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국적 정서가 물씬한 맛깔난 만화소설

■ 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글ㆍ그림)

만화는 흔히 '재미를 위해 읽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만화에는 사실적인 그림, 직설적인 대사, 그리고 과장, 미화, 상상력이라는 조미료가 가미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고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다.

반면 만화가 주는 느낌은 찰나적이고 감각적이다. 쉽게 온 만큼, 거침 없이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만화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만화 중에도 심오한 철학서나 교양서적 보다 더 깊고 절실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있다.

40대의 중견 만화가 오세영이 쓴 '부자의 그림일기'(글논그림밭 펴냄)가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말초적 감각만 자극하는 시시콜콜한 작품과는 감히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독보적인 만화책이다.

'부자의 그림일기'는 1980년대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오세영이 그린 작품을 한데 묶은 단편 모음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기존의 대본소 만화나 최근 국내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번역 만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토속적이라고 할 만큼 한국적인 정서와 배경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 어느 하나에서도 추호의 과장이나 억지, 황당함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시나 한편의 한국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소재의 진지함과 메시지의 강렬함도 눈에 띈다. 첫 작품인 '고샅을 지키는 아이'는 서정시를 연상케하고, 표제인 '부자의 그림일기'는 마치 우리 사회의 감춰진 치부를 스스로 들춰보는 듯한 착각에 일으킨다. 1988년 9월에 발표됐던 '불'은 정제된 단편 문학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작가 오세영은 대사도 장황하게 늘어 놓지 않았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그 만큼만 말한다.

말투도 마치 우리 할아버지, 아저씨로부터 흔히 들었던 그런 된장 맛나는 사투리들로 채워져 있다. 그림 역시 전혀 자극적이거나 허황되지 않다. 시골의 은은한 들풀 냄새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곰방대 냄새가 배여 있다. 너무 익숙한 시골 풍경에서 독자들은 그림만으로도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휴머니즘은 오세영의 작품 저하에 흐르는 가장 큰 기류다. 저자는 서민들을 울리는 이 땅의 오랜 구조적 부조리를 약자의 시각에서 바라 본다. 그리고 그 두렵고 터부시되는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처절하게 맞선다.

그들의 몸부림은 일관되게 '인간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을 향하고 있다.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불의와 타성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애를 느낀다. 이번 단행본은 그간 소문만 나돌았지 정착 구하기 쉽지 않았던 오세영의 작품을 한데 모아 출간한것이다.

이 작품은 '만화 같지 않은 만화, 하지만 진짜 만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국내 창작 만화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3/13 20:49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