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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백가쟁명식 대권 논의 봇물

민주당, 백가쟁명식 대권 논의 봇물

민주당 내에서 요즘 '비마(肥馬)론과 기수(騎手)론'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재창출 방안을 둘러싼 논리 대결이다.

비마론은 튼튼한 말이 경마에서 이길 수 있듯이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의 개혁을 성공시키고 민주당을 강화하면 누구를 후보로 내세우더라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기수론은 '기수'가 경마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워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를 키워야 민주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동교동계는 비마론을 지지하지만 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 등 주요 대선 주자측은 기수론을 선호한다.

비마ㆍ기수 논쟁 외에도 민주당 내에는 대권ㆍ당권을 둘러싼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 4ㆍ26 재ㆍ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뒤로 위기 수습 및 정권재창출 방안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식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과 함께 확산되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을 막기 위한 논란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이른 대권 논의에 청와대는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기 대권ㆍ당권 논의가 "경제는 어려운데 벌써부터 대권 타령만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낳을 수 있는데다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대선주자들의 입을 무조건 막을 수 없어서 답답한 처지다.


이인제 계보 의원들의 후보 조기 가시화론

5월 17일 이인제 최고위원의 측근 의원들이 '이인제 최고위원을 대선 후보로 조기 가시화하자'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용삼 의원은 이날 낮 일부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내년 1월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하지 못한다면 이 최고위원에게 당 대표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삼 의원은 "한나라당은 사실상 후보를 확정, 국가혁신위를 만들어 각계 인사들을 상대로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며 "민주당도 이에 맞서 대선 후보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의 핵심 측근인 원유철 의원도 이날 저녁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이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맡고 지방선거 뒤에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당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방안이 좋다"며 단계적 후보 가시화론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불쾌감을 드러냈고, 다른 대선 주자 진영에선 "특정인을 거명해 후보로 내세우자는 주장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즉각 "내 생각과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 최고위원은 "내년 5~7월에 대선 후보 경선을 하는 게 바람직하며 구체적 경선 시기는 내년 봄에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용삼 의원 등의 주장은 청와대와 동교동계을 향해 '이인제 외에 다른 카드를 생각하면 우리도 독자 행보를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중권 대표의 후보 조기가시화론

김중권 대표는 5월 2일 여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대선 후보 조기 가시화를 주장해 다른 주자들의 반발을 낳았다.

김 대표는 "일부에서 후보를 조기 가시화하면 대통령의 레임덕이 빨리 온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레임덕은 절대로 내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차기 후보를 정해 놓았다고 대통령이 무력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차기 대선후보가 뛰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해 지방선거 전에 대선 후보를 선출하자는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영남에서 표를 얻어올 수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영남후보로의 조기가시화를 주장했다.

청와대측은 "김 대표의 주장은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파문 확산을 막았다. 김 대표 자신도 이튿날 "김기재 최고위원의 주장을 전했을 뿐이었다"고 해명하고 한발 물러섰다.


동교동계 구파의 2단계 전당대회론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동교동계 구파 인사들은 내년 1월에 당 총재ㆍ대표ㆍ최고위원을 선출하고 내년 7월에 대선 후보를 뽑자는 '2단계 전당대회 실시론'을 주장하고 있다.

권 전최고위원은 5월 11일 기자들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대선 후보 선출시기에 대해 "당에서 결정해야 하겠지만 우선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고 월드컵 대회도 있지 않느냐"고 말해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당헌상 총재와 최고위원들의 임기는 내년 1월 전당대회까지이므로 1월 전대는 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전대론은 동교동계가 우선 당권을 장악한 뒤 자신들의 주도하에 대선 후보를 낙점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비쳐졌다. 당내 최대 계파인 동교동계의 주장이어서 그런지 다른 대선주자들은 직접적 대응은 자제했다.


당권ㆍ대권 분리론

차기 대선후보와 당 총재 또는 대표를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수도권ㆍ중부권, 영남권, 호남권 등의 인사가 대권, 당권, 총리 내정자 등을 나눠 갖는 지역연합식의 역할분담을 해야 내년 대선에서 표를 모으는데 유리하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동교동계가 당권ㆍ대권 분리론를 가장 선호하고 있으며 이인제ㆍ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 상임고문 등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전념하고 당 지도부가 자율적으로 당을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내년 7월 전당대회를 실시해 총재와 대선후보로 따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교동계는 자신들이 당권을 장악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대권과 당권을 실제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선 후보가 주도권을 잡고 당권을 특정인에게 이양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대선 과정에서만 한시적으로 대권ㆍ당권을 분리해야 한다"며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권 ㆍ당권을 통합돼야 국정 운영이 순조롭다"고 말했다.


영남후보론과 제3후보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영남권 독식을 막기 위해서는 영남 출신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남지역 표를 나눠 갖고 호남 등 다른 지역에서 민주당 표를 지키면 승산이 높다는 것이다.

김중권 대표와 노무현 상임고문 진영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이다. 이들은 "호남이나 충청권 출신 인사를 후보를 내세우면 이회창 총재가 영남권에서 절대 우세를 지키게 될 것이므로 이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非)영남권 대선주자들은 "또 지역주의 조장이냐. 영남에서 표를 많이 얻어오기도 힘들고 다른 지역에선 더 어려워진다"며 영남후보론을 비판하고 있다.

또 "당내에서 현재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을 내세우면 이회창 총재를 꺾기 어렵다"며 참신한 제3의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자는 주장도 동교동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 김중권 대표, 노무현 상임고문, 한화갑 최고위원 등의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제3후보론은 기존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견제하고 김 대통령과 동교동계의 영향력이 조기에 약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주장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 등을 '제3후보' 로 거론함으로써 야당 분열을 유도하는 효과도 노리는 것 같다. 그러나 얼굴 없는 제3후보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다.

김광덕 정치부 기자 kdkim@hk.co.kr

입력시간 2001/05/2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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