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랜서의 세계] 나 이랜서, 노는 물은 인터넷

일렉트로닉 프리랜서…컴퓨터 관련직종이 주류

이랜서(e-lancer)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이랜서는 풀어서 말하면 전자(electronic) 프리랜서 (freelancer). 말 그대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1999년 발표한 '이랜스 경제의 태동'이라는 논문을 발표, 주목을 받은 미국 MIT 토마스 말론 석좌 교수에 의하면 "전자적으로 연결된 프리랜서들"인 이랜서들은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일이 끝나면 네트워크는 해체되고 개인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이랜서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것은 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의 보급 및 인터넷 비즈니스의 등장에 즈음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였다.

이제는 이랜스 비즈니스란 말이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을 정도. 특히 미국의 경우는 1998년 설립, 140개국 30만명의 이랜서가 등록되어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이랜서닷컴(www.eLancer.com) 등 관련 사이트만 수백 개에 이른다.


이랜서 붐, 연간 5조원 시장 규모

구미의 이랜스 붐은 곧바로 국내로도 이어졌다. 2000년을 전후해 하나둘 이랜서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1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지난해 5월 ㈜ 소리넷 커뮤니케이션이 미국의 이랜서닷컴과 제휴, 설립한 이랜서(www.elancer.co.kr)를 시작으로 이구루(www.eguru.co.kr), 아이구루(www.iguru.co.kr) 등 회원제 이랜서 전문 사이트들도 등장했다.

여성 전용 사이트인 사비즈(www.sabiz.co.kr)에서도 여성들을 위한 이랜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소리넷에 등록한 이랜서들만도 1만2000명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이랜서 시장이 연간 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랜서들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종래의 프리랜서와 비슷하다. 기업이나 조직에 속해있지 않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때 그때 의뢰인으로부터 일을 맡아 정해진 기간 안에 끝을 낸다.

일을 맡을 때는 해야 할 일의 성격과 범위, 보수에 대해 먼저 의뢰인과 합의(계약)를 한다. 능력이 있고 시간만 된다면 여러 업체의 일을 동시에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랜서들이 하는 일의 방식이나 종류는 일반 프리랜서와 다르다. 프리랜서들이 아는 사람을 통하거나 발품을 팔아 일을 맡는데 비해 이랜서들은 이름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해 일을 수주한다. 홈 페이지를 통해 자기를 알리기도 하고 이랜서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랜서 전문 사이트는 일을 찾는 이랜서와 일할 사람을 찾는 개인 또는 기업을 연결시켜 준다. 10% 내외의 수수료를 받는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아직 대부분의 사이트가 무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조만간 유료화할 예정이다.

사이트는 의뢰인이 원하는 일의 내용과 기간, 금액 등을 올려 놓으면 관련된 이랜서들이 응찰, 서로 조건이 맞으면 일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많은 경우 프로젝트의 수보다 이랜서의 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이랜서의 경우 한 건이 올라오면 평균 20:1이 경쟁률을 보인다.

이랜서는 주로 인터넷과 관련된 일을 한다. 웹 디자인, 컴퓨터 엔지니어링, 데이터베이스 관리, 프로그래밍, 시스템 분석, 웹 컨텐츠 매니지먼트 등 컴퓨터 관련 직종이 이랜서의 70~80%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역시 온라인으로 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컨설팅이나 번역, 게임 시나리오 작가, 통계분석, 홍보, 이벤트 기획, 부동산, 세무 관련 업무 등이다. 기존의 프리랜서가 자유기고가라는 말과 동일시 될 정도로 작가, 작곡가, 사진작가 등 인문, 창작 분야가 각광을 받았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

또한 프리랜서가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랜서는 국경을 초월해 일할 수 있다. 역시 인터넷 덕분이다.


의뢰기업은 고용비용 절감효과

이랜서 바람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랜서를 고용하는 기업들은 요즘 인터넷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자연히 인터넷 관련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인터넷 관련 업무를 이랜서에게 맡길 경우 한시적으로 계약을 맺으므로 고용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요즘처럼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지고 아웃 소싱이 대세인 때는 특히 그렇다. 또 특정 사안을 전문가에 맡길 수 있어 이랜서를 선호한다.

반면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랜서는 일단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를 수 있다. 여러가지 일을 두루두루 잘할 필요도 없고 한가지 만을 전문적으로 잘 하면 된다.

또 일하는 시간도 자기가 조절할 수 있고 정해진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연공서열이나 조직의 규율에서도 자유롭다.

이랜서의 대부분이 20,30대라는 것은 이들이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세대에 비해 탈조직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이랜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는 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는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한 벤처 기업의 컴퓨터 관련 문제를 4일에 걸쳐 해결해 주고 500만원을 번 경우도 있다.

서울시 공무원을 그만두고 지난해 11월부터 이랜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함승호(38)씨는 "일반 직장에 들어가려면 비전공자에 나이가 많다는 것이 제약이 되지만 이랜서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다.

다만 작품으로 승부할 뿐"이라고 말한다. 함씨는 앞선디자인(www.apsundesign.com)이라는 이름으로 홈 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올려 놓았으며 주로 이를 보고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어 일을 한다.

가끔 계약 성사 직전에 회사가 아닌 개인이라는 것을 알고 프로젝트 사후 책임 지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애프터 서비스에 대한 약속과 고객과의 지속적인 대화로 신뢰를 얻는다.

한가지 단점은 혼자 일하기 때문에 한 달에 두 건 이상은 맡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함씨는 앞으로 뜻 맞는 사람과 모여 팀을 꾸려 볼 계획이다. 요즘에는 혼자 일하는 것보다 각자 전공을 가진 이랜서 몇 명이 모여 함께 일하는 것이 추세다.

하지만 이랜서가 마냥 자유롭기만 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거리가 불규칙하게 들어오므로 일이 많을 때는 오히려 일반 회사원들보다 곱절 이상 일해야 한다.

더구나 납기일 안에 일을 끝내려면 며칠 밤을 새는 등 무리할 때도 많다. 또 이랜서는 철저하게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이 몰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회사라는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금새 도태된다.


실력·신용이 첫째조건, 프로근성 갖춰야

그러므로 이랜서가 되려면 실력과 신용이 생명이다.

소리넷 커뮤니케이션의 이창섭 이사는 "기업이나 개인이 이랜서를 정할 때는 실력과 함께 성실성, 의사소통 능력, 이전 프로젝트에서의 평가 등 신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이런 평가 항목 사항들 역시 인터넷 상에 공개되므로 한번 신용불량을 낙인 찍히면 설 곳이 없어진다.

반면 고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이후 또다른 프로젝트를 맡겨 오므로 어떤 면에서는 신용이 실력에 우선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의 속성에 익숙하고 시간 관리 등 프로 근성을 갖추고 있다면 최고의 이랜서 감이다.

이 이사는 또 "최근 들어 외국으로부터도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한국의 이랜서들이 이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의 영어 실력과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의식까지 갖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30 18:0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