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천마(天馬), 하늘을 날다

오청원(吳淸原)의 치수 고치기 10번기 ⑧

당시 일본 바둑계 최고수였던 슈사이 명인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대국에서 오청원은 자신이 창안한 신포석을 유감없이 구사했다.

오청원의 정선으로 시작된 대국에서 흑의 첫 수가 우상귀 3ㆍ삼, 계속해서 좌하귀 화점, 그리고 세번째 착점이 천원으로 마치 바둑판을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연결하는 듯한 오청원의 신포석은 마치 '천마가 하늘을 나는 듯 호쾌했다'(오청원, 기다니와 함께 신포석 이론을 창시한 바둑 평론가 야스나가 하지메의 표현).

이에 대해 슈사이는 기존의 포석법대로 얌전하게 두 귀의 소목을 차지했다.

이 바둑 기보가 신문에 보도되자 온 천하의 바둑인들은 "야, 오청원이 천하의 슈사이 명인을 상대로 천원에 두었다"며 찬반 양론으로 갈려 갑론을박을 펴는 등 난리법석이었다.

당시 바둑 열기는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특히 종래의 케케묵은 형식에 얽매였던 바둑을 자유롭게 해방시킨 신포석법은 질풍노도와 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오청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어느 대중 잡지에서 실시한 예능인에 대한 인기투표에서 오청원이 문인 미술가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으며 일설에는 '기생조차 오청원을 짝사랑했다'고 하니 '바둑은 몰라도 오청원은 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슈사이 명인과의 대국은 오청원에게 그리 유쾌한 기억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 바둑은 1933년 10월16일에 시작되어 다음해 1월29일에 끝났다. 장장 3개월이 넘게 대국이 진행된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계속해서 바둑을 둔 것은 아니고 제한시간을 각자 24시간으로 하되 하루에 얼마 동안 바둑을 진행하다가 백 차례의 슈사이가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면 대국을 중지하고 며칠 후에 다시 속개하곤 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두 대국자가 대국 장소에서 합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적당한 날을 받아서 대국을 계속하기 때문에 백 차례에서 중단한 슈사이로서는 좋은 수가 생각날 때까지 며칠이라도 연구할 수가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오청원에게 매우 불공평한 진행방식이었으나 당시 바둑계 최고 실력자였던 슈사이 측의 뜻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원칙이나 상식보다는 강자의 권위와 특권이 우선하기 마련인 것이다.

슈사이의 거듭된 대국중지 선언으로 인해 3개월 동안 무려 13차례나 대국 중단과 속개를 거듭했던 이 바둑은 패차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다가 160수에 이르러 슈사이로부터 묘수가 등장해서 결국 오청원이 두집을 졌는데 후일 슈사이의 묘수는 휴식기간 중 본인방 문중의 제자들이 스승의 바둑을 놓고 공동 연구를 벌인 끝에 발견한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본인방 문중에서는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지만 당시 슈사이와 오청원의 대국이 중단될 때마다 제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동 연구를 했던 것은 사실이고 보면 충분히 심증이 가는 얘기다.

당시 묘수를 발견한 장본이이라고 지목됐던 마에다 노부아키는 10여년이 지난 후 이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고 "그 수를 내가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생(슈사이)이 그것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불손이다. 당시 우리 젊은이들이 공동 연구를 하고 있으면 선생께서 가끔 예고없이 들어와 지켜 보곤 했지만 한번도 연구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표현은 매우 완곡하지만 당시 상황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당시 일본 바둑계에서는 오청원을 내심 동정하면서도 불공평한 대국 운영 방식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바둑팬은 오직 '불패의 명인'과 '신포석의 창시자'가 맞붙었다는 외형적 사실에만 관심을 집중했을 뿐 슈사이의 불공평한 중단 연발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명인의 승부 집착이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으로 비쳐져 감동의 물결을 일으킬 정도였다.

덕분에 주최사인 요미우리 신문은 판매부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는등 흑행은 대성공이었다. <계속>

[뉴스화제]



ㆍ이창호-이세돌 LG배 결승 진출

2월8일 부산 메리어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이 각각 일본의 왕리청 9단과 중국의 저우허양 8단을 꺾고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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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훈현, 국수전 도전권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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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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