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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복한 시각장애 산악인 에릭 바이헨마이어

등반팀을 이끄는 파스칼 스카투로가 시각장애 산악인인 에릭 바히헨마이어를 에베레스트 정복 제1캠프에서 만났을 때 갑자기 두려워졌다.

에릭은 이미 상처투성이에다 탈수상태였다. 한 동료는 “(에릭이) 샌드백을 두시간이나 때린 (전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과 같다”고 말했다.

샌드백을 두들기도록 한 사람은 에릭의 등반 파트너인 루이스 베니테즈. 그는 제1캠프로 오르던 중 크레바스 속으로 미끄러진 에릭을 끌어올려야했다. 그 와중에 에릭은 폴대에 걸려 턱과 코에 상처를 입었다.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에는 그런 상처도 잘 낫지 않는 법이다.

일행은 에릭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앞일을 논의했다. 대장인 스카투로는 고민에 빠졌다. 시작장애인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과연 오를 수 있을까.

13세때부터 눈망막의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은 에릭도 숱한 산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일행과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쿰부 빙벽을 오르면서 그는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의 에베레스트 도전이 잘못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산에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에베레스트에는 그의 생명을 앗아갈 여러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자칫 크레바스에 떨어지거나 눈사태를 맞을 수도 있고, 산소부족에 따른 뇌 손상으로 죽을 수도 있다.


빙벽은 잔인한 코스, 제1캠프까지 13시간

빙벽을 오를 때는 너무 아슬아슬했다. 앞으로 그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피아노 조율이나, 연필 세일즈 등에 그친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를 악물었다.

시각 장애인들에겐 지금까지 익숙한 패턴이 있다. 일정한 높이의 계단과 장애인용 보도 블록, 그리고 일정한 커브 돌기 등이다. 그들은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환경속에서 그 패턴을 익혀왔다. 그리고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한다.

하지만 쿰부 빙벽에는 그런 패턴이 통하지 않는다. 1,000 피트 깊이의 크레바스가 있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얼음판도 있다. 그야말로 시각장애인에게는 잔인한 코스다.

그 코스는 물의 흐름에 따라 매년 변하기도 하고, 얼음 바위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으며 큰 크레바스에는 로프 계단이라도 있지만 작은 크레바스는 건너 뛰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패턴을 맞춰 나가기에는 장애물이 많다. 빙벽에는 시스템이란 게 없고, 반복이란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걸로 끝이다.

“앞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크레바스가 있고, 세 발자국을 더 떼면 또 하나가 있고, 그리고 눈 다리가 나온다. 깎아지른 벽에 다리, 그리고 건너뛰어야 할 작은 크레바스가 또 앞을 가로막는다”고 에릭은 회고했다.

그래서 에릭은 베이스 캠프에서 제1캠프까지 가는데 13시간이 걸렸다. 스카투로 대장을 비롯한 다른 일행은 7시간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일행의 도움을 거부했다. 크레바스에서 부상한 뒤 일행은 그의 짐을 세르파에게 짊어지우려 했지만 그는 이러한 ‘배려’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짐을 스스로 졌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운반’되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에릭은 비록 시각은 잃었지만 튼튼한 폐와 상체, 다리,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정상적인 산악인들보다 체력적으론 유리할 지 모른다. 또 강한 도전정신에 감기나 육체적 고통, 외로움 등을 잘 견뎌내는 의지도 있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끝없는 열정과 체력, 의지를 필요로 한다. 중간에 낙오하면 일행은그를 버리고 갈 수 밖에 없다. 에릭은 텁수룩한 수염과 조심스런 태도속에 강한 의지와 도전 정신, 킬러적인 기질을 감추고 있었다.

보통사람은 시각장애인조차 오른 에베레스트 정상이니 정상적인 사람은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등반대의 90%는 정상 정복에 실패한다. 1953년 이후 적어도 165명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5월에도 4명이 산에서 죽었다.

“사람들은 앞이 안보이니까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데, 아니다. 2,000피트 높이의 아래를 보지는 못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같다. 죽음은 죽음이다”라고 에릭은 말한다.

그의 등정 비용으로 25만달러(약 3억원)를 후원한 미국 시각장애인 연맹은 에릭의 에베레스트 정복후 “에릭씨는 과거 헬렌 켈러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평가했다.

에릭은 13세에 시력을 잃은 뒤 얼마동안 “곧 시력을 되찾을 것”이라며 지팡이와 점자 익히기를 거부했다.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뒤부터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시각적장애와 싸우는 게 아니라 장애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저주하기 보다는 그 안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그것 없이도 해나갈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앞선 동료의 벨소리 듣고 올라

그러나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농구나 축구공은 절대 잡지 않았다. 대신 레슬링에 빠졌다.

“정상인들과 어울려 매트위를 뒹굴었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그는 레슬링 애찬론을 편다.

실제로 그는 레슬링을 통해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17세 때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시작했다. 1997년 결혼한 아내는 그때의 여자친구는 아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부드러운 피부, 몸매, 근육, 그리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중요하다”면서 “아내의 목소리는 너무 예쁘다”고 자랑한다.

등산은 16세 때부터 시작했다. 타고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그는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구아 등 수많은 고봉에 올랐고,미국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스포츠웨어 전시장에서 에베레스트 등정 경험을 가진 등반대장 스카투로를 만나 에베레스트도전의 꿈을 키웠다.

에릭은 지팡이와 앞장선 동료의 배낭에 달린 벨소리만을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마지막 정상정복을 시도했을 땐 등반대는 이미 2개월째 산속에 있었다.

첫번째 시도는 악천후 때문에 실패했다. 강한 제트 기류와 짙은 구름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섰다. 운명의 날인 5월24일. 일행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남서쪽 릿지(South Ridge)의 출발점인 발코니(Balcony)에 도착했다. 갑자기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밀려왔다. 그러나 중단할수는 없었다.

남쪽정상(South Summit)까지는 1,200피트. 그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달에서 우주인들이 걷고 있는 것같았다. 움직임이 끝나고 드디어 정상. “한번 돌아봐. 정상이야” 한 동료가 소리쳤다. 에베레스트 도전 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각장애인의 정상정복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진희 주간한국부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1/06/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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