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 특허개발, '끝없는 분쟁에 바람잘 날 없다'

벤처업계 저작권 및 특허분쟁 폭증, 애매한 개념 '속앓이'

벤처 업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저작권 및 특허분쟁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999년부터 급증한 벤처업체들이 자사의 사업영역을 지키고, 아이디어를 보호받기 위해 앞 다퉈 출원한 특허가 심사를 끝내고 속속 등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허출원 건수와 등록 건수가 많다는 것은 분쟁의 소지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벤처 업계가 내놓은 특허내용이 비즈니스모델(BM) 등 다소 모호한 개념이 많아 분쟁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BM관련 특허출원 건수는 지난한해 모두 513건으로 집계된데 비해 올해는 1ㆍ4 분기에만 500건을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올 해 2,000건을 넘어설것으로 특허청은 보고 있다.

사실특허는 한두 가지의 핵심아이디어나 기술력으로 승부를 거는 벤처업체로서는 생명과도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벤처가 출원하는 디지털기술, 비즈니스 모델, 저작권 관련한 특허는 지금까지 국내특허업계에서는 다소생소한 분야다. 때문에 명확하게 권리와 의무관계가 밝혀지기가 쉽지않다는 것이 변리사 업계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권리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허가 등록되면, 비슷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억울하게 특허권을 침해받았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외형만 성장했을뿐, 리서치기능과 유사벤처 간커뮤니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국내업계의 경우 자칫 간신히 기술개발을 해놓고나니 비슷한 특허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남의 땅인 줄모르고 열심히 밭을 간’ 격이다. 남의 땅인줄 알고도 들인 품 생각없이 물러갈 벤처가 얼마나 될까. 당연히 분쟁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끝없는 전투. 승자없는 싸움은 계속된다

특허가 출원(특허 심사를 신청하는 것)된 후 등록(심사를 통과해 특허권을 인정받는 것)까지는 통상 24개월 가량 걸린다. 1999년부터 출원이 급증했기 때문에 올해면 특허를 획득하는 업체들이 서서히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따라서 올 해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쟁이 늘고 있다.

올 들어 발생한 벤처끼리의 큰 싸움은 2월의 MP3재생장치를 둘러싼 MP맨닷컴과 여타 MP3플레이어 제작 업체들 간의 분쟁, 인터넷벤처기업 디지탈밸리와 전자상거래업체인 인터파크사이에 국내최초로 발생한 비즈니스 모델특허분쟁. 전자화폐 업체인 씨앤씨와 케이비테크, 스마트로와 씨엔씨간의 2 차례에 걸친 다툼 등 5건.

하반기에도 분쟁은 사그러들지 않고 최근 인포허브가 받은 ‘이동통신 단말기를 이용한 전자화폐 운영방법 및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두고 다날, 모빌리언스 등 경쟁업체가 맞붙고 있다.

이 가운데 씨앤씨와 관련된 분쟁은 법원의 판단과 당사자 간 합의로 해결됐으나 나머지 4건은 쉽사리 해결 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권리를 완전히 인정받게 되는 업체는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뿐 아니라 로열티 수입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반면 제소당한 업체들은 로열티를 물 경우 수익성이 없는데다 경쟁력도 떨어져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어서 물러설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해결이 늦어질 경우 기술개발에 매진하거나 마케팅에 골몰해야 할 회사의 핵심 간부들이 싸움에만 매달리고 돈도 날려 성장의 기력을 소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자금여력이 없고, 특허내용이 사업의 목줄을 죄는 경우가 대분분이어서 분쟁에서 질 경우 입을 파괴력은 엄청나다.

MP맨닷컴과 MP3플레이어 관련소송을 벌이고 있는 A사관계자는 “가뜩이나 업계가 힘든 판에 소송에까지 신경써야 하니 사업을 제대로 영위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관계자는 “어렵사리 이어온사업인데 여기서 접어야 할지조차 판단이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허권을 쥔 업체도 지루한 전투를 이어가야 하는데다 자칫 연관산업이 위축되면 시장이 축소돼 남는 것이 없기는 매일반이다.

특허권을 획득해 분쟁에 돌입한 모 업체 관계자가 “외국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것이 이상적인데 국내 특허만 가지고 함께 가야할 업체들과 싸우고 있는 것에 회의가 느껴진다”고 털어놓은 데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모호한 개념에 특허를 부여한 것이 원인

이처럼 벤처 업계간 피투성이 싸움의 근본원인은 결국 포괄적인 개념에 특허를 준 특허청 때문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 일부 변리사들은 최근에 등록된 일련의 특허가 다소 포괄적인 내용에 특허를 부여한 것으로 판단한다.

K법무법인 임모(32)변리사는 “분쟁이 일고 있는 특허 내용을 보면, 일부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와 달리 선진외국의 관계기관은 지적재산권 등 무형자산에 권리를 부여한 경험이 많아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며 “결국 국내업체끼리 안방에서 ‘제살 깎아먹기’ 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특허출원 내용의 공개를 원천봉쇄하는 현행법도 문제다. 물론 특허출원 내용이 공개될 경우, 내용을 살짝 바꿔 권리관계를 비켜가는 업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가 개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갑자기 개념이 불분명한 특허의 출원이 급증한 것도, 자신의 모델이 누군가 이미 출원한 특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밀어 넣고 보자’는 식으로 출원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시대에 걸맞는 심사기준 세워야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심사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비즈그룹 강태영(43)박사는 “벤처들이 출원하는 특허가 대부분 첨단 디지털 기술에 근거하고 있어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히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나 알고리즘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에 적합한 심사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박사는 “예컨대 MP3플레이어 특허라면 MP3 파일을 재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짜여진 방법, 음질을 개선을 위해 어떤 알고리즘을 썼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피투성이 싸움이 빚어지자 특허청도 개선안 마련에 부심 중이다.

우선 ‘전자상거래심사기준’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특허 심사분야의 세분화 작업에 들어가 그나마첫 발은뗀 셈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특허등록은 늘어날 전망이어서 업계의 주름살은 깊어만 가고있다.

황종덕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8 18:08


황종덕 경제부 lastrada@hk.co.kr