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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끌려만 다닐 것인가?

언제까지 끌려만 다닐 것인가?

여론 지탄 불구 금강산 회담 수용, 기로에 선 햇볕정책

정부가 비장한 각오로 9~12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6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준비중이다. 수석대표인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물론이고, 정책 실무자들은 “회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회담은 정부가 여론의 지탄을 감수하고 수용한 회담이어서 부담감이 상당하다. 또 9월 5차 회담에서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행사 등도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정부가 비장한 각오를 한 또 다른 이유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3개월 남짓 남았다.

그러나 내년에는 월드컵과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등 막중대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으로 야기된 국제사회의 긴장도 계속돼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거대’ 야당이 자리잡은 정국은 이 정권의 레임덕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고, 그만큼 정부의 대북정책 장악력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하면 6ㆍ15 공동선언의 의미가 반감할 수 있다”, “내년 1년을 공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마저 감지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회담이 대북 햇볕정책의 진퇴를 가름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한 정부, 남북 줄다리기서 완패?

사실 정부는 이번 장소 공방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전략적 측면에서 북측은 남북대화를 통해 테러전쟁의 불똥을 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또 올해도 100만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쌀을 지원 받아야 하는 수세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10차례의 전통문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먼저 고개를 숙였다. 여론의 혹평이 잇따랐다. 정부는 11월2일 이번 회담의 장소 문제에 관해서만 6번째 전달한 대북 전통문에서 “회담 주최측이 장소를 정하면 상대방은 이를 존중하는 북측 주장에 유의한다”고 밝혀 명분 싸움에서 사실상 완패했음을 시인했다. 북측은 4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남측의 제의대로 금강산에서 회담을 갖자고 답했다.

홍 장관 등 남측 대표단은 그러나 ‘격에 맞지 않는’ 회담장 때문에 불편을 감내해야 할 듯하다. 정부가 수용한 금강산의 유일한 회담장인 금강산 여관은 당초 현대가 구입키로 했으나 미뤄지면서 관리하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한 곳이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겨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데다, 전기ㆍ통신 시설조차 제대로 구비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이곳에서 열린 적십자 회담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화장실을 이용하다 수돗물이 끊겨 낭패를 본 적도 있다”면서 “본국과 통신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장관급 회담을 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장관 등 우리 대표단은 “대화 없인 성과도 없다”면서, 숙소인 선상 호텔과 금강산 여관을 출퇴근하며 북측과 치열하게 협상할 각오이다.


김정일위원장과 ‘담판’추진

정부가 그 동안 평양 개최를 고집한 것은 회담 여건이 갖춰졌다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서울답방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담판을 벌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남측은 지난해 8월말 2차 회담에서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김 위원장을 면담했고, 9월 5차 회담 때는 김령성 북측 단장에게 김 대통령 면담 기회를 주었다.

장관급 회담에서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게 ‘관례’로 자리잡은 셈이다. 홍 장관도 “9월에 회담을 해보니 북쪽에서 툭하면 ‘소관이 아니다’고 발을 뺐다”면서 “실력자와 담판을 짓는 게 필요하다”고 누차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회담장이 ‘금강산’이지만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금강산에서 평양까지는 육로로 11시간이나 걸리고, 남한 언론에 면담 사실이 노출될 수도 있지만, 추진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궁금해 하는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에 관한 한 김 위원장만이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얻는것 없는 회담될수도

하지만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 답방은 커녕 국민적 관심사인 이산가족 상봉행사조차 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는 무엇보다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북측이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수용한 회담이기 때문이다.

북측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남측이 취한 테러 경계태세를 빌미로, ‘남조선이 불안하다’며 교류 자체를 거부했다.

남측은 ‘북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구 조치이다’고 설득하겠지만, 북측은 경계태세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할 공산이 크다. 자칫 북측의 주적론(主敵論)과 남측의 합의 불이행 촉구로 설전만 되풀이했던 4차 회담과 유사한 양상을띨 수 있다.

북측은 오히려 ‘금강산’ 회담에서 남측 당국으로부터 중단 위기에 몰린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경제적 보증’을 확보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낼 것이 뻔하다.

북측은 관광객 감소와 현대아산의 유동성 위기로 관광대가금 지불이 크게 줄어 외화벌이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북측이 ‘평양이 곤란하면 묘향산은 어떠냐’는 남측의 수정 제의에 ‘금강산도 산이다’고 맞선 것은, 물론 김 위원장의 지시 때문이겠지만, 금강산 관광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북측은 우리측이 평양을 요구하는 동안 유럽연합(EU) 대표단과 정치대화를 하는 이중적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론ㆍ야당 설득이 더큰 문제

정부가 북한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설득해야 할 대상은 또 있다. 북한 보다 더 힘겨운 존재가 바로 여론이다. ‘거대’ 야당은 이제 정부의 대북카드 마저 움켜질 기세이다.

한나라당(조웅규 의원 발의)은 5억원 이상의 기금 사용에 대해 60일전까지 국회 동의를 의무화한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이번 회기 내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이고, 자민련도 비슷한 내용의 남북교류협력지원 특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나아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여론도 정부가 북한에 정부보유미 30만 톤 등 식량 40만 톤을 주고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온다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여론의 압박은 남측 대표단의 주요한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쌀지원 연계전술, 효과 미지수

정부가 쌀 지원 문제를 이번 회담과 연계 시키겠다는 말까지 흘린 것도 남한내 여론을 적절히 활용하겠다는 고육책이다.

정부 당국자는 “인도적 사안인 식량지원을 다른 현안과 연계 시키는 것은 치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사실 남북 관계는 모든 것이 얽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노골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등을 재개하지 않으면 쌀을 주지않겠다”는 식으로 협상하지는 않겠지만, 쌀 지원 문제는 상황에 따라 북한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기재가 될 것이다.

북측의 이산가족 상봉 일방 연기에 대한 비판 여론에서 알 수 있듯이 남측 여론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대북 지원은 이뤄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이 같은 저간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북측이 정부의 뜻대로 대응해 올지 주목된다.

이동준정치부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1/11/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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