의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는 남편의 무위도식. 평소 가사를 분담하는 커플이면 여자의 실망감은 가중된다. 어머니 눈치보거나 핑계대지 말고 부엌에 들어가서 간단한 일을 거들어 주거나 마지막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먼저 나서라. 그런 실망은 대번에 사라진다. 몸은 다소 피곤해도 마음은 한결 가벼울 것이다.

△자신의 일가 친척들로부터 부인을 보호하라 = 자신이 부인을 아껴야 다른 사람도 자신의 부인을 소홀히 하지 못하는 법이다. 일가 친척 앞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부인을 탓하거나 흉보지 말아야 한다.

남들 앞에서 들은 남편의 좋지 않은 말이 주는 상처는 아주 오래 간다. 또 친척 중에 대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보이지 않는 배려를 해주는 것도 센스있는 남편의 몫이다.

△고생에 대한 보상을 하라 = 이도저도 여의치 않다면 부인이 고생을 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유형무형의 보상을 해보자. 확실히 효과가 있다.

"수고했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둘 필요가 없다. 또 작은 것이라도 명절 때 수고했다며 부인에게 선물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든가 속이 울렁거린다며 어두웠던 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질 것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koshaq@hk.co.kr

입력시간 2000/12/2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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