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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피 말리는 정보전쟁

증권가 피 말리는 정보전쟁

애널리스트 vs 기업, '영업기밀''투자정보' 상충

애널리스트와 기업간의 ‘정보전(戰)’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실적이 증시 최대 화두로 등장하며, 이를 먼저 빼내려는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와 부진한 실적을 최대한 감추려는 기업간의 신경전은 도를 더하고 있다.

◁ 삼성전자는 회사정보의 누출을 막기위해 해외 주식시장 상장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국내 반도체 업체의 공정라인.

사실 애널리스트에게 정보없는 분석은 ‘갑속의 칼’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정보누출은 ‘도끼 자루’를 남의 손에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달 말 삼성전자 직원이 P증권사에 내부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것도 이런 분위기의 한 단면이다. 증시 영향이 큰 삼성전자는 담당 애널리스트 뿐 아니라 증시 최대의 관심사다.

일례로 삼성전자 IR에서는 항상 D램의 생산원가가 얼마인 지를 놓고 회사측과 애널리스트 간에 설전이 벌어지곤 한다.

삼성전자의 장점은 매출구성을 다양화시켜 놓아 반도체 가격의 큰 등락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수익분석을 위한 기초자료부터 벽에 부딪혀 있다. 더구나 D램 시장에 변화라도 있게되면 이익 추정치가 애널리스트간에 큰 차이를 보여 투자자 입장에선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

8월 중순 상반기 실적공개 이전에 서울대 정운찬 경제학부 교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고 말해 증권가에 충격을 준 일이 있다.

그러나 이는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정 교수의 정보에 뒤지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알린 것이기도 하다. 수익추정이 기본인 애널리스트들은 그래서 하이닉스반도체만 해도 생산원가 등 이익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내놓고 있는데, 왜 삼성전자만 유독 공개를 않느냐고 항의한다. 이는 매년 벌어지는 일이다.


회사정보 누출 막는게 우선

그러나 삼성전자의 입장은 언제나 확고하다. 일부에선 삼성전자가 해외증시에 주식을 상장시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회사정보의 누출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기업이다. 뉴욕 증시나 나스닥에 상장하면 지금 서울증시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증시에서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42에 불과한데, 외국에 상장하면 남북한간 위험도와 한국시장의 불투명성에 따른 ‘코리아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보다 한수 아래인 미국의 유일한 D램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경우 나스닥시장에서 PER가 삼성전자의 11배가 넘는 62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평가를 받으려면 삼성전자는 서울증시보다 까다로운 공시 등 정보공개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 이 경우 당장 회사가치를 평가받는데는 좋지만, 치열한 경쟁속에서 정작 회사가 돈을 벌어들이는데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 한쪽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D램기업 분석에 관한한 세계 제일을 자부하는 국내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도 공식보다는 비공식 채널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 비공식 채널을 사전에 구축한 애널리스트들은 업계, 특히 삼성전자 출신이거나 오랫동안 삼성전자를 담당한 애널리스트들이 꼽힌다.

최근 삼성전자 출신이 증권가에서 높은 몸값에 스카우트되는 것은 전문성과 함께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이번에 검찰에 구속된 삼성전자 직원도 P증권에서 고액 연봉의 애널리스트 자리를 보장받았다고 진술했다.

반도체 애널리스트 몸값은 다른 업종의 애널리스트보다 많은 수 억원대가 보통이고,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면 이 보다 몇 배 높은 값에 다시 외국계 증권사에 팔려간다.

시장의 평가와 명성, 여기에 돈까지 결부된 만큼 경쟁도 치열해져 주요 증권사의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거의 매일 리포트를 작성해 시장에 자신의 의견을 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작년부터는 삼성전자 출신들의 빠른 정보에 기존 증권사 출신 애널리스트들이 고전하는 양상이다.

경쟁이 크다 보니 맡은 애널리스트들은 내부자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말에는 뛰어난 분석력을 인정받은 A증권사의 애널리스트도 내부 직원과 거래하다 봉변을 당했다.

물론 삼성전자 직원은 사직처리 됐다. 당시 이 애널리스트는 내부직원이 보낸 삼성전자의 월별 반도체판매 동향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리포트에 인용하는 바람에 발목이 잡혔다. 연초에는 다른 직원이 외국계 증권사에 정보를 제공한 것이 드러났다.


정보공개 요구에 곤혹스런 기업

이 같은 정보캐기와 막기가 과연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것이냐, 아니면 회사의 영업비밀이냐에 대해선 항상 평행선을 달리기 마련이다.

주가는 기업의 실적을 반영하는 것이고, 애널리스트는 실적 예상치를 추정해 주가의 향방을 전망하는 일을 담당한다. 기업입장에선 애널리스트들의 투자정보와 투명경영을 전제로 한 정보공개 요구에 심한 고충을 겪고 있다.

더구나 외국기업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영업비밀 보호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가에는 양측의 주장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게 사실이다. 투자에 필요한 정보 차원을 넘는 기밀이 유출돼 통용되거나, 또 회사측의 보호막에 가려져 왜곡된 정보들도 흘러다닌다.

회사 정보를 최대한 감추려는 것은 거의 모든 기업에 해당된다. 현대자동차는 작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것으로 공개됐다.

그러나 이는 기업회계에서 내용 연수를 수차례 변경하고 개발비와 유형자산 상각 방식을 수시로 변경한 덕이란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환란 이전인 96년에 올린 실적보다도 못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작년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40%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는데, 관계회사간 거래비중은 47%나 늘어났다. 매출증가는 결국 국내에 쌓아놓은 재고를 해외관계사에 옮겨놓고 이를 매출로 계산하면서 나타난 회계상의 증가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 경제가 증권시장 등 금융위주로 흐르고, 정보캐기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한편에선 회사의 영업비밀이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삼성전자만 해도 우리나라 세금의 7%를 내고, 수출은 18%를 차지한다.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삼성 같은 그룹 10개만 되면 우리나라가 무세국가가 되고, 강대국이 된다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삼성출신의 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늘 정보 부족에 시달리지만, 사실 영업비밀도 많이 접하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P증권사에 건네준 정보만해도 애널리스트가 알아도 덮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놀랐다”며 “도가 지나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투자정보와 회사기밀의 선을 어느 곳에 설정할 지의 논쟁은 여전히 팽팽함을 잃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홍콩증시가 우리나라 증권거래소에 선수를 친 종목 선물·옵션시장이 들어서면 회사내부 정보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하루 15% 등락 제한폭이 있는 주식시장에 비해 가격제한 폭이 없는 선물·옵션시장에서 정보는 곧 ‘대박’으로 연결된다.

돈의 유혹과 함께, 우리시장만큼 기업의 투명한 정보제공과 영업비밀 보호가 상충하는 곳도 없어 이번과 같은 정보를 빼내려는 쪽과 이를 막으려는 회사측의 전쟁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태규 경제부기자 tglee@hk.co.kr

입력시간 2001/09/0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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