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48)] 단카이(團塊) 세대

전쟁은 베이비붐을 부른다. 경제는 피폐하고 사회 분위기도 황폐한 최악의 육아 환경이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태어난다. 생육 환경이 나쁠수록 많은 씨앗을 남기려는 식물처럼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생물학적 본능일 수도 있고 전쟁으로 줄어든 인구를 메우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결과일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후의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7~49년에는 매년 약 270만명이 태어났다. 10년후인 59년의 출생수가 157만명에 지나지 않았음을 당시 베이비붐의 기세를 알 수 있다.

이 베이비붐 세대를 흔히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라고 부른다.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전총리가 발탁,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 내각에서도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내다가 2000년 말의 개각에서 물러난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소설 '단카이의 세대'(1976년)에서 비롯한 말이다.

단카이 세대는 현대 일본의 혼란을 상징한다. 이들의 성장은 일본 경제의 성장과 함께 했지만 주도자도 아니었고 수혜자도 아니었다. 1960년대 고도 성장기에 이들은 청소년기를 거쳤다. 7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 풍요의 혜택은 한 세대 아래 '신진루이'(新人類)의 몫이었다.

이들의 주변적 성격은 무엇보다 60년대 일본의 정치 상황에서 비롯했다. 60년 미일안보조약의 개정에 반대하는 이른바 '안보투쟁'으로 촉발된 학생운동은 10여년간 일본의 대학을 휩쓸었다.

한동안 학생운동은 좌파 학생 조직이 주도했으나 1965년부터 등록금 인상 반대 등 학내 문제를 중심으로 당파를 초월, 전체 학생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그 중심이 대학마다 발족한 '젠가쿠교토카이기'(全學共鬪會議, 전공투)였다.

70년대에는 진보적 학생운동 조직이 중심이었던 우리의 학생운동이 80년대 들어 총학생회가 주도, 참여층을 넓혔던 것과 비슷하다.

전공투 운동은 단카이 세대가 대학에 들어간 68, 69년에 절정에 달했고 이들은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전공투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리고 있지만 무장투쟁 노선을 채택, 사회적 냉대를 받은 적군파의 온상으로 여겨진 데서도 알 수 있듯 주류 사회의 눈길은 차가웠다.

각 대학의 전공투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은 대개는 사회 중심부에서 격리됐다. 사회적 격리의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안 경찰의 감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공산당이나 조총련을 제외하고는 그런 집요한 감시의 예를 찾기 어렵다.

1994년 가을 도쿄(東京)대학 고마바(駒場)캠퍼스에서는 '프로젝트 이노시시(猪, 멧돼지)'라는 연락렷昰플셈?발족식이 열렸다. 돼지띠인 47년생이 일본에서는 멧돼지띠이기 때문에 나온 이름이다.

전국 86개 대학의 전공투 주도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담은 '전공투 백서'의 출간기념을 겸한 모임이었다. 25년여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처음으로 과거의 경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참석자들의 모습이 비슷한 세대인 우리의 6?세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참의원 의원이나 대기업 임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자영업이나 학원 강사 등이었다. 대형 건물의 유리창 닦기로 생계를 이어 온 사람도 있었다.

명문 대학럽淪極坪?다녔던 사람들이 우리 못지 않은 학벌사회에서 그런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중에는 도쿄대학 조교였던 사람도 있었다. 도쿄대학이 영국식 교수 임용제도를 부분적으로 남기고 있어 시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교수가 됐어야 했지만 사설 학원의 강사로 만족해야 했다.

단카이 세대는 현재 일본 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핵심 운동권 출신도 사회 중심에 편입된 우리와 달리 단카이 세대 운동권은 주류 사회에서 거의 배제됐다. 조금 과장하면 단카이 세대의 반쪽이 상실됐다고도 할 수 있다. 흔히 80년대 후반의 거품 경제가 90년 들어 꺼지면서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한다.

90년대를 통해 일본이 잃은 것은 경제적 활력만이 아니다. 사회 전체에 팽배한 무기력은 연령상 중심 세력인 단카이 세대의 활력이 절반쯤 거세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식 세대인 '신진루이'에 빗댄 '신진루이(寢人類)'라는 말처럼 이들을 잠자는 세대로 만든 것은 이들의 불행이자 일본 사회 전체의 불행일 수도 있다.

이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워낙 숫자가 많아 10여년후 고령화 사회 도래의 주범이 될 것으로 몰리고 있는 반면 받아야 할 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편안한 노후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인원 정리 바람의 주표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3/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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