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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26 재보선 패배이후의 여권

4ㆍ26 재보선 패배이후의 여권

4ㆍ26 지방자치 재보선에서의 완패로 여권이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여권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변명성 '상황 논리'를 내놓지만 재보선 결과를 찬찬히 뜯어 보면 패배의 충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7곳의 기초단체장 선거 중 지역주의에 매몰된 부산ㆍ경남 지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지역에서 한 군데도 건지지 못했다.

자민련 후보를 연합 공천한 논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그것으로는 도저히 위안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 계층이 폭넓게 분포해 흔히 '밭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서울 은평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예상 이상의 큰 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은평구가 지역구인 두 의원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는 것이 민주당측의 변명이다.

그러나 민주당측 주장대로 후보 자질면에서 '월등한' 공천을 해 놓고도 패배이후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반대로 한나라당측은 은평구청장 선거에서 패했을 경우, 곧바로 공천 책임론이 나올 상황이었으나 선거 승리로 깨끗이 덮어졌다.

전북 군산시장 및 임실 군수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허탈하게 나가 떨어진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일이다.

여기에도 새만금 사업의 계속 여부를 확정짓지 못하고 지연시키고 있는 정부에 대한 전북도민의 민원성 현안 불만이 분노에 가까웠다는 상황논리가 전개된다.


믿었던 텃밭마저도 '냉랭'

그러나 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호남지역이 아무리 텃밭이라지만 이 지역의 민심을 그렇게 간단히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이와 관련해 "도청 이전설로 시끄러운 전남도 상황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라면서 "특히 광주의 민심은 전북보다 더 나쁘며, 정권교체 이후 호남지역에 대한 '역차별'정서도 뿌리깊게 누적돼 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2002년 대선에서 텃밭이라고 해서 안심해도 좋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의 주된 기조는 '민심 이반'이 재보선 완패로 이어졌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민심을 수습할 만한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 훨씬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위기, 공교육 붕괴, 경제 침체, 현대그룹 사태 등이 하나같이 국면전환용 단기성 카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대우차 노조원 폭력진압 사태와 관련해서는 이무영 경찰청장 등의 인책론까지 제기됐으나 정부가 '강력한 정부 답게‘ 인천지방청장 경질 선에서 매듭을 지었기 때문에 이미 실기(失期)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약방의 감초'처럼 당 지도부 인책론과 당정쇄신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거세게 몰아쳤던 당정쇄신론의 분위기 속에서 당을 개편한지 4개월 밖에 안됐고 개각을 한 지는 1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말 연초에 당정쇄신론을 목청껏 외쳤던 한 소장파 의원도 "사람을 바꾸자고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바꾸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여권의 인재 풀은 이미 고갈이 된 상태"라고 풀 죽은 소리를 했다.

가장 상징적으로 거론되는 대표 교체론의 경우, 당내의 대안논의가 김원기 최고위원을 거명하는 경우도 있으나 김 최고위원 쪽에서는 손사래를 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들 대표가 되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 "흠집만 나고 중도하차할 것이 뻔한데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는 기류가 당내에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리형 대표가 아니라면 실세형 또는 대권주자형 대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여권 후보 조기 가시화 및 후계구도 이양과 직접 맞물릴 수 있어 여권 핵심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다.


여권 차기주자들 보폭조절

김중권 대표 취임이후 김 대표의 활발한 지방 나들이에 자극을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조기 대권경쟁에 뛰어들었던 이인제ㆍ김근태 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 등 차기 주자들도 면목이 없게 됐다.

당장 당내에서는 대권만을 의식한 경쟁적 언행은 중단돼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터져 나왔고, 차기주자군도 이러한 목소리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실제로 차기 주자들은 4ㆍ26 재보선 이후 눈에 띄게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급한 대로 민생문제와 경제회생에 총력을 기울여 민심 회복의 계기를 잡아나가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민생의 현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더 깊이 있게 청취,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현장 정치'에 대한 강조도 다시 이어졌다.

당 지도부 인책론이 나오는 와중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김중권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해서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면 다시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상황인식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4.26 재보선 패배의 여파로 흔들릴 수도 있는 김 대표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는 측면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김중권 대표가 정부책임론을 들고 나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이 다시 한번 꼬였다.

김 대표는 4ㆍ26 재보선 바로 다음날인 27일 당4역 및 상임위원장단 회의를 주재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위기, 공교육 붕괴, 대우차 노조원 폭력진압사태 등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다가서지 못한 점이 있다"며 정부쪽에 화살을 날렸다.

김 대표는 나중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가 대표로 취임한 이후 4개월 동안 큰 오점 없이 잘 해 왔는데 도대체 당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듯이 반문했다. 김 대표는 "(내가 잘하고 있는데) 당 지도부 인책론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잔뜩 불만을 표출했다.

그 기저에는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나쁘게 받아들여졌다"는 정부 책임론이 깔려 있었다.


김중권 대표 "정부에 화살"

그러나 김 대표의 의도대로 4ㆍ26 재보선 패배를 정부 책임으로 돌리면 당은 그 책임에서 분리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당내에서는 "취임 일성으로 당이 정부를 끌고 가야 한다고 한 사람이 바로 김 대표인데, 정부를 제대로 견인해내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부의 수장이 바로 당 총재인 대통령인데, 정부 탓만 하면 당정이 분리되고 문제가 해결되는냐"며 김 대표의 상황인식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더욱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정부를 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던 김 대표가 이제 와서 정부책임론을 제기하는 모양새가 영 껄끄럽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진짜 큰 문제는 김 대표는 김 대표대로, 또 다른 차기 주자들은 차기 주자대로 자기만은 상처를 입지 않고 가겠다는 '혼자 살아남기'에 몰두하는 한 여권의 위기극복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이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 덕 현상과 연결되면 정권 구심점의 붕괴와 자중지란으로 빠져들 개연성마저 있다고 봐야 한다.

고태성 정치부기자 tsgo@hk.co.kr

입력시간 2001/05/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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