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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중년] 조기 강판 40대 갈 곳이 없다

[갈 곳 없는 중년] 조기 강판 40대 갈 곳이 없다

구조조정 등으로 조기 용도폐기, 재취업 '하늘의 별따기'

‘귀사에 지원하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중략) OO그룹 계열사에서 16년간 근속하다 그룹이 뿔뿔이 해체되는 운명에 떠밀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벤처기업으로 옮겨 밤을 낮 삼아 성실히 일했습니다. 벤처기업이 본 궤도에 올라선 뒤 더욱 탄탄한 회사로 올라설 수 있도록 대표이사에게 구조조정을 건의한 뒤 솔선수범해 사직서를 제출 했습니다…(중략) 귀사의 새로운 조직의 임무에 충실히 임하겠사오니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MBA 출신의 42세 한 중년의 입사 지원서중에서)

40대 중년. 공자는 이 시기를‘외부의 힘에도 흔들림이 없이 중심이 서는 나이’라 해서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그런 이 땅의 중심이었던 40대 중년이 흔들리고 있다.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 40대는 경제정치 문화 활동의 중심 기저를 형성한다. 젊은 시절의 치열한 격정기를 거쳐 이제 막 인생의 결실을 수확하려는 황금기가 바로 40대다.


신조류ㆍ신기술ㆍ신세대에 밀려 위상 곤두박질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이 땅의 40대 중년들의 위상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가장 안정되고 견고해야 할 40대들이 급변하는 신조류와 신기술, 그리고 신세대들에 밀려 채 꽃망울을 터뜨리지도 못한 채 조기 용도 폐기 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전세계적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 버린 IT와 사이버 세계, 생명공학, 신금융기법 등과같은 신지식과 이에 맞물린 뉴 트랜드가 40대들의 설 땅을 일순간에 날려 버렸다.

이제 40대들은 구시대의 틀에 아직 확고히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밀려오는 신조류에 밀리는 이방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은 일컬어 ‘제3세대’(The third age)라고 부른다. 노인은 아니지만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같은 개혁 명분에 밀려 직장에서 쫓겨나 사회의 은둔자가 돼 버린다는 뜻이다. 능력이나 역량에 관계없이 타의에 의해‘조로(早老)’ 하는 잃어버린 세대. 그런 제3세대들이 바로 우리 옆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헤드헌팅 업체인 HR코리아는 이달초부터 40~50대 중년을 대상으로 사이버 임원 채용 박람회를 개최했다.

최근 ‘40대 정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임원 잉여인력이 양상 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회사에선 숙련된 임원들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는 점에 착안, 이들을 상호 연결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이 행사에는 개시 일주일 만에 무려 400명에 달하는 임원급 중년 구직자들의 지원이 쇄도 했다.

이들 중년 구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놀랄 정도다. 평범한 건설사 임원출신에서 국내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 외국에서 MBA를 받은 금융 전문가,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 공인회계사같은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의 고위 임원 등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지원자 중 일부는 회사를 창업해 CEO로 있다가 망해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더 나은 조건이나 적성에 맞는 곳으로 전직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전같으면 직장의 핵심 중견 간부로 대우 받아야 할 40대 중년들이 이제는 구직ㆍ구인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J씨(48)는 요즘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기가 싫기 때문이다. 불과 2년전만 해도 그는 고교 동창회 모임을 앞서 주선했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당시 40대 중반의 나이로 대기업 계열 제2금융권에서 지점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대외적으로도 잘 나가는 중년이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1999년 10월 회사로부터 사실상의 권고 사직을 당했다. 사회 생활 20년 만에 맞는 첫 시련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나 정도 경력이면 어디를 못 가겠나’ 하는 생각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J씨는 재충전의 기회라고 여기고 이듬해 모 교육기간에서 20주 동안 실시하는 인터넷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한국표준협회에서 실시하는 경영컨설팅과정도 밟았다. 이를 통해 신용분석사와 경영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했다. 나름대로 중견 임원으로 충분한 자질을 갖추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런 J씨의 부단한 노력과 달리 재취업의 길은 멀고도 험난 했다. 예전의 일과 유사한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연줄을 통해 수차례 입사를 시도했지만 번번이‘대우가 곤란하다’ ‘나이가 많다’는 인사 담당자의 말을 듣고 돌아서야만 했다.

눈높이를 낮춰 신용금고에 자리를 잡기도 했지만 이 회사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불운이 이어졌다. J씨는 그간 퇴직금으로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의 교육비와 가족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이제는 그마저 바닥날 상황에 처했다.

현재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비상근직 무급으로 나가고 있는 J씨는 2년전 받았던 마지막 연봉 7,000만원의 절반인 3,500만원이라도 주는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갈 생각이다. 오늘도 그는 신문 구인란과 인터넷 구인ㆍ구직 사이트를 헤매고 있다.


눈높이 낮춰도 나이 많다고 외면

HR코리아가 그간 자사에 의뢰 들어온 2,106건의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6년 이상 경력자를 찾는 회사는 4%, 11~15년 경력자를 구하는 회사는 9%에 불과하다. 30대 초반에 해당하는 6~10년 경력자에 대한 수요가 41%, 20대 후반인 1~5년 경력자에 대한 수요가 31%인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HR코리아의 유용미 대리는 “40대 임원급 중년 지원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누구보다도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강하다는 점”이라며 “능력 있고 경륜을 가진 우리 사회의 고급 인력이 단지 나이가 많고 급여가 높다는 이유로 사장되는 것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40대 중년에 대한 구직 수요가 줄면서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평가절하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서울 Y대를 나온 L(52)씨는 1980년대 남아공과 미국에서 산업기계류 수출영업의 전문가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은 엘리트였다. 1992년 개인사정으로 농기계류를 제조ㆍ수출하는 대기업의 무역 담당 이사로 전직한 L씨는 1999년 12월 회사 사정으로 명예퇴직 했다.

L씨는 퇴직 직후 한 때 전직과 유사한 대우를 고집했으나 현실은 벽은 너무도 냉혹했다. 퇴사 직전까지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높은 급여를 받았던 그는 2년간의 공백이 부담 됐던지 최근에는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자리면 어디든지 좋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연봉 2,000만원에도 만족한다. 예전 같으면 ‘거금을 주고라도 모셔 온다’는 해외 영업 전문가들 조차 이러니 다른 직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IMF 이후 실업 급증, 취업사기로두번 울어

이 사회에서 자존심을 유린 당한 40~50대 중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신문이나 잡지에는 종종 ‘임원 간부급 인사 특채’이라는 문구가 쓰인 구인 광고들이 있다. 자칫해 이런 사이비 업체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견기업 이사로 재직하다 조기 퇴직한 P씨(50)씨는 지난해 임원을 채용한다는 회사에 들어갔다가 큰 손해를 봤다.

임원급 간부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회사에서 “모 종친회의 초대형 족보 책을 발간해 팔 계획이라며 발간 비용 50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 문중을 상대로 50권만 팔아도 두 배가 남을 것이라는 회사의 주장에 솔깃해진 P씨는 5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결국 나온 책은 싸구려 종친 회보 수준이었고 이것을 판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P씨는 시간과 돈만 낭비한 꼴이 됐다.

우리 사회에서 40대 조로 현상이 극명히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다. 이 때부터 종신 고용제가 무너지고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 등이 시작됐고, 그 파장을 가장크게 받은 연령층이 바로 40~50대 중년들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96년만해도 1% 수준에 머물었던 40대와 50대 실업률이 IMF 직후인 1998년에는 무려 5배가 늘어난 5%대로 급증했다.(연령별 실업률 표 참조) 반면 20대의 실업률은 4.4%에서 11.4%로 2.5배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통계청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나 명예 퇴직으로 한해 이직은 IMF 직후부터 시작돼 작년 말과 올해 초를 최고 피크를 이뤘다”며 “특히 이들 중 상당수가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으로 이직하다 보니 직업 유동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순 없다. 하지만 가장 정열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사회의 주춧돌인 40~50대 중년들의 어깨가 점차 움츠러 드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아니다.

시대 조류와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중년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더불어, 새로운 것만 만능시하는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이 제거돼야만이 우리중년 가장들의 어깨가 다시한번 활짝 펴질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1/08/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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