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바닥론…하반기가 회복 적기?

중장기적 상승추세 분석이 대세, '악제여전' 신중론도

인내를 요구하던 주식시장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낙관론이 득세하는 여의도 증권가에는 종목 추천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연신 울리고 있다. 주식을 종합지수 1,000 이하에서 살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고, 4월 중순부터 시작한 상승세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선동가'의 목소리가 커지고 종합지수가 매물 벽을 뚫고 연중 최고치를 향하면서 주식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비관론에 힘을 싣던 한 분석가는 마침내 마이너스 대출 통장을 개설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위기감이 감돌던 것과 비교하면 주식시장은 크게 변화한 것 같은 모습이다.


"주가 바닥 짚었다" 대체적 인식

주식시장에는 현재 적어도 주가가 중장기적으로 상승추세를 타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제 각각인 점이 불안하지만, 분석가들마다 무언가 감을 잡기 시작한 듯한 말을 전하고 있다.

먼저 강한 '러브 콜'을 낸 삼성증권은 경기가 바닥을 찍었고, 주가는 대세상승의 초기단계라고 진단했다. 국내경기는 2월이나 3월에 바닥을 찍었을 수 있고 혼란스런 거시지표와 달리 미시지표는 일관되게 경기바닥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기가 바닥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의 주식이 나 홀로 상승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한국은 경기와 주가가 선진국보다 선행하므로 미국의 경기회복 때까지 기다리면 늦다는 논리를 폈다.

이남우 상무이사는 무엇보다 금리안정과 기업수익의 회복세가 주가의 근본적인 상승을 가능케 할 양대 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증권의 정태욱 리서치센터 본부장(이사)도 아직 대세상승인지는 모르지만 경기는 4월보다는 5월이, 또 6월이 더 좋아질 것이고 주가는 따라서 오른다고 보고 있다.

작년 우리 증시는 현대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다며 현대문제를 누구보다 우려해 온 정 본부장이 최근 한 투자설명회에서 증시를 떠나고 싶지만 향후 2~3년 내에 큰 장이 올 것 같아 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개인 심경까지 토로했다.

대우증권의 신성호 투자전략부장은 하반기 경기회복 가능성이 높아진 점과 경기에 대한 주가의 선행성을 감안하면 주가는 완연한 추세전환(대세상승)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추세적 상승을 하는 과정에서 경기회복의 수준이 충분치 않는 등 여러 가지 기복이 남아 있어 '러브 콜'을 낼 시기문제는 남았지만, 주가가 바닥을 지나갔다는 사실은 재차 확인하고 있다.

증시에서 나름대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3인의 시각에는 현 단계에서 어떻게 채색할 것이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단기적 시황에 얽매이면 일희일비할 일이 여전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주가는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시 낙관론은 시장분위기에 때맞춰 나와 투자가들의 체감지수를 밀어올리고 있다. 일부에선 일방적인 약자인 개인투자가에게 상투를 잡으라는 신호 아니냐고 의심하지만, 심한 동조화로 미국의 52번째 주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 서울 증시는 경기지표가 제법 호전되자 종합지수가 500선 바닥을 다지고 600선을 넘어서 있다.

나스닥지수도 1,600선까지 내려갔다가 2,200선으로 회복되고, 다우지수는 1만1,000선을 유지해 안정된 상황이다.

물론 첨단기술 부문의 재고와 과잉투자 문제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나스닥 지수의 2,500선 돌파는 3/4분기 이후로 미뤄지고, 다우지수는 기술적인 추세 반전이 끝나면서 조정국면이 길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연초 바닥찾기에 고심하던 상황에서 보면 시장의 질은 긍정적으로 변해 있다.

특히 서울 증시는 현대투신,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란 '3대 현대 악재'가 수습단계로 접어들고 대우차의 GM 매각도 물밑작업이 빨라지면서 그동안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던 구조조정 지연이란 취약점이 호재로 바뀌고 있다.


"미국경기 장기침체 지속" 신중론 여전

대세상승이란 밑그림에 색칠하는 작업이 지연되는 것은 신중론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신중론자들은 미국 경기가 10년 장기호황 이후 첨단기술주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인해 장기 침체로 치닫고 있다는 기존 분석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과도한 투자로 인한 높은 생산력과 고정비용, 이자비용으로 주가(기업실적)는 수년간 하락하고, 아직 그 징조는 보이지 않으나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도 위축될 수 있어 경기와 주가가 V자형 회복이 아닌 L자형 침체로 간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메릴린치, 국내에선 교보증권 등의 분석기관이 이런 비관론을 접지 않고 있다.

이들은 최근 기술주의 상승도 펀더멘털의 개선없이 이뤄져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다. 최근 필립스가 전세계 반도체 매출이 올해 20%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반도체 장비 산업협회(SEMI)는 지난 4월 반도체장비업체의 주문율이 과거 10년중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힌 점도 신중론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현물가격이 2/4분기에 저점을 찍고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 주류를 이뤘으나 빗나가고 있다. 5월27일 현재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128메가 SD램 가격은 개당 2.75달러, 64메가 SD램은 1.40달러로 추락한 채 하방경직성 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4월 세계 증시에서 기술주 상승의 기폭제로 작용한 미국의 1/4분기 GDP(국내총생산)성장률이 추정치보다 0.7% 낮은 1.3%에 그쳐 낙관론의 근거인 경기회복의 시기까지 급히 조정되고 있다. 또 미국의 4월 내구재 주문에서 컴퓨터 반도체 통신장비 등 첨단기술부분이 전달보다 8.8%나 하락하는 등 기술주의 상승논리는 어느 때보다 취약해져 있다.

국내의 정치 경제 상황도 낙관론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증시와는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은 정치변수인데, 공교롭게 서울 증시는 대통령의 임기와 같은 5년 주기설에 시달려 왔다. 현재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반을 앞두고 있다.

정책적 결정에 있어 정치논리가 앞설 가능성은 그만큼 높고, 이는 구조조정 같은 장기과제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초반 경제에 이상신호가 잡혔지만, 자주 교체된 내각이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면서 지금의 저성장 구도가 정착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대투신 김승현 이코노미스트는 "임기 말을 앞두고 경제 현안들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시도가 나올 수도 있는데, 실패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국내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성장수준의 저하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과거처럼 고성장은 어렵다는 분석도 힘을 더하고 있다.

더구나 반도체 정보통신에 이은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없는 상태이고, 새로운 성장엔진이 한국경제를 이끌기 위해서는 2~3년이 필요하다는 점은 경기의 반짝 회복이후 재추락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우리 경제의 대표적 성과인 1998년 이후 구조조정의 경우도 생산력과 효율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확보보다는 고용조정과 비용감축, 대차대조표 개선 같은 손쉬운 부문에 집중해, 주가를 이끄는 기업 수익이 상승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현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보면 내년 이후 우리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2년 정도 횡보를 한 다음에나 새로운 성장추세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상황 등과 맞물린 M자형 시나리오도

낙관론과 신중론을 모두 인정해 지금의 증시상승은 내년 선거시즌 이전에 마무리될 것이란 시나리오를 일부에선 제기하고 있다.

경기호전과 맞물려 월드컵이 열리는 6월 이전까지 증시가 시세를 한껏 뽑아 올린 뒤에는 다시 내리는 M자형 구도.

증권시황 정보를 수집하는 증권거래소의 단일순씨는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이전인 87년에도 지금과 같은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고 소개하고 "지금은 당시와 정치상황이 다르지만 종합지수가 월드컵이란 변수를 전후해 전고점(1,054)을 돌파하는 시도는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데스증권의 정동희 리서치 팀장도 "이 같은 기대감이 올해 먼저 반영된다면 하반기에 먼저 강한 시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M자형 시나리오에 동조했다.

이태규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30 17:53


이태규 경제부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