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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충정인가? 반란인가?

"DJ 총재직 사퇴·당적이탈" 주장, 진의 놓고 설왕설래

1997년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을 자처해 온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충정의 반란(?)’을 일으켰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 당적 이탈까지 주장, 금단의 영역에 불쑥 들어선 것이다.

이 같은 메가톤급 발언에 민주당의 분위기는 금방 흉흉해졌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의 입에서는 “이 전 원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한다”는 얘기가 터져 나오는 등 이 전 원장에 대한 깊은 불신감과 적의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물론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김 대통령의 결단이 불가피한 시점이 올 것이라는 호응도 없지 않다.


동교동계 펄쩍, 실수 아닌 소신?

이 전 원장은 월간지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거사’를 했다. 그는 월간중앙 7월호와의 회견에서 “김 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룩했고 남북화해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국내 정치에서 벗어나 초월적 위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의 사례로 볼 때퇴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며 ‘경고’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초월적 위치라는 것은 물론 총재직사퇴와 당적 이탈까지를 다 함축하는 표현이다.

김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으로 임기말 권력누수(레임덕) 현상에 노심초사해 온 동교동계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범동교동계 중진 의원인 민주당 안동선 최고위원이 19일 당 의원총회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반격에 나섰다.

안 최고위원은 “국가권력의 한 축인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한 데 대해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50년만에 정권을 창출했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살려야 함에도 불구, 정권 인수위원장까지 지낸 전 국정원장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라고 비난했다.

안 최고위원은 이어 “대통령이 집권당을 떠나 국부, 국사 위치에 있는 게 바람직하다는 발언은 일견 그럴듯 하지만 나에게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되라는 소리로 들린다”며 이 전 원장 주장의 저의를 의심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다당제 국가로 여당과 야당이 존재하면서 정부와 함께 여당이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떠나면 모두가 야당이 되며 책임정치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안 최고위원은 이어 “과거 정권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왜 그런말을 못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겉으로는 존경하고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의도는 손떼라는 얘기인데 집권 여당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정권은 무너진다”며 강력 대처를 촉구했다.

이 같은 격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 이 전 원장이 왜 이 민감한 시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이전 원장의 인간적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몇몇 인사들은 “아마도 실수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 경력에 비해 다소 순진하고 앞뒤 가리는 것이 서투른이 전 원장이 엉겁결에 속내를 들킨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실수론도 이 전 원장의 속마음이 김 대통령의 당적 이탈에 있다는 점만은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전 원장이 네덜란드에 체류하면서 측근을 통해 밝힌 이른바 ‘해명자료’를 보면 단수한 실수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있다.

이 전 원장은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 대통령은 국정개혁의 마지막 손질을 해야 할 이 시기에 정당과 정파의 차원을 넘어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지는 자세로 서야 한다”며 자신의 논지를 더 논리적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되면 해명이 아니라 ‘강한 확인’이 되는 셈이다.

이 전 원장은 “여야를 모두 동일선상에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김 대통령이 설령 민주당을 창당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이유기가 되었으며 민주당이 아직도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민정당이 아니다”며 김 대통령의 당적 이탈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할 때 호소할 수 있는 진정한 국부나 국사가 필요하다”면서 “김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은 하루빨리 국내정치의 늪을 뛰어 넘어 초월함으로써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 보도자료가 배포되자 이 전 원장의 실수론을 주장했던 인사들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정치적 입지 염두에 둔 포석” 해석도

이제 이 전 원장이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소신으로 삼게 된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말 그대로 충정의 발로일 수 있다. 여권의 중견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시대적 통찰력을 갖고 김 대통령의 정치적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이 전 원장의 정치적 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들면서 이 같은 충정론에 무게를 싣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여기에는 현재 여권이 처한 위기상황과 김 대통령을 분리시키는 것이 둘 다 사는 길이라는 전략ㆍ전술적 포석도 한 몫을 한다.

그러나 이 전 원장이 지난해 4ㆍ13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뒤 현실 정치에서 멀어져 있으면서 김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에 대한 불만을 키워 왔다는 해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올해 장기간의 외유에서 돌아온 뒤 한때 청와대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여권 내부 기류에 정통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전 원장이 정치적 재기를 위해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등을 접촉하고 우리나라의 물류 기지화를 주창하며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국제적 이벤트를 구상했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총선에서 시민단체에 의해 공천 반대 및 낙선 운동 대상으로 지목됐던이 전 원장은 강연 정치에 뛰어들면서 김 대통령의 노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97년 대선전에서 기껏 김 대통령의 색깔을 중도우익으로 바꿔 놓았는데 어느덧 다시 왼쪽으로 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보수화, 우경화의 길로 다시 접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전 원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도 “김 대통령이 일부 시민운동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면서“김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중도우익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 때문에 심지어는 “이 전 원장은 김 대통령과 함께 가려 하기보다는 김 대통령 이후의 정치적 입지를 염두에 둔 포석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고태성 정치부기자 tsgo@hk.co.kr

입력시간 2001/06/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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