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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김정미(上)

[추억의 LP 여행] 김정미(上)

스쳐갔지만 잊혀지지 않는 록커

몇년전부터 가요마니아들은 김정미라는 생소한 가수의 음반을 고가로라도 매입하려는 열기가 후끈함을 감지했다.

낯선 가수의 음반을 1-2만원도 아닌 ‘상태가 좋다면 100만원에라도 구입을 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에 가수와 음반에 대한 궁금증의 강도는 짙어만 갔다.

회현지하상가, 청계천 등 중고 LP가게들이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신중현 음반을 싹쓸이하는 일본인들이 부르는대로 가격을 쳐 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중 ‘김정미 음반은 가장 인기있는 품목’임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믿기 힘든 황당한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희귀 록음반들이 일본등 외국 마니아들에게 무차별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식은 마니아들 사이에 ‘우리음반을 지켜야한다’는 애국심마저 일어났을 정도.

최근 ‘LP수집붐이 일고있다’는 보도가 심심치않게 오르내리는 것은 그동안 천시했던 우리 가요음반의 음악성을 뒤늦게 인정, 콜렉션 대상으로 여기면서 찾는 이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정미 음반들은 가요음반의 전체적인 고가바람에 기름을 부은 악영향도 있지만 이사때면 늘 천덕꾸러기로 버려졌던 우리 가요음반을 소중히 여기게 된 계기가 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김정미는 어떤 빛깔의 음악을 남긴 가수이기에 30년이 지난 지금 난리들일까?

70년대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팬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진 김정미.

김추자를 뛰어넘을 재목감으로 장래가 유망했던 가수였다. 추구했던 음악만큼이나 섹시했던 음색의 콧소리 창법과 현란한 춤은 흔치 않았던 여성 사이키텔릭 록커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지며 70년대 초중반 가요계 최대 돌풍의 주역이었다.

사업가 김순성씨의 유복한 가정에서 1남5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정미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춤과 노래 재능으로 주변의 소문난 귀염둥이였다. 또한 지지않으려는 욕심과 고집이 대단했지만 붙임성 좋은 활발한 성격의 장난꾸러기였다.

서울 정신여고 재학시절, 김정미는 흑인가수 아레사 프랭클린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좋아했다. 국내가수로는 김추자를 꽤나 좋아했지만 그녀의 넋을 빼놓은 것은 전설적인 록그룹 제퍼슨 에어플래인의 비트 강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였다.

또한 한국고전무용과 모던발레를 배우며 율동의 기본을 익혔을 만큼 예능쪽으로 대학진학을 하려했고 유행하던 포크곡들보다는 진보적인 록그룹의 노래를 즐겨불렀던 평범치 않았던 여고생이었다.

또한 시원한 이목구비와 164㎝의 훤칠한 키에 볼륨감 넘치는 몸매는 늘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친구들은 까무잡잡한 야성적 피부에 인기만점인 그녀를 ‘인디언 추장의 딸’로 부르며 주위에 모여들었다.

늘 김정미의 재능이 아까웠던 친구들은 어느날 ‘가수만들기 작전’을 세우고 작곡가 신중현에게 연락, 테스트를 받기로 미리 약속을 받아두었다. 엉겁결에 친구들을 따라나선 김정미는 당대 최고의 히트곡 제조기 신중현의 마음을 한눈에 빼앗아 버렸다.

69년 그룹 <뉴덩키스> 시절부터 신중현은 사이키 델릭사운드에 심취해 있었다. 김추자라는 대형가수를 발굴했지만 늘 스캔들을 몰고다녀 골머리를 썩던 터라 김정미의 등장은 신중현의 음악적 실험욕구에 불을 댕겼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음악에 걸맞는 창법과 안무를 개발, 정성을 다해 공을 들였다.

‘김추자에 비해 성량은 다소 떨어졌지만 음폭은 오히려 넓었던 김정미만큼 사이키델릭사운드를 이해하고 소화해낸 가수는 없다’고 신중현은 회고한다.

김정미는 펄씨스터즈와 더불어 신중현이 가장 애지중지했던 여가수였다. 1년6개월동안 노래공부에 전념한 그녀의 가수생활은 엉뚱하게 시작되었다. 첫 데뷔무대는 김추자의 대역출연이었다.

온나라가 떠들석했던 소주병 얼굴난자사건의 당사자로 71년 12월 시민회관에서 예정된 리사이틀을 포기해야만 했던 김추자. 이미 공연홍보에 큰 경비를 투자한 주최측은 붕대를 칭칭감은 끔직한 김추자 모습에 낙담을 했다.

그러나 한사코 무대에 서겠다는 김추자를 대신하여 노래를 부를 대역이 필요했다. 이때 신중현의 추천으로 긴급히 선택된 가수가 김정미였다. 같은 신중현 문하생이자 동국대 연극영화과 후배이기도 했던 김정미의 창법과 춤사위는 김추자를 빼다박아 관객들에게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때문에 김정미는 ‘제2의 김추자’로 불리워졌다. 김추자대역으로 출연한 성공적인 데뷔무대는 이 글래머 여대생가수에게 큰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단숨에 주목받는 가수로만들었다.

대중들이 보내주는 사랑과 관심은 달콤했지만 ‘제2의 김추자’라는 꼬리표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김정미는 늘 ‘제1의 김정미’를 외치며 의식적으로 김추자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더욱더 새로운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신문 방송의 요란한 인터뷰요청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한 데뷔음반은 록그룹 <더 맨>이 연주한 <김정미 최신가요집-유니버샬,KLS44,72년중순>. 수록된 9곡은 모두 신중현의 창작곡이었다.

장현의 저음을 느끼게하는 <기다리는 마음>과 김추자의 다이나믹한 폭발력에 야릇한 분위기를 느끼게하는 콧소리창법으로 노래한 <간다고 하지마오> <잊어야 한다면> 등은 독특했다. 사이키델릭 노래가 풍기는 섹시함이 가득한 김정미의 노래는 70년대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1/09/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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