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국 근·현대사의 바로세우기

■ 20세기 한국의 야만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이병천ㆍ이광일 편/일빛 펴냄)

유신과 군사 독재 시절, 대다수 국민들은 ‘반공’, ‘경제 성장’ 같은 통치 이념에 매몰돼 스스로의 인권 자유 평등 복지 같은 기본적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당시 이런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분열 책동자나 불온 사상가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집권 세력들은 경제 성장을 통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식의 유화책으로 국민을 호도했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서히 싹트던 민초들의 인권 운동을 가혹한 폭력으로 탄압했다.

개인의 권리가 무참히 매몰되고 있었지만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잘못된 과거를 인식하고 바르게 고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현재를 정확히 파악하게 해줄 뿐 아니라,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오류의 반복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 바로 세우기’의 관점에서 볼 때 참여사회연구소가 최근 출간한 ‘20세기 한국의 야만’(일빛 펴냄)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격변기였던 20세기를 인권, 노동, 정치,독재, 환경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2권은 1961년 박정희 정권 등장 이후부터 ‘국민의 정부’ 후반기인 2001년 현재까지 벌어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은 19세기 자본주의의 본격 성장과 함께 등장한 ‘근대화’라는 개념이 가진 자들에 의해 억압과 착취, 빈곤과 불평등, 인간성 소외와 같은 ‘야만적행위’의 논리적 근거로 이용됐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말 이런 ‘모멸받은 이성’에 대한 반성으로 전세계적으로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거대 자본과 ‘성장제일주의’라는 대중적 담론에 의해 매몰돼 버렸다고 규정한다.

국내에서는 박정희를 비롯한 역대 군사 정권이 남북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이용, 반공 규율사회로 이땅의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13명의 저자들이 1961년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간 자행됐던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야만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한 예로 1974년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됐던 관련자 8명이 온전한 재판도 받아보지 못한 채 대법원 사형확정판결 이튿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사건 등 베일에 가려졌던 시국사건의 전모에 대한 분석이 실려있다.

이밖에 분단 체제가 낳은 또 다른 비극인 베트남 참전과 민간인 학살, 김대중 납치사건과 긴급조치, 야만의 시대에 인간 해방의 햇불로 산화해간 전태일 사건, 1980년에 들어선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보 사건, 군사적 성장주의가 빚은 성수대교 붕괴 참사, 그리고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 파괴 행위 등 각분야 걸쳐 날카로운 분석을 내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민족’ ‘국가’ ‘발전’과 같은 대의 명분에 밀려 자유, 인권, 평등과 같은 정말 소중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번쯤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입력시간 2001/09/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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