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중국방문과 남북관계 전망

2001년 벽두 한반도 정세를 요동치게 한 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월15일부터 20일까지 상하이와 베이징을 들른 김 국방위원장의 행보는 제2의 중국식 개혁ㆍ개방 추구라는 관측을 낳으면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먼저 김 국방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그의 중국 개혁ㆍ개방과 상하이식 모델의 경제특구 개발에 관한 평가와 언급이다. 김 국방위원장은 "중국의 개혁ㆍ개방이 옳았음이 입증됐다"고 언급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이와 관련,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 국방위원장이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하이는 천지개벽했다"며 "중국 인민이 중국 공산당의 영도 밑에 제10차 5개년 계획에서 제시된 발전목표를 관철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하여 중화를 진흥시키는 웅장한 위업실행에서 반드시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중국식 개혁ㆍ개방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이다.


중국식 개혁 개방 높이 평가

김 국방위원장의 이번 평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전향적이다. 지난해 5월의 방중 당시 그는 실정에 맞는 개혁ㆍ개방정책을 실시, 중국의 특색있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성과를 달성한데 대해 축하했다.

이는 중국에 특색있는 사회주의가 있듯 북한에도 특색있는 사회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의중을 실은 평가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색있는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빠졌다. 중국식 개방ㆍ개혁이 보편적인 방향이며 북한도 이를 추구해갈 것임을 시사하는 태도였다.

이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제스처는 4일간의 상하이 방문이다. 상하이 푸둥지구와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 인간게놈 남방 연구센터, 상하이 증권거래소 등을 둘러보면서 상하이의 '천지개벽'을 확인한 김 국방위원장의 일정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에 더해 "상하이를 모델로 (북한에)경제특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상하이식 특구 모델은 국가주도적 성장과 금융 및 하이테크산업 육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국가주도의 고성장 추구와 첨단산업 육성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김 국방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중국식 개혁ㆍ개방 추구로 결론짓는 분위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방중 결과보도가 나오기 전인 1월17일 올해의 첫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이 제2의 중국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후 정부는 이같은 발언을 정식화해 "이번 방중이 개방 프로그램을 본격화하려는 몸짓이며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려는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1998년 헌법개정을 통한 시장경제 요소의 도입, 1999년부터 추진된 북미 관계개선 작업, 지난해의 남북 정상회담, 올초 시작된 북한의 신사고 열풍 등이 일련의 프로그램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지향점은 개혁ㆍ개방이라는 설명이다.


'북한 개방프로그램 본격화 제스처' 분석

정부의 이같은 해석은 포용정책적인 분석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듯 하다. 방중을 전후로 한 남북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정부의 분석은 북한과의 교감후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이 방중하던 날인 1월15일 성우회 회원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올 봄이 되기 전 김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안팎에서는 북측이 김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사전에 남측에 통보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보면 현재 남북이 상당한 수준으로 협력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러한 수준의 남북 관계에는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축적된 신뢰가 작용했겠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출범에 따라 김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대미관계에 활용하려는 양측의 속내가 더 반영됐다고 봐야 합당할 듯 하다.

북한으로서는 중국 방문을 통해 북중 관계를 다져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응하고 남측 정부의 포용정책에 힘을 실어주려는 생각인 듯하다.

남측으로서는 북한 체제 변화의 모멘텀인 북중 정상회담을 포용정책 지속의 주요 근거로 활용하고 미국의 포용정책 유지를 촉구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김 국방위원장 방중 직후 쏟아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번 방북을 북한 개혁 개방과 일치시키려는 캠페인과도 같다는 인상을 받기 충분하다.


북중관계 통해 미국에 메시지

이같은 배경과 연초 북한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이번 방중은 적어도 올 상반기 남북관계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김 국방위원장은 방중기간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며 "북남 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언급했다. 남북관계 진전의 청신호다.

이에 앞서 북한은 10일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를 열어 "오늘이야 말로 북남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대회에서 이산가족, 일부 장기수 북송, 전력 협력를 비롯한 경협문제 등에 대해 실천의지를 밝힌 뒤 남북간에 합의된 시간표를 적극 실현해나가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3차 적십자회담, 시범단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북한지역 동해어장 남북공동조업을 위한 실무접촉 등을 잇따라 제의했다.

남측 제의에 마지못해 대응하는 종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는 전력 분야 등에서 실리를 챙기고 부시 미행정부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려는 이중적 포석이 작용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올 상반기중 남북이 장관급 회담, 국방장관급 회담, 경협추진위 등 남북간 모든 채널이 풀가동할 것으로 보이며 군사적 긴장완화를 통한 평화정착 문제 등 올해 남측의 대북정책 목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적지않다.

물론 남북의 동선은 2차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조정될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측이 올 상반기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정점으로 상정하고 잰 걸음으로 남북대화 등에 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마냥 3단 기어로 달릴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대북 전력지원, 군사적 긴장완화 실현 등 남북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또 낙관할 수 없는 북미관계의 변화도 남북관계 진전의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칠 듯 하다. 북미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 남북이 상정하는 관계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김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영섭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30 18:39


이영섭 정치부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