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병영] "우리를 신세대라 부르지 말아달라"

신세대 병영생활, 민주적 규율이 핵심

저녁식사시간이 다가오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PX(매점). 전투복과 운동복 차림을 한 병사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다. 방금 훈련을 마쳤는지 얼굴에 아직 위장크림 자국이 남아있는 병사도 있다.

PX 한 쪽에 놓인 게임기 앞에는 병사 둘이 나란히 앉아 격투기 게임 '철권3'에 빠져있다. 동료 병사들이 둘러서서 응원과 조언을 보내는 통에 게임기 앞은 열기가 가득하다.

식탁에는 병장부터 이병까지 6명이 둘러앉아 만두를 먹고 있다. 20개 남짓 들어있는 만두봉지가 금새 바닥이 났다.

"곧 식사시간인데 왜 간식을 하느냐"는 질문에 한 상병의 대답이 시원스럽다.

"만두먹고 또 밥도 먹어야죠." 먹는 것 자체가 즐거운 표정이다. 만두값은 같은 소대원인 자신들이 갹출했다고 한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아침식사로 햄버거와 우유를 먹는다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병영에 부는 신세대 바람

대대급 이상 부대에는 대부분 영내에 노래방이 있다. 수방사 헌병단도 마찬가지다. PX 옆, 5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홀에 노래방 기계와 대형스크린이 장치돼 있다.

입구쪽에 비치된 DDR 기계 위에서는 전투복 차림의 병사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발을 굴리느라 여념이 없다. 춤추는 병사 뒤에서는 동료들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춘다.

노래방은 1시간에 2,000원, DDR은 한 번에 300원으로 유료다.

차명호 병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다"고 말했다. 22세인 차 병장은 경희대 법대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그가 받는 병장월급은 담뱃값 3,750원을 포함해 1만9,900원. 차 병장은 "영내에서는 돈 쓸 일이 거의 없어 월급으로도 충분히 용돈이 된다"고 말했다.

담배는 올 2월부터 88에서 디스로 한 단계 높아졌다. 이틀에 한 갑 꼴인 담배는 비흡연자의 경우 돈으로 받는다. 내무반에서는 금연이다.

신세대 바람은 병영에도 거세다. 언제부턴가 '신세대 장병'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신세대 장병이란 용어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사회가 변하는데 군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의미의 한 편에는 다소간의 우려감이 포함돼 있는 게 사실이다.

신세대의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사회 분위기가 입대 전 몸에 뱄고, 이렇게 체득된 행위양식이 군복무까지도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의 시각은 속칭 '기합빠진 군대'란 선입관으로 연결돼 전투력 약화에 대한 의구심을 낳기도 한다. 사실이 그럴까.

나이로만 보자면 한국군의 다수는 신세대다. 신세대라면 대체로 20대. 대부분의 현역병과 상당수 부사관(하사관), 일부 중대장급(대위)까지 신세대 장병의 범주에 든다. 말단 병의 절대다수가 20대에 입대하고 20대에 제대한다. '나이 30대에 1980년대 대학생활, 1960년대 출생자'가 386세대라면 현역병은 '297세대'라 부를 만하다.

'나이 20대에 90년대 대학생활, 70년대 출생자'란 이야기다. 지금의 현역병은 297세대 중에서도 '졸병'에 속한다.

육해공 3군 중 병의 복무기간은 공군이 가장 길다. 육군은 훈련병 기간을 포함한 이병생활 6개월, 일병 6개월, 상병 8개월, 병장 6개월로 모두 26개월이다. 해군은 28개월 중 이병 6개월, 일병 6개월, 상병 8개월, 병장 8개월을 지낸다.

공군은 이병 5개월, 일병 6개월, 상병 8개월, 병장 11개월로 총 30개월 복무한다. 3군을 막론하고 제대를 앞둔 병은 아직 서른이 한참 남은 20대다.


297세대가 중추

부사관은 진급이 빠를 경우 2년이면 하사에서 중사로, 다시 5년이면 중사에서 상사로 계급장을 바꿔단다. 장교는 소위 2년, 중위 3년이다. 사관학교 졸업 후 5년이 지나면 대위가 된다는 이야기다.

장교와 부사관이 대부분 20대 후반에 대위나 상사로 진급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1980년대나 그 이전 군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대장이 20대인 사실에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신세대 병영을 거론하면 으레 "신세대 지휘관이 신세대 사병을 지휘한다"는 말이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중대급 부대를 예로 들어보자. 중대 선임부사관을 맡은 30대 고참 중사나 상사를 제외하면 중대장에서 말단 병에 이르기까지 전 부대원이 20대로 구성된 경우도 있다.

신세대 장병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신세대가 아니다. 구세대라는 이야기다. 구세대는 과거의 군생활 경험으로 오늘의 병영생활을 바라보는 '시대착오'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참이 무서워 벌벌떨던 시절을 당연시하며 지금의 병영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에게 신세대는 어딘지 모르게 유약하고 제멋대로인 존재로 비쳐진다.

구세대가 생각하는 신세대 병영은 잘못된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군에서 핸드폰 사용은 자유?' 틀렸다. 규정상 핸드폰은 직업군인만 영내에서 휴대할 수 있다.

사병들이 휴대폰으로 영내에서 가족이나 애인과 자유롭게 통화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보유출과 여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신세대가 핸드폰 사용에 익숙하다고 하지만 그건 입대 전의 이야기다.

대신 내무반 건물에는 공중전화가 설치돼 있다. 공중전화 사용은 권장한다. 신병이 자대에 배치되면 중대장이나 선임부사관이 면담 기회를 이용해 공중전화 카드를 선물한다. 휴식시간에 졸병이 공중전화통 앞에 서 있다고 해서 겁주는 고참도 없다.

신세대 병영은 전화이용까지 눈치를 볼만큼, 속칭 '똥기합'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신용카드는 어떨까. '신세대 병사들이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고, 대금결제는 부모가 한다?' 역시 틀렸다. 훈련소 입대시 신용카드를 휴대했다면 입고 온 옷과 함께 고향으로 돌려 보낸다. 몰래 갖고 있다 외출ㆍ외박 때 쓰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발되면 벌칙이 수반된다. 통장을 갖는 것은 문제가 없다. 군은 병사들에 통장개설을 권장하고 있다. 돈은 가능한 저금하게 하고, 현금은 일정액 이상 소지하지 못하게 한다. 도난 등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의 또다른 특징은 컴퓨터와 인터넷 탐닉. 종이와 컴퓨터로 구분되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차이는 군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안서류를 먼저 펜으로 쓴 다음 PC워드로 작성하도록 하는 군인은 구세대다. 신세대 지휘관과 사병은 종이가 필요없다. 컴퓨터로 직접 서류를 작성해버린다.


세련된 정보화 시설, 인터넷 자유자재로

신세대 사병 사이에서는 이메일 주소가 없으면 바보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규정이 있다. 수신은 자유지만 송신은 보안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애인과 이메일로 연애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군의 정보화 시설은 상당히 세련돼 있다. 전임 조성태 국방장관 재임시 대대급 이상 부대에 '정보화 교육장'을 설치하도록 한데 크게 힘입었다. 영내 PC방도 있다. 음란 사이트를 제외한 모든 사이트에 접근이 가능하다. 제대할 때는 대부분 '인터넷 검색사 자격증'을 갖는다.

면회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승용차가 보편화한데다 정기적인 휴가와 외출ㆍ외박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음식점, 술집 등 과거 부대 근처에 번성했던 면회자용 위락시설은 이제 일부 전방부대에서만 볼 수 있다.

승용차를 타고 면회 온 친지와 병사에게 만남의 장소가 부대 근처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면회오는 부모도 옛날에 비해 크게 줄었다.

외출한 병사는 위수지역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다. 영내 면회시설도 크게 개선됐다. 수방사 헌병단 면회소 매점에서는 치킨과 오리훈제, 피자까지 판매한다.

술과 구타는 구세대의 뇌리에 박힌 군생활의 한 단면. 몰래 술마시는 병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공식적으로 영내 음주는 체육대회나 대규모 훈련 뒤 지휘관의 허락 아래 회식형태로 이뤄진다.

부대원 생일 때는 음료수, 과자 파티가 주종. 신세대 병사도 얼굴 표정만 보면 이병인지 고참인지 알 수 있다. 이병의 표정에 긴장감이 진하다면, 병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있다. 아무리 신세대라지만 졸병과 고참의 구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차명호 병장은 이병과 병장의 차이는 업무 숙련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대 후 지금까지 맞는 병사도, 때리는 병사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일병이 병장에게 "때리면 바로 신고할 겁니다"라며 농담까지 한다고 전했다. 지휘관이 사병간의 구타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견책사유가 아니라 실적이다. 가혹행위 여부는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한다. 기합도 개인적으로 주지는 못한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허가를 받아 실시할 수 있다. 신세대 장병에게 구타는 더 이상 군기유지 방법이 아니다.


구타로 군기잡기는 옛날 얘기

신세대 군인은 신세대의 특징과 군인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수방사의 한 장교는 신세대 병사들이 합리적ㆍ논리적이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명령했지만, 이젠 논리적으로 '까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신세대 병사들에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은 맞다. 병사들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거나 타당하지 않은 지시에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 장교는 "피동적 복종에서 자발적 복종으로 신세대 병사들의 스타일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여가수에 대한 열광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신세대 병사들은 여성 댄스그룹에 매료돼 있다. 한 병사는 핑클, SES, 베이비복스, 샵 등 댄스그룹 이름을 줄줄 꿰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들 그룹이 위문공연이라도 오면 부대는 경사가 난다.

야전용 자켓을 바리바리 들고와 사인을 부탁한다. 내무반 관물함 안쪽에는 거의 예외없이 여성 연예인의 사진이 붙어 있다.

군심(軍心)도 경기를 탄다. 경기가 나쁘면 외출ㆍ외박을 원하는 병사가 줄어든다. 부모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식에서 제대 후 취업을 고려하는 쪽으로 생각의 틀이 많이 변했다.

일과 후 시간에 독서 등 자습하는 병사도 늘었다. 해군은 영내에 자습실을 마련한 부대도 있다. 수방사에서는 자습을 원하는 병사에게는 저녁 점호도 열외시킨다. 병사들이 가장 즐겨 찾는 서적은 컴퓨터와 영어회화책이다. 수방사 헌병단 내무반 벽에는 생활한자 교재가 붙어 있다.

수방사 헌병단 정훈장교 박성준 대위는 현재 병영생활의 지침이 병사의 자기계발과 재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구타추방에서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수방사의 한 부대 막사에는 소대 내무반 문마다 영어회화, 독서, 시사연구 등 동아리 표시가 붙어 있다. 각 내무반이 동아리 집회장소로 쓰이는 셈이다.

육해공 3군은 병사들의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지난해 전체 동아리수는 659개. 전년에 비해 50개가 늘었다.

동아리 참가 인원은 7,835명. 공군의 동아리 분야는 어학(특히 영어회화)이 127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창작, 컴퓨터, 음악, 체육, 전통문화 등이 차지했다. 주기적인 경연대회를 통해 우수 동아리 회원에게는 외출ㆍ외박 혜택도 부여한다.


"우리는 신세대가 아닌 군인"

군은 신세대의 특성에 맞춘 새로운 병영문화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자율성 확대, 개인책임 임무분담제, 자기계발 기회부여, 검열축소, 성과에 따른 보상 확대 등이다. 신세대 사회문화를 병영에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군의 특수성과 배치되지 않는 신세대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군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수방사 헌병단 특수경호대 중대장 박성호(28) 대위는 신세대 장병에 대한 일부의 우려가 기우라고 주장했다.

"신세대 장병은 책임감이 강해 주어진 임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강하다. 계급으로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살려주면 특히 잘한다." 황두홍(23) 일병은 고향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고 말했다.

"군이 아무래도 집보다는 포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세대 장병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신세대라고 하면 기분이 안좋다. 신세대란 말에는 어딘지 허약하다는 경멸조의 뉘앙스가 묻어있다. 나는 신세대라기보다는 군인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19 17:2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