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언론사주 고발 여부가 '태풍의 눈'

90년만의 왕가뭄에 그토록 기다리던 장마가 시작됐지만 이젠 물난리 걱정이다. 한 달이나 계속된다는 올 장마가 어떤 재해를 몰고올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번 주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의 계속이다. 이 지리한 세무조사 정국장마는 또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 주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여야 간, 일부 언론사-정부여당 간 싸움이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번 주 중ㆍ후반께 국세청이 예고한 대로 언론사주들을 고발할 경우 그 싸움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발 대상은 6~7명 선인데 검찰 고발 시에는 세무조사결과 때는 익명처리됐던 해당언론사 사주의 이름과 혐의 사실들이 적시될 수도 있어 또 다른 파란을 부를 개연성이 높다.


조세권 행사 정당성 여부로 격돌

언론사세무조사 논란의 핵심은 ‘정당한 조세권행사’라는 여권의 주장과 ‘언론 길들이기’라는 한나라당 인식의 충돌이다. 여권은 언론사라고 해서 탈세와 범법의 성역이 될 수 없으며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세무조사를 받고 탈세와 범법 사실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왜곡된 언론사의 소유구조와 사주들의 전횡 및 사익 추구가 공정한 언론풍토 정착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여권은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몇몇 신문들로부터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그 같은 구조 속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인식은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의 발언에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그는 6월22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주당고문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강연에서 오는 2020년 시점을 기준으로 가정해 볼 때 우리 삶의 가장 큰 변화를 준 역사적 사건으로 남북정상회담과 IMF극복, 정보화, 세계화를 꼽아 왔다. 이젠 여기에 언론기업 세무조사를 보태야겠다.

일부 수구언론은 과거 독재시대부터 인권을 탄압하고 독재를 옹호해 왔다. 민주화 이후 각계가 개혁하며 상호견제와 균형을 취했는데 반해 언론만은 견제 없이 최후의 치외법권지대로 남아 있었다.” 한마디로 언론사 세무조사는 우리사회의 마지막 성역으로 남아있는 언론사 개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도 이 같은 인식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생각은 전혀 딴판이다. 이회창 총재는 23일 비 운동권 대학총학생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법의 이름으로 언론의 멱살을 잡고 정국운영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하는 시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조사는 매우 불공정하고 정권 출범 초기에는 하지 않다가 대통령의 언론개혁 언급 이후 조사가 이뤄지는 등 의혹이 짙었으며, 조사이유가 언론을 견제하고 탄압하려는 의도 하에 이뤄졌다면 법의 이름이라 해도 정의라 할 수 없다.

내용이 너무 과다하고 추징액이 부풀려졌으며 특정 언론사에 과도하게 추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도 연일 성명을 내고 “말 잘 듣는 언론사는 살려주고 헝거하는 곳은 무너뜨리겠다는 음모”라며 “정권재창출과 레임덕 방지에 눈이 멀어 언론을 압살하려는 정권의 기도에 당력을 모아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ㆍ국방장관 해임안 처리 관심사

한나라당은 그동안 여권 내에서 흘러나왔던 ‘언론장악문건’에 나와 있는 대로 정권재창출을 위한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하지만 여권은 정권창출을 위한 언론장악 의도라는 주장에는 코웃음을 친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의 대 정부ㆍ여당공격이 훨씬 신랄해졌으며 대선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언론 장악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추징과 검찰 고발 후사법처리 절차는 내년 대선 국면을 넘겨서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상황에서 세무조사결과를 무기로 언론을 장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여권내부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착수 후 전개되고 있는 언론과의 갈등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현장 실무팀장 24명을 국회 재경위에 불러 추궁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이와 함께 국정조사권 발동도 요구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보인다.

30일 폐회하는 이번 임시 국회 막바지에는 한나라당이 제출한 임동원 통일부장관과 김동신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가 어떻게 될지도관심사다.

이는 북한 상선의 영해침범 이후 계속된 여야 대결의 종착역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자민련이 요구하고 있는 국회 교섭단체 구성요건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맞물려 여야 3당간에 미묘한 역학기류를 형성할 개연성도 있다.

이계성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6/2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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