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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 풍향계] 판 새로 짤 궁리에 '후끈'

김대중 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무언가 헌정 차원의 일을 꾸민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급진전시켜 국민투표 등을 통해 전혀 새로운 정치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김 대통령이 상정하고 있는 통일 프로그램의 첫번째 단계인 국가연합단계에 진입하는 수준까지 진전하면 기존의 헌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여권은 통일시대를 이끌어 갈 리더십 창출 등의 명분을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방향으로 헌법을 바꾸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실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에 제동을 거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김 대통령이 남은 임기 2년 중에 남북관계 진전을 고리로 정치적 승부를 걸기는 힘들어 보인다.

더욱이 그동안 대북 포용정책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했던 남측의 경제력이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크게 제한 받고 있다. 그래서 정권재창출에 북한 카드를 활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헌론에 따른 득실계산에 분주

현 정권이 기대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카드는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 개헌이다.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는 레임덕 문제 등 단임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러닝메이트제를 활용, 지역감정을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있다.

여권이 이 방향의 개헌을 선호하는 것은 대선구도가 여권에 유리해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여야에 같은 조건이지만 현 정치상황을 대입해 보면 그렇지 않다.

즉 다음 대선에서 정ㆍ부통령 러닝메이트제가 도입되면 강한 야당 성향을 보이고 있는 영남권 표의 결집력이 크게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영남권 내부에서 적지않은 갈등요인을 안고 있는 대구ㆍ경북과 부산ㆍ경남에서 차기 또는 차차기를 노리는 주자들이 정ㆍ부통령 후보를 매개로 이합집산할 경우 여권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개연성이 높다.

반면 현재 특별한 지역적 기반 없이도 영남권의 반 DJ정서의 반사적 이익을 보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는 불리하다. 하루 아침에 영남권 지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총재가 가장 큰 목소리로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총재는 "정략적 차원에서 헌법을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국론분열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가장 열성적인 중임제 개헌 주창론자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5년 단임제인 지금의 정부 형태는 대선과 총선의 불일치로 무리한 정계개편을 추진하게 돼 정치권의 혼란을 초래하고 상생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며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도 중임제 정ㆍ부통령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는 대선을 앞두고 개헌은 부적절하며 차기 정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내각제 개헌을 당론으로 하고 있는 자민련에서도 4년 중임제 정ㆍ부통령제 개헌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김종호 총재권한 대행은 얼마 전 "정치권이 새해에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중임제 개헌 주장 대열에 합류했다.

한나라당에서는 김덕룡 의원과 박근혜 부총재가 적극적으로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 개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부감 만만치 않은 여론

그러나 현실적으로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 개헌이 김 대통령 임기 중에 실현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우선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의석 3분의 2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강하게 반대하면 수가 부족한 여권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이 총재 말고도 차기 주자들 가운데는 득실에 따라 개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대표적인 예다. 개헌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정치자금과 권력의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하나 현재 여권으로서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한가지 변수는 여론이다. 현재는 대선을 앞두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이 많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와 지역감정 해소 대책 등의 명분이 국민에게 먹히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에 더해 한나라당 내부의 차차기 주자들이 대거 개헌파로 돌아서고 이회창 총재가 소수로 몰리면 대선전 4년 중임제 정ㆍ부통령제 개헌은 '실제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는 안되더라도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 개헌을 둘러싸고 각 정파가 이합집산하면서 정계 대개편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말부터 정가에서 분출하고 있는 개헌론이 새해 들어서도 정가의 뜨거운 이슈로 생명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wkslee@hk.co.kr

입력시간 2001/01/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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