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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바둑이 기원 풍속도를 바꾼다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수담을 나눌 수 있는 기원. 동네마다 한 두개씩은 늦은 밤에도 불을 밝혔고, 동네 바둑팬들의 정겨운 놀이터이다.

그 놀이터에서 밤을 지새운 경험도 있고, 그 열정들이 모여 오늘날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국의 대열에 올라서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바둑팬은 날로 증가하는데 요즘 기원은 매일 전국적으로 수십개씩 문을 닿는다.

한마디로 기원은 위기에 처해 있다. 손님의 급격한 감소와 상대적인 서비스의 저하로 인해 기원의 한달 수입은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이버바둑팬 150만명, 바둑인구의 15%

그 이유는 폭풍처럼 불어닥친 인터넷 열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사이버시대의 첨병으로서 바둑의 역할이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통신사 그리고 인터넷업체를 통한 바둑인구, 즉 사이버 바둑팬은 2000년 말 현재 150만명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현재 한국 바둑팬의 15%에 해당하는 대단한 수치. 즉 기원이나 동네 사랑방, 각 직장 등에서 가능한 소위 '오프라인' 바둑인구중 15%가 이제는 사이버상으로 그 무대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2002년까지 500만명의 인구가 생겨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이버 바둑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일상의 상당부분이 해결되는 디지털시대에 사이버 공간에서 실제상황과 가장 흡사하게 할 수 있는 종목은 바둑이다.

모니터상의 바둑은 어떤가. 오히려 실물보다 깨끗한 화면(바둑판), 바둑돌을 직접 갖다 나르는 것보다 손쉬운 마우스 클릭(착점), 구경꾼이 수백명이 모여도 대국하는 데엔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 관전채팅창(관전객 잡담), 또 상대 대국자를 찾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서야 하는 귀찮음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따라서 이 좋은 인터넷시대를 맞이하여 어쩌면 가장 민감하게 오프라인과 대치되는 종목은 바로 바둑일 지 모른다.

시중기원의 침체는 IMF위기를 전후해 더더욱 깊어 가는 실정이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1개 동에 10개 안팎의 기원이 존재했으나 IMF 위기 이후 30개까지 일거에 증가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퇴직금을 쥔 인구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기원을 선호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었다. 갑자기 기원수가 급증하다 보니 그런대로 현상유지를 해오던 기원까지 갑자기 공급과잉으로 경영이 악화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시중기원은 앞으로 계속 몰락의 길을 걷을 것인가. 시중에는 잘 나가는 인터넷 바둑사이트 못지 않게 호황을 누리는 기원도 있다. 이른바 대형기원이면서 '차별화한' 기원이다.

대형기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에서 4곳, 지난달 부산에 1곳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평균 500평 가량의 대형기원은 오히려 1인당 기료도 3,000원 안팎으로 기존의 기원보다 더 저렴하다.

그리고 대형인 만큼 광고나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행하여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대형 기원인 ㅈ기원 영등포 지점의 경우 하루 평균 500명의 손님이 북적거리는데 하루수입으로 환산하면 일일평균 150만원에 달한다.

대형기원은 중소기원의 퇴조를 부추긴다는 오명도 뒤집어쓰지만 결국 양질의 서비스를 원하는 바둑팬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대형기원. 서비스 차별화로 살아남기

그러면 대형화만이 살 길 인가. 그렇지 않은 예는 사실 더 많다. 서울 대치동에서 15년간 기원을 경영하여 지역 바둑팬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는 대치기원의 경우, 80평 가량의 기원에 하루 손님이 70명.

따라서 하루 이용료가 5,000원이므로 하루매상이 35만원에 달한다. 대치기원처럼 각 동네마다 전통이 있는 기원들은 오히려 기원 손님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차별화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별화의 핵심은 주 고객의 나이나 선호도에 합당한 대국문화를 만들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화두. 주고객의 취향에 맞게 지도사범을 고용한다든지 주말 강좌를 제공한다든지 손님끼리의 가벼운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또 오프라인이지만 역으로 컴퓨터를 몇 대 갖다 놓아 인터넷바둑의 맛을 조금씩이나마 가르쳐주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그러나 바로 이 차별화가 어렵다. 이 차별화는 바로 바둑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가정이 따르는데, 창업자금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창업한 많은 기원들과 컨텐츠 개발이 전무한 상태에서 복덕방식 운영으로는 어차피 좌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단서가 된다. 반대로 대형화 차별화에 실패한 기원이 살 길은 없다고 봐야한다.

우리보다 기원문화가 일찍 발달한 일본의 경우, 기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주요전철역을 기점으로 1개 동에 하나 정도가 존재할 뿐이다. 갈수록 시중기원은 존립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고 바둑팬은 증가하더라도 시중기원은 퇴조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날 가능성은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시중기원 퇴출바람, 인터넷기원도 경쟁치열

향후 시중기원의 수적인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창업이 쉽다는 단순한 이유나 사랑방으로서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경영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경쟁력이 뒤지는 기원의 퇴출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사이버 바둑의 열기는 인터넷 바둑사이트를 되짚어보게 한다. 현재 사이버바둑문화를 선도하는 업체인 대쉬바둑(www.dashn.com)의 심재붕 사장은 그런 점에서 시중기원과의 연계를 생각하고 있어 신선한 주장이 된다.

"앞으로 시중기원의 몰락은 정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다만 인터넷 바둑인구도 결국은 인간적인 면을 도외시할 수 없는 바둑의 속성상 오프라인상의 기원과 연계하는 방식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즉, 아무리 사이버상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라도 한번쯤은 모임도 갖고 같이 만나 수담을 나누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때 그들이 만나는 곳은 역시 전통 있는 기원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전문성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기원은 자연스레 퇴출 될 것으로 본다."

1,000만 바둑팬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한국의 바둑계이지만 일선 기원의 경영은 갈수록 압박을 받는 상태는 분명 기현상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소비자의 기호변화나 소비자 계층의 변화에 민감하게 따르지 못한다면 퇴출이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한 사이버바둑업계의 경우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이 등장하는 판에 시중기원의 경우 그럴싸한 컨텐츠 하나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업계에서 낙오될 뿐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12/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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