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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로 비난화살 집중

미국·이스라엘로 비난화살 집중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

8월 3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 도시 더반에서 개막된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는 첫날부터 2만여명의 시위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등 회의장 안팎에서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인종과 종교, 국적 등을 이유로 인간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9월 7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166개국 정부 및 인권단체 대표 등이 참가, 선언문과 행동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불꽃튀는 논쟁을 벌였다.

이번 회의는 그러나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인종차별 및 불평등에 관한 인류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는 취지와 달리 각종 이슈를 둘러싸고 이해 당사국들이 날카롭게 맞서는 등 불협화음의 후유증만 드러냈다.


시오니즘 맹공에 미·이스라엘 보이콧 위협

식민주의와 노예제도에 대한 사과ㆍ배상 문제를 포함한 과거 청산과 시오니즘 및 중동 문제 등이 주의제로 다뤄진 이번 회의는 최대 당사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이콧 위협 등으로 개막전부터 진통이 거듭됐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일찌감치 “특정국가(이스라엘)의 건국이념과 정책인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로 몰아붙여 집중 공격하는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우방’인 이스라엘과의 공조를 과시했다.

미국은 이후 “내 맘에 안들면 무조건 거부하는 외교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개막 이틀전인 8월29일 마지 못해 마이클 사우스윅 국제기구 담당 국무부 부차관보를 대표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표단은 그러나 개막식에 불참한 채 “이번회의를 참관만 하겠다”는 방관적 입장을 취하면서 “최종 선언문에 반 이스라엘 조항이 포함되면 조기 철수할 것”이라고 위협했고, 이스라엘 정부도 “이번 회의는 중동문제를 논의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슬람과 중동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인종청소’로 규정하는 한편 “시오니즘 운동은 인종적 우월주의(선민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표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섰다.

특히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해 최악의 군사공격을 퍼붓고 있다“며 회의 첫날부터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 기질이 이 같은 잔인함과 오만을 부추기고 있다”며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회의장밖에서는 ‘팔레스타인 탄압 중단’, ‘토지의 균등한 분배’, ‘제국주의 타도’, ‘노예제보상’ 등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각종 깃발과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의 물결이 연일 이어졌다.

각국 대표들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과 관련, ‘시오니즘은 인종주의’, ‘점령 권력의 인종차별적 관행’,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 등의 문구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한·중 일본위안부 문제 등 공식제기

이번 회의에서 한국과 중국 등은 식민 배상 차원에서 일본의 군대위안부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유엔의 경제ㆍ사회ㆍ문화적 권리 협약위원회도 “일본 정부는 더이상 늦기전에 군대위안부에 대한 적정한 배상 방안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밖에 이번 회의에서는 인도의 카스트, 동남아의 화교, 중국의 티베트 탄압, 사형제 폐지, 집시에 대한 차별 철폐 등의 문제도 논의됐으나 시오니즘과 노예제도에 밀려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주의제들에 관한 결론을 내놓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며 “비정부기구(NGO)들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연대를 구성, 차근 차근 사안에 따른 해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미 국무장관의 곡절있는 불참

콜린 파월(63)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인종차별철폐회의와 관련, 남다른 곡절을 겪었다.

자메이카 이민 2세로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과 국무부 장관의 기록을 갖고 있는 파월도 엄격히 따져 보면 노예제도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에서“남부조지아에서 청년 장교로 복무할 때 백인 여성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며 인종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

파월 장관은 “더반회의에 참석, 진지하게 인종문제를 논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 표명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미국 정부는 그의 참석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인종문제는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 자세로 다룬다”는 원칙을 내세워 회의 보이콧 의사를 천명하면서 불참쪽으로 기울었다.

한편 파월의 더반 행을 끝까지 만류한 인물 또한 흑인인 콘돌리사 라이스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었다. 파월과 함께 역시 미국 외교ㆍ안보의 첫 흑인 투톱 체제를 구축한 라이스 보좌관은 흑인 의원들과 시민단체의 거센 압력에도 부시의 원칙을 앞세워 ‘파월 불참’을 관철시켰다.

이종수 국제부기자 jslee@hk.co.kr

입력시간 2001/09/0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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