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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거시 지표를 바꾼다

대외변수에 취약한 구조, 성장률 둔화
실업률 상승 등 난제 산적

천수답(天水畓). 저수지나 강에서 물을 끌어대거나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는 수리시설이 없어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을 말한다.

모심기철에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모를 낸 후에 혹시 가뭄이 들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다.

경제연구기관들은 우리 경제를 바로 이런 '천수답'에 비유하곤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대책 없이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천수답처럼 미ㆍ일 양국 경제의 회복만 기다려야 하는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란 말이다. 우리 경제는 그만큼 대외변수에 취약하다.


주요 경제지표에 빨간 불, 수정 불가피

미ㆍ일 경제의 동반침체 등으로 대외경제변수가 예상보다 급격히 나빠지면서 우리의 거시경제지표가 수술대에 올랐다.

수출, 물가, 실업률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에는 이미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 경제연구기관들은 최근 들어 올해 전망치를 잇따라 수정하면서 이들 주요 거시경제지표가 올해 모두 4%대를 기록하는 '트리플 4'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4월 11일 국회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도 거시경제지표와 경제현실간 괴리를 집중적으로 지적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거시경제지표의 안정적 운영을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실물경제는 작년 4/4분기이후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다.

2월중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6% 증가해 전달(0.1% 증가)보다 다소 호조를 보였지만 소비지표인 도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달의 2.2%에서 2월 1.3%로 떨어졌고, 설비투자는 1월과 2월 각각 8.8%와 5.3% 줄었다. 수출은 반도체, 컴퓨터 등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출부진 등으로 3월 0.6% 감소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전월대비)은 2월 0.2%에서 3월 0.6%로 급등했고 앞으로도 환율상승과 공공요금 인상 등이 물가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2월 실업자수는 전달보다 8만7,000명 늘어난 106만9,000명, 실업률은 0.4%포인트 상승한 5.0%로 지난해 2월이후 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졸업시즌이 끝난 3월에도 실업자 103만5,000명, 실업률 4.8%로 실업자 100만명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거시경제지표가 흔들리는 이유는 대외변수의 악화에 있다. 먼저 2월이후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나빠지면서 미국의 경착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미국이 경착륙하면 세계경기도 크게 둔화한다. 미국의 경기둔화의 폭이 깊어지고 오래갈 경우 우리 경제정책운용기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연구기관들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경제도 엔화가치가 급락(환율상승)하는 등 예상보다 심각하다. 미ㆍ일의 경기둔화세가 유럽연합(EU), 동남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주가 환율 등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직접적으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주는 동조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부적으로 성장률 목표를 낮추고 물가와 실업률 전망치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공식 수정여부는 6월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당초 경제성장률 5∼6%, 경상수지 50억~70억 달러,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각각 3%대를 올해 목표로 내걸었다.

이중 물가상승률은 원화환율의 불안으로 연평균 4%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5%미만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상수지도 수출부진에 비해 수입감소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당초 목표보다 훨씬 큰 폭의 흑자를 낼 전망이다.

문제는 경제성장과 실업률이다. 정부는 이미 대외변수 악화로 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실업률은 목표인 3%대로 끌어내릴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이견이 많다.


성장률 5~6%에서 4%대로 하향 조정

상반기에 성장률이 낮아질 것은 예상됐지만 대외변수 악화로 하반기 성장률도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성장률 목표를 4%대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은 제한돼 있다.

전문가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재정지출 확대, 감세(減稅) 등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 상승 우려로 금리인하는 선택하기 어렵고 효과도 미지수다. 감세를 포함한 경기부양책은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내년에 실시되는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요인인 수출의 부진은 심각한 문제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세계수출시장도 위축돼 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중동 중국 중남미 등에 대한 수출마케팅 활성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출마케팅강화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는 중장기 계획 수준이어서 당장에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업문제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회복이 기대에 못미치는 상태에서 구조적인 실업사태로 이어지면 실업의 규모와 고통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실업률은 0.25∼0.3%포인트 올라가게 된다"며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인 5%대 중반에서 1%포인트 이상 떨어지면 연간 실업률은 4%대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실업대책도 연초의 종합대책을 부분 수정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그나마 계획대로 진척되지도 않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대외변수 악화에 따른 전반적인 경제불안으로 경기회복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뒤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

당초 정부가 자신있게 내세웠던 2/4분기 경기회복설은 자취를 감췄고, 경기저점이 4/4분기이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완만한 경기회복 속도 때문에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내년 들어서나 감지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4/4분기 또는 내년초가 경기저점"전망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올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미국 경제회복의 불확실성 증가로 우리 경제의 침체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면서 "하반기 경기회복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고 회복되더라도 그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연구원은 "경기는 작년 9월이후 하강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올해 4/4분기나 내년 1/4분기에 경기저점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최근의 경제불안을 대외변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불가항력'이고 마땅한 정책적 대응 수단이 없다는 주장이다.

증시부양책 등은 시장자율 원칙 때문에 한계가 있고, 수출의 경우 WTO(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의 각종 규제로 실효성 있는 정부지원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구기관들은 정부의 이 같은 태도를 직무유기로 평가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빗장이 다 열린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지 않고 산업경쟁력도 개선된 게 없어 대외변수의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그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어쩔 수 없는 대외변수 악화 때문에"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편의주의라는 비판이다.

우리 경제가 천수답이라면 수리시설을 갖추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고 이는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맡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완규 세계일보 경제부 차장대우 wgpark@chollian.net

입력시간 2001/04/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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