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겉은 '만족' 속은 '끙끙'

'히딩크호' 홍콩서 첫 발진, 재정비까진 '먼길'

거스 히딩크감독이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4개국 축구대회(1월23~27일)에서 첫 시험을 치렀다.

노르웨이에 2-3으로 패하고 파라과이와의 3, 4위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6-5승. 이것이 히딩크의 첫 시험 결과다.

히딩크 감독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고 밝혔고 한국의 언론 역시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국대표팀이 달라지고 있다", "기대할만하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러나 결과로 볼 때도 그렇고, 경기내용을 분석해보아도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히딩크 감독의 만족은 의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평가전이 끝난 뒤 역대 한국 감독이 늘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고 말해왔던 것과 비슷하다. 사실 어느 감독이 경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디 쓸만한 수비수 없나"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내심으론 누구보다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대회기간중 허정무 전 감독(축구협회 기술자문)에게 "어디 쓸만한 수비수(체력과 경기감각, 스피드를 모두 갖춘 선수)는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4-4-2시스템에서 수비문제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3-5-2시스템의 대인마크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지역방어를 특징으로 하는 4-4- 2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비가 가장 큰 문제로 나타났다.

히딩크의 4-4-2시스템 특징은 가운데 미드필더 2명을 수비형으로 기용하고 양측면을 이용한 공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히딩크는 칼스버그컵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이 공격쪽으로 전진하는 것을 크게 제한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수비수 4명과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의 유기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국팀 수비는 아주 나빴다. 어떤 전문가들은 "한국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패할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비 4명의 선수들은 수비할 때 공이 오는 방향으로 압박해야할 선수를 중심으로 폭을 좁혀주어야 한다.

또 수비가 주임무인 가운데 미드필더 2명의 커버플레이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지역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듯 했다. 측면에서 날라오는 센터링 하나에, 또는 공격 2선에서의 배후침투에 속수무책으로 찬스를 허용했다. 자신이 커버해야할 위치와 마크해야할 선수가 누구인지 몰라 허둥댔다.


개인능력이 못따라간 새 시스템

공격 역시 좋지 못했다. 수비형 미드필드쪽에서의 전진패스가 없다보니 공격이 살아가지 못했다. 또 박성배나 서정원 김도훈 등 공격 2선의 선수들이 찬스를 만들지 못했고 최전방에 선 스트라이커 최용수의 움직임도 좋지 못했다.

그나마 왼쪽 미드필더로 뛴 고종수만이 제몫을 해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선수들이 4-4-2시스템에 적응하기에는 개인능력이 너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설명하면 어떤 친구는 "10~20년을 밥만 먹고 축구만 한 선수들이 그 정도 시스템을 이해 못하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우리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너무도 떨어진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토너먼트식의 대회에서 '이기는 축구'만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워크를 우선으로 하는 축구만을 강요받아 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율적인 창의성과 판단력, 개인기, 시야가 떨어져 고도의 경기감각과 개인능력을 요구하는 4-4-2시스템에 적응하는데 무리가 있는 것이다.

칼스버그컵을 관전한 축구인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히딩크 감독이 합격점을 내린 선수는 고종수와 홍명보에 불과하다. 2진급이 출전한 파라과이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 패싱감각을 보여주었던 이영표와 박지성은 상대가 약체였다는 점에서 아직 정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히딩크 구상, 얇은 선수층이 최대 걸림돌

요즘 히딩크 감독은 협회에 계속 "다른 선수는 없느냐"며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협회는 9명의 선수를 추천했지만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것은 우리 선수의 한계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선수층은 얇고 모든 기능을 갖춘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감독이 자신의 전술 구상을 실현하는데 그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심지어 1990년대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인 홍명보도 4-4-2시스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비수라고 할 수 있다.

허정무씨는 포항과 대표팀 감독시절 4-4-2 시스템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 "홍명보를 스위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비시스템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홍명보의 경기감각과 시야, 패싱능력은 뛰어나지만 대인마크 능력은 다소 떨어져 치명적인 수비 약점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홍명보가 일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것은 아마 허씨의 판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축구인들은 히딩크 감독이 현실을 빨리 깨닫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의 특징을 빨리 파악함으로써 이에 어울리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앞으로 한달 정도 더 한국축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축구 현실 빨리 파악해야

그는 2월8일부터 시작하는 두바이 4개국대회에서 두번째 시험을 치른다. 그가 지적한 한국 축구의 문제, 즉 1-1상황서 상대선수를 제압할 수 있는 체력과 개인기술, 수비수의 자제력 부족문제가 얼마나 개선될지 관심이다.

히딩크 축구에 대한 평가는 현재로선 이르다. 히딩크가 세계적인 감독이고 그가 4-4-2시스템을 채택한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축구의 문제점이 한국선수들의 기본기와 개인기문제에 있다면 문제는 의외로 심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팬들과 축구계는 많은 시간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로선 2002년 월드컵까지는 히딩크 체제를 고수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히딩크감독의 한국축구가 첫 시험무대에서 가능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드러내며 긴 항해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영렬/ 사진부 기자>

한국대표팀은 홍콩대회에서 고종수(사진)와 홍명보만이 제몫을 해냈을뿐이다. <김영렬/ 사진부 기자>

유승근 한국일보 체육부

입력시간 2001/02/0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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