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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6년동안 교육청은 뒷짐만

파행 6년동안 교육청은 뒷짐만

상문고사태…비리재단 방치, 문제 터지자 뒤늦게 허둥지둥

지난 3월1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상문고의 교무실에는 어색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교사,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로 북적였다. 전날 발표된 서울시교육청의 조치에 따라 자퇴원을 쓰고 학교를 떠나려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교사들이었다.

한 2학년생의 학부모는 "아이들 인성 때문에라도.. 학교를 옮기기로 했어요"라며 울먹였고 담임교사는 긴 한숨 끝에 "어쩔 수 없죠"라는 말과 함께 자퇴원의 빈 공란에 도장을 눌렀다. 여기저기서 눈시울 붉힌 학부모, 학생의 울먹임, 그리고 그속에 간간히 고성이 섞여들었다.

신입생 학부모 가운데 일부는 처음 만나는 담임교사와 어색한 첫 인사이자 작별인사를 동시에 나눴고, 지난 며칠간 담임교사의 얼굴을 익힌 몇몇 신입생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상문고의 올 신입생 486명이 17일자로 학교를 떠났다. 입학식도 치르지 못한채 보낸 2주일여의 상문고 생활을 접고서 새로운 배움터을 찾아간 것이다.
상문고 신입생 학부모들이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학교
재배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영권/사진부기자>

같은 날 165명의 2, 3학년 학생도 정들었던 교사와 친구들을 뒤로 했다. 6년여를 끌어온 상문고 사태가 이끌어낸 '서글픈 결론'이었다.

■사태의 1막- 공금횡령, 성적조작

1994년 3월14일 상문고 교사 8명이 서울 강남경찰서를 찾았다. 학교장이자 학교법인 동인학원의 실질적 소유주인 상춘식씨가 찬조금을 횡령하고 학생의 내신성적을 조작하는 등 온갖 비리를 저질러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양심선언문'을 들고서였다.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이 특별감사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상씨가 찬조금 14억여원과 보충수업비 6억4,000여만원 등 모두 20억여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고 양심선언 5일뒤 상씨와 그의 측근이자 교감이던 장방언씨 등이 구속됐다.

비리사학을 규탄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해 4월14일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법인 동인학원 이사장이자 상씨의 부인 이우자씨 등 이사진의 임원승인을 취소하고 상문고에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비리재단을 몰아내고 학교를 접수한 것이다.

등교거부로 4명만이 수업을 받고 있는 상문고 1학년 교실. <강태욱/사진부 기자>

그해 12월 상씨가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으면서 1994년 한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상문고 사태의 1막은 내렸다.

"비리사학에 대한 양심교사의 승리이자 부패사학에 견제책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든 일대 사건"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양심선언 8명의 교사들은 그해의 영웅이 됐다. 해피엔딩이었다.

■ 사태의 2막- 교사들의 천국

1994년 이후 상문고는 관선이사체제 하에서 평온을 유지했다. 상씨가 교장이었던 시절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열의를 다해 학생을 가르쳤고 대학진학률도 꽤 높았다.

당시 강남학군 내에서는 "아들이 상문고에 배정을 받으면 학부모가 한턱낸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상문고는 인기있는 학교였다. 다만 1994년 이전과 바뀐 점이 있다면 양심선언을 했던 교사를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되었다는 것.

교육청에서 파견된 관선이사들은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채 학교운영이 사실상 교사에게 맡겨진 '교사의 천국'이 당시 상문고였다.

1996년 상문고 교장을 지냈던 교장 P씨는 "처음에 학교장으로 임명돼 의욕적으로 학교운영을 해보려고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학교운영은 사실상 교사들에게 맡겨둬야 했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나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영웅 교사'들이 운영하던 상문고 5년은 어쨌든 평온했다.

■ 사태의 3막- 5년만의 복귀

새 밀레니엄 맞이로 분주하던 1999년 12월4일, 학교에서 쫓겨난 채 5년 가까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던 상씨측은 부인 이우자씨 명의로 "횡령금을 변제하고 교직원과 화합해 학교를 잘 이끌어나가겠다"는 내용의 '학교정상화 계획서'를 관선이사진 앞으로 제출했다. 그리고 10여일 뒤 실제로 소유 부동산을 내놓았다.

'깊이 반성하고 죄값을 치렀으니 이제는 학교를 돌려달라'는 얘기였다.

당시 이장호 이사장 등 7명의 관선이사진은 "상씨측이 횡령금을 변제한 마당에 관선이사가 학교를 차고 앉아있을 명분이 없다.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며 12월27일 이씨 등을 이사장으로 하는 이사진을 만장일치로 선임, 교육청에 임원취임 승인을 신청했다. 그리고 12월31일, 시교육청은 이들을 승인했다.

이우자씨를 이사장으로, 그리고 상씨의 누나 S씨, 상씨의 군대상관 C씨, 상씨의 주치의 J씨 등 6명으로 구성된, 1994년에 쫓겨나갔던 과거 비리재단의 복귀였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비리재단이 돌아온다니.." 다급해진 교사들은 11일간 서울시교육청 별관을 점거하고 '임원취임 승인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것으로 2000년 새해 벽두를 맞았다.

당시 교사들은 비리재단 복귀의 뒤에는 '복마전'이랄 서울시교육청과 상씨의 '검은 결탁'이 있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의 주장은 이랬다. "서울시교육청 고위간부 C씨와 학교를 되찾으려는 상씨의 결탁에 따라 교육청이 상씨와 교분관계가 두텁던 사람들을 4차 관선이사들로 내보낸 뒤, 이들로 하여금 상씨 측근을 임원으로 전격 선임토록 했고 교육청은 앞뒤 재지 않고 이를 승인했다."

교사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친 교육청은 새 학기 수업차질을 우려, 40여일만인 2월10일 승인을 다시 철회하고 박경량씨 등 5차 관선이사진을 상문고에 내보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5년만에 다시 찾은 학교를 쉽게 포기할 상씨가 아니었다.

즉각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6월29일 "교육청이 임원취임 승인을 철회한 것은 잘못"이라며 상씨측의 손을 들어줬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 사태의 4막- 수업거부, 반대시위

사태는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구재단이 법원 판결까지 등에 업고 당당하게 복귀하자 학교는 들끓기 시작했다.

상문고생 2,000여명은 수업을 거부하고 구재단 복귀반대 시위로 맞섰고 급기야 7월8일에는 서초동 법원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다급해진 것은 서울시교육청이었다. 교사들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구재단을 다시 복귀시켜놓았다는 지탄과 의혹의 눈총이 쏟아졌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법원이 구재단의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구재단의 자진사퇴. 하지만 상씨측 반응은 완강했다.

상문고 2.3학년 학부모들이 학교 시청각실에 모여 학교 정상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조영호/사진부기자>

그해 10월23일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출석한 이우자 이사장에게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용퇴를 촉구했지만 이씨는 "나는 법에 따르겠다"며 용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어떻게 되찾은 학교인데.'라는 식이었다.

결국 상문고는 5년간 실질적으로 학교운영을 주도해온 교사들과 돌아온 구재단간의 양보없는 기싸움의 장이 돼버렸다.

■ 사태의 5막- 교장임명에 학생 교사 반발

2001년 새 학기 들어 재단측은 교장임명건으로 먼저 도발했다. 새 학기의 신임교장으로 장방언씨를 앉히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기싸움이 끝나고 주먹질이 시작된 것이다. 장씨는 1994년 상씨와 함께 구속되었던 바로 그 당시의 교감이었다.

학생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수업거부에 들어갔고 신입생들은 영문도 모른채 상문고 배정을 통탄해야 했다.

사흘째 학생들의 등교거부가 이어지고 신입생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교육청에 몰려가 재배정을 요구한 다음날인 3월9일, 매번 재단과 교사들에 끌려다니던 서울시교육청이 이번에는 모처럼 칼을 빼들었다. '신입생 재배정, 상문고 특수지고 전환'을 골자로 한 방침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학내갈등이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이유였다.

신입생 학부모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2, 3학년 재학생들과 교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제 와서 다른 학교에 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 "특수지고 전환은 곧 비리재단에 학교를 넘기겠다는 얘기다"며 성난 2, 3학년 학부모 500여명이 유인종 교육감의 집으로 몰려왔고 교육청은 24시간도 안돼 조치를 유보해야했다. 명분은 학교정상화의 추이를 좀더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입생 학부모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재단, 교사, 학생으로 나눠져있던 상문고의 갈등구도가 사분오열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교육청은 신입생 등교거부가 이어지자 14일 "이후 법적인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배정대신 자퇴후 편입학의 조치를 취하고 특수지고 전환 결정도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교육청은 덧붙여 "계고기간 등 법적 유예기간이 끝나는 28일 이후 곧바로 관선이사를 내보내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며 교사와 2, 3학년 학부모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상문고 사태는 계속된다

서울시교육청과 재단은 현재 4월19일의 임원취임 승인 철회에 관한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로선 교육청이 승소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보인다는게 중론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판결결과에 관계없이 3월중으로 다시 관선이사를 내보낼 방침이다. 그러면 이우자씨 등 재단은 다시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할게 뻔하다.

법원이 교육청의 손을 들어줘 관선이사 파견이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린다면 사태는 해결의 가닥을 잡는다. 하지만 지난해 6월처럼 재단의 손을 들어주면 사태는 다시 해결난망이다.

상문고에 남은 신입생 100여명을 비롯해 2, 3학년들은 다시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를 뛰쳐나와야 하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여부도 관건이다. 비리재단을 견제할 장치가 별로 없는 현재의 사립학교법에 재단 견제책 등이 보완되기만 한다면 법원 소송과는 별개로 상문고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어쨌든 학생들이 대거 학교를 떠나는 지경까지 이른 지난 6년간의 '상문고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동훈 사회부기자 dhlee@hk.co.kr

입력시간 2001/03/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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