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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호랑이와 독수리

[미국 들여다보기] 호랑이와 독수리

어릴 때 누구나 한번씩은 우표수집을 했을 것이다. 편지에 붙어있는 우표를 떼어내 수집책에 하나씩 모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상업화해 소인이 찍히지 않은 우표가 값이 더 나간다고 하여 단순히 수집을 위해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 모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국경일이나 고속도로나 댐 공사 등의 완공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오면 그것을 사려고 우체국에서 줄을 섰던 기억도 난다.

결국 욕심을 내다보면 용돈의 범위를 벗어나기가 일쑤여서 부모님께 특별지원을 요청하는데 다른 데에는 엄격하시던 어머니도 우표를 산다고 하면 너그럽게 용돈을 주시곤 하셨다. 글쎄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대통령의 얼굴이 우표에 많이 나왔다. 경제건설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개발독재의 시대였기에 국민운동의 차원에서 커다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의 얼굴이 찍힌 기념우표가 나와 어린 수집광의 주머니를 비우곤 했다.

또 남ㆍ북한이 제3세계를 상대로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 국가원수의 방한이 잦았다.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나라의 이상한 이름의 대통령이 오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길에 나가 태극기와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국기를 흔들면서 한번 환영하고 나면 학교수업의 반 이상을 떼울 수 있었다.

더구나 그때마다 기념우표가 나오기 때문에 길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돌아가면서는 반드시 우체국에 들러 발음하기 힘든 나라의 흑인 대통령이 그려있는 우표를 사들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민화 시리즈 우표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중의 하나는 호랑이 그림이었는데,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붙은 한반도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백두산 호랑이나,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 등 우리는 호랑이와 비교적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그러기에 민화에도 자주 등장하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지난 세기 후반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신흥 경제부상국들을 네 마리의 호랑이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런 '호랑이 나라'의 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방문했다. 새로 들어선 미 행정부와 상견례 비슷한 것으로서 우방간에 정책조율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미국 어린이들이 연도에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광경도 볼 수 없었고, 대통령 방문을 기념하는 우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신문도 머릿기사는 온통 그 전날 있었던 고등학교 총기 사건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고, 보통 사람들은 잘 들춰보지도 않는 저 뒷부분에 전직 국무장관이 한반도 정세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언급한 칼럼에서나 한국 대통령의 방미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에게는 아시아의 '조그만 호랑이'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에 있었던 멕시코 대통령의 방문은 머릿기사로 대서특필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서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방미 목적인 정책조율 부분에 있어서,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오히려 서로간의 인식의 차이만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놓은 꼴이 되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워싱턴 시내까지 나가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것은 부모로서도 반대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개운치 않은 아쉬움을 남기는 방문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있어서 우방이다. 그것도 피로 맺어진 혈맹이다. 특히 보수적인 공화당 정부는 우리나라와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하여 미국의 주요 교역국으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은 높아져갔다.

그러나 혈맹의 관계도 미국의 이해관계에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러한 면에서는 한국도 지구상의 180여개 나라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미국 보수진영은 노근리 사건에 격분하는 한국인에게 분노하고 있다. 수많은 미국 청년의 죽음은 UN군의 이름으로 칭송하면서 전쟁초기의 혼돈 속에서 일어난,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미군의 잘못으로 돌리느냐고.

또 한국이 미국의 10대 교역국이라고 하나 경제규모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외환위기 당시 IMF를 통한 유동성 지원을 반대한 것이 미국이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처럼 미국 정치의 관심이 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가 멕시코처럼 미국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도 없다. 그러기에 미국에 대해서는 더욱 세련된 고도의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허리마저 잘린 '반토막 호랑이'는 '독수리' 눈에 잘 뜨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만 더해준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3/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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