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빈 라덴은 영웅인가

오사마 빈 라덴은 어떻든 911 대참사로 시작된 ‘미국과의 제3차 대전’에서 패배할 것이다. 미 국방부는 그의 목에 현상금2,500만 달러를 걸었을 정도로 자신에 차 있다.

그러나 요즘 이슬람 국가들에선 자녀의 이름을 오사마로 짓는 부모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한 파키스탄 신학 대학생은 6개월 된 아들 이름을 오사마로 지으며 말했다. “우리 세대가 미국인들에게 복수할 수 없다면 미래의 우리 오사마들이 복수할 것입니다.”

파키스탄의 한 정보본부 고위관리는 1998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테러기지를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한 후 빈 라덴은 이슬람권의 ‘숭배대상’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 파키스탄 신학교 교장은 “그는 신학교에 다니는 수천의 파키스탄과 아프간 텔레반 학생들에게 최고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요제프보단스키(미 의회 테러 분석가)의 ‘오사마 빈 라덴-반미 선전 포고를 한 자’]

그러나 미국이 폭격에 나선지 2개월 후인 11월23일 빈 라덴의 은신처를 방문한 몇몇 종군기자들은 폭삭 내려앉은 그의 캠프 처럼 그에게서 영웅다운 구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영국의 가디언지 리차드 로이드-페리 특파원은 잘랄라바드에서20분 거리쯤 떨어진 한 막사 숙소의 부서진 목욕탕에 걸린 팬티를 발견했다. 그는 안제로 펜티코사 제품으로 XXL 대형 사이즈인 이 팬티가 빈라덴의 것이라고 추정했다.

로이드-페리 기자는 이 팬티를 기념품으로 ‘슬쩍’했다. 그러나 이 팬티는 빈 라덴의 여윈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로이드-페리는 이 팬티가 경호원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로이드-페리에 앞서 하다라고 불리는 이 마을 은신처를 찾은 워싱턴 포스트의 파멜라 콘스터블 특파원은 빈 라덴이 이 막사에서 아내와 자녀를 만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콘스터블은 빈 라덴이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이 막사를 떠났다고 전했다.

이 막사에는 아랍어로 된 여러권의 책들이 널려 있었다. 화학실험실이나 신경가스 인사린이 있었던 흔적은 없었다. 다만 북한에서 만든 4,200달러짜리 화학물질 감응경보기가 영어 설명서와 함께 있었다.

콘스터블에 앞서 이곳을 방문한 마드리드 엘 불도지의 쥬리오 프란테스 특파원과 이탈리아 밀라노의 여기자 마리아 그라지아 쿠를리는 이 막사에서 사린을 보았다고 주장했었다. 쿠를리기자는 11월19일 무장괴한에게 살해됐다.

로이드-페리, 콘스터블 두 특파원이 본 빈 라덴의 영웅스런 모습은 하다의 은신처 막사나 그 캠프 주변에서는 없었다. 잘랄라바드에서 30여㎞떨어진 하다 마을에서 빈 라덴의 모습은 조용한 테러리스트의 두목이었고, 그의 처남 아부 카하브는 이곳에서 화학선생으로 일하며 실험실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11월22일에도 이곳을 폭격했다. 마을 주민들은 “가난한 사람만 있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왜 폭격하는가. 굳이 폭격을 하려면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빈 라덴은 이곳에서 영웅도 손님도 아니었다.

그러면 오사바 빈 라덴은 어떤 인물인가. 뉴욕에 산다는 20세를 조금 넘었다는 주리아 매그넬은 영국의 대중지 이데일리 텔레그라프지에 ‘빈 라덴은 여론 조작자, 곡필자’라는 투고를 했다.

빈 라덴이 이슬람 전사의 성전을 독려하기 위해 911 테러대참사 발생 6개월 전에 만든 2시간짜리 비디오뮤직 테이프를 여러 번 본 그는 이에 대한 감상을 글로 옮긴 것이다. 한마디로 빈 라덴은 총통 히틀러 보다 여론을 조작(spin)하는데 더 능하다는 것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실베스터 스탤론 등을 주연으로 극영화를 만들었다면 빈 라덴의 성전 독려비디오에 비길만한 끔직한 영화가 되겠지만 그래도 제작수법은 빈 라덴의 것보다 참신할 것이라고 평했다.

첫 장면 30초만 보면 어두운 화면이 밝아지며 “우리는 코란을 들고 피로써 갚으리. 우리의 불명예와 수치는 없애리”라는 장엄한 노래와 함께 탈레반 병사들의 시체가 비쳐진다. 이어 걸프전쟁 때의 조지 부시 대통령, 콜린 파월 합창의장이 권총을 찬 카우보이차림으로 나온다. 성조기의 하얀 줄이 사라지면서 파월의 머리에서 연기가 나고 곧 이어 파월의 머리는 폭발한다. 이 때 빈 라덴이 흰 색 아랍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음악도, 제스쳐도, 빈 라덴의 표정도 세계의 M-TV를 보는 아랍 청소년 세대를 향해 빠르고 강력하게 전달된다. 클린턴 대통령이나 윌리 스토퍼 국무장관이 서부 활극의 악역처럼 정의의 심판을 받고 죽어 나간다.

빈 라덴은 액션스타가 아니라 예언자의 풍모로 왼손을 약간만 움직이는 손동작으로 가끔 몇 마디씩 하며 분위기를 이끈다.

이라크에 떨어진 폭격으로 울부짖는 아낙네들. 이스라엘 공격으로 쓰러진 팔레스타인 소년들. 예멘의 족장 칼을 찬(빈 라덴은 부친은 예멘인) 빈 라덴은 지난해 예멘에서 자살보트 공격을 받은 미국 구축함 콜이 폭발 되는 것을 지켜본다.

투고자 매그넬은 히틀러의 다큐멘터리가 고함과 철컥대는 군화소리와 탱크 행렬을 보여 주었다면 빈 라덴은 비디오 화면 조작을 통해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을 악마의 제국으로 표현한 비디오 뮤직 테이프제작자 라고 결론 내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테이프 라고 했다.

CNN에서 10여년간 빈 라덴을 추적 탐사한 피터 버겐은 지난 10월에 나온‘성전주식회사-21세기 지하드’에서 결론 내리고 있다. “빈 라덴을 영웅으로 만든 것은 미국의 중동 정책이다.

빈 라덴은 영웅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집트, 수단, 파키스탄, 아프간의 이슬람 과격주의자와 지주회사를 차리고 성전을 부르짖고 있다. 그는 영웅이되기 위해 미국문명보다 미국정치를 적으로 삼고 있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11/27 15:3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