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69)] 하나비(花火)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아주 간단한 것인데도 고민을 거듭하는 예가 많다. 밤하늘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하나비'(花火)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한자를 그대로 옮기면 '꽃불'이 된다. 그런대로 뜻도 통하고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쓰이지않는 말이 돼 버렸다.

'불꽃놀이'라는 말은 '꽃불'을 피우거나 이를 즐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불꽃'만 떼어 내면 전혀 엉뚱한 뜻이 된다.'폭죽'(爆竹)이란 말도 쓰이지만 소리가 목적이란 점에서 눈의 즐거움을 겨냥한 '꽃불'과는 거리가 멀다.

불꽃놀이는 일본 여름의 으뜸가는 풍물이다. 매년 여름이면 전국 곳곳의 바다와 호수, 강가에서 대회가 열린다. 작은 대회는 3,000발 정도 큰 대회에서는 수만발의 화약 덩어리가 쏘아 올려져 밤하늘을 수놓는다.

7월28일에 열린 도쿄(東京) 스미다가와(隅田川)대회에서는 93만여명의 구경꾼이 몰린 가운데 2만4,000발이 발사됐다. 최소한 1시간은 거듭되는 장관을 무료로 즐길 수 있어 서민들에게는 커다란 잔치가 아닐 수 없다.

도쿄의 경우 스미다가와 대회 외에도 에도가와(江戶川)구 대회, 이타바시(板橋)구 대회, 도쿄만 대회 등 큼직한 대회가 열릴때면 인근 주민은 물론 멀리서까지 찾아 온 구경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해가 지고 나서야 시작되지만 오후 3~4시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가족 단위로 도시락과 음료수, 맥주 등 주류와 안주를 준비해 와 먹고 마시고 떠들며 환성을 연발한다. 찬란하게 빛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꽃불'의 아름다움이 흔히 벚꽃에 비유되듯 불꽃놀이의 이런 풍경도 봄철의 벚꽃놀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얇고 화사한 '유카타'(浴衣) 차림에 부채를 든 젊은 여성이 연인과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도 일본의 하나비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남녀가 따로 패를 지어 구경을 가더라도 현장에서 미팅을 통해 곧바로 짝을 짓는다. 이런 남녀의 자연스러운 교제도 불꽃놀이의 인기를 부채질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축제에 공통된 기능이다.

이런 대규모 대회가 아니더라도 여름이면 동네 공원이나 강변에서 밤마다 아이들이 놀이용 하나비를 즐긴다. 가족들끼리 또는 연인들이 가늘게 반짝이는 '센코'(線香) 하나비를 함께 태우며 앞날을 기원하고 다짐한다.

불꽃놀이에 대한 일본인의 열광에서 흔히 '땅의 꽃은 벚꽃, 하늘의 꽃은 하나비, 남자는 무사'라는 말처럼 일본 특유의 생사관과 미의식을 엿보게 한다. 화려하게 천공을 수놓았다가 일시에 사라지는 '소멸의 과정'에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의식은'찰나의 덧없는 삶'이라는 불교적 허무주의와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처럼 대규모 불꽃놀이가 오랜 세월 거듭될 경우 열광하지 않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불꽃놀이는 어떻게보면 낭비이자 사치이다.

화약을 이용한 근대적 불꽃놀이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시작돼 나중에 영국에서 꽃피운 것은 경제적 여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하나비 열기도 에도(江戶)시대의 평화와 번영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이 빠르다.

일본의 불꽃놀이는 1613년 영국왕 제임스 1세의 사신인 존 셀리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앞에서펼쳐 보인 것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도쿠가와 가문은 물론 전국의 제후들이 전문 장인인 '하나비시'(花火師) 양성에 힘을 쏟았다. 장인들은 매년 스미다가와에 모여 후원자의 명예를 걸고 솜씨를 겨루었다. 이는 곧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했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문적으로 놀이용 '꽃불'을 만드는 민간업자들이 잇따랐다.

바쿠후(幕府)는 화재를 이유로 모두 6차례나 금지령을 내렸으나 1733년 8대 쇼군(將軍) 요시무네(吉宗)가 전년의 흉년과 전염병으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에서 불꽃놀이를 재개, 완전히 해제됐다.

19세기말 각종의 화학 약품을 곁들여 다양한 빛깔을 내는 기법의 도입으로 일본의 하나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대를 이어 장인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매년 대회를 통해 기량을 겨룬 결과 현재는 세계 정상을 자랑한다.

일본의 하나비는 구미의 원통형과 달리 구형이어서 업계에서는 흔히 '다마'(玉)라고 부른다. 직경 1㎙가 넘는 '다마'를 수백㎙ 상공으로 쏘아 올려 커다란 꽃을 피워 내는 기술은 독보적이다.

2차 대전으로 중단됐던 일본의 불꽃놀이 대회는 46년 재개된 이래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됐다. 에도시대에는 평화와 번영을 반영하는 축제였지만 요즘에는 장기불황으로 고통을 겪는 서민들을 위한 위로잔치 역할을 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1/08/02 16:2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